(여주=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경기도 여주에는 2개의 조선왕릉이 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이다.
서로 다른 형태의 이들 능침을 바라보다 보면 왕릉의 색다른 매력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 이른 봄 찾은 영릉(英陵)과 영릉(寧陵)

영릉(英陵·왼쪽)과 영릉(寧陵) [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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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따뜻한 이른 봄날 여주를 찾았다.
왕릉 주소지를 살펴보니 세종대왕면이라는 지명이 눈에 띄었다.
여주에 있는 2개의 왕릉은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인 영릉(英陵),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인 영릉(寧陵)이다.
한글로는 같지만, 능호의 한자는 다르다.
왕릉의 형태도 다르다.
남한에 있는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여주 영릉은 조선왕릉 중 영월 장릉을 제외하면 서울에서 가장 멀다.
◇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

현주일구 [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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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도착해 왕릉 안내도를 살폈다.
왼쪽으로 향하면 세종의 능이, 오른쪽으로 가면 효종의 능이 가깝다.
취재팀은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왕릉까지 가는 길에는 봐야 할 것들이 많았다.
세종대왕 동상을 지나면 세종 때 만들어진 기구를 비롯해 다양한 관측기구 모형이 하나씩 전시돼 있다.
측우기, 해시계인 앙부일구, 하천의 물 높이를 재던 수표처럼 이름이 익숙한 기구들도 있지만, 처음 접해보는 것들도 많았다.
모양이 신기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취재팀과 만난 정연숙 문화관광해설사는 "관람객 중 관측기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해설을 더욱 진지하게 듣는다"고 들려줬다.
연지(연못)를 지나자 금천교와 홍살문이 보였다.
제향을 지내는 정자각 너머 경사지 위 평평한 곳에 능침이 보였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 [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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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문을 위해 별도로 필요한 절차를 밟아뒀기에 취재팀은 능침을 가까이서 직접 살펴볼 수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무석인(무인 모습의 석물)과 석마(말 모양의 석물)의 뒤에 다가섰다.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듯 거뭇거뭇한 돌조각이 웅장하게 느껴졌다.
합장릉인 이곳에는 2개의 혼유석이 나란히 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은 조선왕릉 중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모신 최초의 합장릉이다.
다음으로 문석인과 석양, 석호를 살핀 뒤 능침 중앙에 서서 전체 풍경을 바라봤다.
뒤로는 구부러진 소나무들이 파란 하늘 아래 서 있다.
뒤돌아서자 주변의 소나무와 탁 트인 풍경이 펼쳐졌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명당자리라 할 만했다.
이전에 다른 조선왕릉을 관람한 적이 있지만 매번 능침의 첫 번째 풍경을 접할 때마다 경이로운 것 같다.
'와'하는 함성이 나오거나 무언가에 압도돼 숨을 잠시 멈추게 되는 듯하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은 군더더기가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원래 이들의 능은 생전에 세종이 바란 대로 아버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서울 서초구) 인근에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자리가 풍수상 불길하다고 해 예종 때인 1469년 여주로 옮겼다.
세종의 업적으로 우리 고유의 문자체계인 훈민정음 창제를 빼놓을 수가 없다.
한글이 이어져 오면서 올해 1월에는 한글서예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 왕릉을 잇는 700m 숲길

왕의 숲길 [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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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양쪽에 키 큰 소나무들이 서 있는 흙길을 지났다.
이곳은 두 왕릉을 잇는 '왕의 숲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1688년 숙종, 1730년 영조, 1779년 정조가 직접 행차해 두 왕릉을 참배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연결하는 길이 있으니 잠시 숨도 고르고 풍경도 보면서 호젓함을 느꼈다.
700m 이어진 왕의 숲길 끝 쪽에 이르자 소나무들이 고요하게 머리를 맞댄 듯 서 있는 풍경이 보였다.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이다.
◇ 효종과 인선왕후의 동원상하릉

효종과 인선왕후의 동원상하릉 [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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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은 정자각 앞에 섰다.
이색적이고도 특이한 풍경이 눈에 비쳤다.
열린 정자각 문 뒤로 효종의 능이 보였다.
문의 형태가 프레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서 있는 위치를 조금씩 바꿔봤더니 효종의 능 아래에 있는 인선왕후의 능까지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이곳은 조선 최초로 하나의 언덕에 위아래로 왕과 왕비의 능이 있는 동원상하릉이다.
해설사는 능침을 보기 위해 주변을 돌아가는 도래솔길로 취재팀을 안내했다.
능침의 원래 지형을 보존하면서도 관람객의 문화 향유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이러한 길을 조성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도래솔은 무덤가에 둘러서 있는 소나무를 뜻한다.
일반 관람객이 능침까지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도래솔길이 있으니 비교적 인접한 지점에서 능침을 바라볼 수 있다.

석양과 석호 [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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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돌아본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도 마찬가지였다.
서서히 능침으로 다가갔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곳에선 돌조각의 두께감이 더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시대에 따라 왕릉마다 돌조각의 미묘한 차이가 있고 이를 둘러싼 풍경도 다르니 관람할 때마다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인선왕후의 능은 효종의 능 바로 옆에 있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각각의 능에서 상대방의 능을 바라보면 주변 경관이 달라 보였다.
인조의 둘째 아들인 효종은 봉림대군 시절이었던 병자호란 이후 형인 소현세자와 청나라에서 8년간 볼모 생활을 했다.
재위 기간 북벌을 추진하고자 했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효종의 능은 원래 구리 동구릉 내에 조성됐다.
하지만, 석물 수리 문제가 발생하면서 1673년 현종 때에 여주로 옮겼다.
◇ 회양목과 향나무…노거수 단상

회양목(왼쪽)과 키 큰 향나무, 느티나무(오른쪽) [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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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침을 보고 내려와 현존하는 조선왕릉 재실 중 원래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다는 영릉(寧陵) 재실 쪽으로 이동했다.
멀리서 재실 건물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키 큰 나무가 눈에 띄었다.
향나무였다.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가 싶었는데, 재실 공간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운치가 있었다.
문 앞에 자리를 잡고 나선형으로 비틀어져 올라간 듯한 나무껍질의 모양새가 독특했다.
향나무의 세월이 느껴지는 듯했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잎이 어우러져 청명해 보였다.
주변에는 재실 담장을 훨씬 뛰어넘는 높이의 회양목 한 그루가 서 있다.
이렇게 키 큰 회양목을 본 적이 없다.
회양목은 보통 키가 작고 낮게 자란다.
안내판에는 이 회양목이 영릉 재실에서 300여 년 동안 자라 온 것으로, 유래와 역사가 깊어 200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고 적혀 있다.
왕릉을 관람하면서 당대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만, 현대에 이르기까지 연관해 생각해 볼거리도 많은 것 같다.
숲에 둘러싸인 경관이 훌륭하니 또 하나의 정원을 거닐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취재팀은 마지막으로 출구 쪽으로 가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에 들렀다.
세종과 효종에 대한 여러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관람을 마치고선 근처 식당으로 가 백반을 먹었다.
여주 쌀이 유명하다는 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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