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삼국유사'를 간직한 범어사

금정산 고당봉에서 바라본 해운대와 광안대교[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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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지금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서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고 불렀으니, 바로 요임금과 같은 시대다.”
고려 후기 고승 일연(1206 ~ 1289) 선사가 쓴 '삼국유사' 기이편의 첫머리이다.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기록은 국내 문헌 중 삼국유사에 처음 등장한다. 한민족 뿌리가 고조선과 단군이고, 한반도 역사가 반만년에 이른다는 믿음을 굳히는 근거가 됐다.
현존하는 최초의 역사서로, 흔히 삼국유사와 비교되는 '삼국사기'에는 고조선과 단군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삼국사기는 유학자인 김부식(1075 ~ 1151)이 고려 인종의 명령으로 편찬한 정사이다.
삼국사기에서 한반도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이 땅의 역사는 5천년이 아니라 2천년으로 쪼그라들었을지 모른다.

삼국유사 범어사본[국가유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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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어사에서 재발견하는 삼국유사…역사 문화 콘텐츠의 보고
가야, 발해에 대한 기록도 삼국사기에는 없고, 삼국유사에는 있다.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가야, 발해 또한 한국사에서 지워졌을 뻔했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평생 모았던 자료를 정리해, 일흔 넘어 경상북도 군위에서 모친의 묘소를 지키며 썼던 걸작이다.
역사뿐 아니라 신화, 설화, 전설, 노래 등을 담고 있어 고대 한국인들의 세계관, 풍속, 종교, 문학, 예술, 언어를 엿보게 한다.
가령 '처용가' '혜성가' 등 신라 향가 14수는 고대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다"라는 최남선의 말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삼국유사의 역사적, 문화적 의의는 지대하다.
국보로 지정된 삼국유사 판본 3개 중 하나를 부산 범어사에서 만날 수 있다.
삼국유사를 간직하고 있는 범어사 성보박물관은 사찰 박물관 중 유일한 국보 소장처이다.
삼국유사 범어사본은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과 함께 202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으로 등재됐다.

삼국유사 범어사본 표지[국가유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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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심사위원회는 당시 "고대 신화, 역사, 문화, 종교, 생활, 문학, 한국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보의 보물창고이며, 삼국시대와 그 이전의 역사를 담고 있는 한국 최초의 종합사라는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부식이 사기를 편찬할 때 버린 이야기를 모은 것 정도로 삼국유사를 치부한 때가 있었다.
책 제목의 '유사'(遺事)를 '남은 이야기', 즉 삼국사기의 서술 대상에서 제외된 사건쯤으로 해석한 탓이 컸다.
지식과 종이가 귀하던 시대, 자투리를 엮기 위해 당대 최고의 승려이자 지식인이었던 일연이 평생을 바쳤을까.
'유사'를 후세를 위해 '남기는 이야기, 남겨야 할 기록'으로 풀이하고 싶다.
신화, 전설, 영웅담 등 삼국유사 속 신묘한 이야기들은 외국어로 번역되고 K컬처 콘텐츠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문화 축복이 된 삼국유사를 범어사에서 재발견하게 된다.

범어사 대웅전과 삼층석탑[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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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 3대 사찰·시민의 친구…범어사
삼국유사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인 범어사본에는 의상대사가 화엄 사찰 10곳을 창건하는 내용이 나온다.
화엄십찰 중 하나가 금정산 범어사임이 언급돼 있다. 한국 역사와 불교사에서 범어사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부산의 진산이자, 전국 100대 명산으로 꼽히는 금정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범어사는 시민에게 친구처럼 다정한 휴식처이자 안식처이다.
도심과 가깝기에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금정산과 범어사에는 산객과 참배객, 불자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부산에 산다면 아이부터 청장년,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소풍, 사생대회, 등산, 단합대회, 탐방 등의 추억이 한둘은 간직된 공간이다.
통도사, 해인사와 함께 영남 3대 사찰로 일컬어지는 범어사는 불교, 지역문화, 호국 운동의 구심점이 돼 왔다.

일주문[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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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이 이 절을 창건한 것은 왜구의 침략을 막을 수 있도록 호국 사찰을 지어달라는 신라 문무대왕의 당부에 따른 결과였다.
임진왜란 때 승병 2천여 명이 집결한 곳도 범어사였다.
구한말에는 선불교의 전통을 회복하려는 경허 스님의 선풍 진작 운동과 선원 개설을 계기로 선찰대본산이 됐다. 선찰이란 마음의 근원을 구하는 수행도량이라는 뜻이다.
템플스테이, 시민선방, 금정불교대학, 다음관 등 사찰체험과 명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선문화교육관에서 범어사의 선찰 전통을 읽을 수 있다.
1906년 근대식 불교 교육기관인 명정학교를 열었던 범어사는 부산의 3·1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이었던 백용성 스님은 범어사에 상주했고, 만해 한용운은 서울과 범어사를 오가며 거사를 계획했다. 만해는 출소 후 범어사에서 요양했다.
국가 지정 보물인 삼층석탑, 대웅전, 목조여래삼존상, 조계문 중 절로 진입하는 첫 번째 산문인 조계문은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주문이라고도 불리는 조계문은 자연암반 위에 돌기둥 4개를 세워 만들었다.
2개의 나무 기둥으로 지지되는 여느 사찰의 일주문과 확연히 구분되는 구조이다.
한국 사찰에서 유례가 없는 이 건축물은 자연과 조화된 빼어난 건축미로 사랑받는다.

금정산 정상 고당봉[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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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 지정 바라보는 금정산
민속주 1호 산성막걸리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801.5m)으로 가는 최단 거리 경로는 범어사에서 출발한다.
암괴류가 덮고 있는 범어천 계곡을 따라 1시간 반 정도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올라간다.
중간에 금정산성을 지난다. 범어사에서 약 1.4㎞ 떨어진 금정산성 북문까지 가는 동안 돌무더기는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돌바다라고도 불리는 암괴류는 큰 바위에 물이 스며들어 얼고, 녹는 과정에서 깨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중력에 의해 주저앉으면서 만들어진다.

등나무 군락지[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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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암괴류는 폭이 70m에 이르고, 산사면 방향으로 길이가 2.5㎞를 넘는다.
암괴류 아래쪽에는 등나무 6천500여 그루의 군락지가 있었다.
5월이면 보랏빛 등나무꽃이 선경을 연출하는 이곳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등나무 외에도 280여 종의 나무와 희귀식물이 자라 원시림을 방불한다.
눈을 구경하기 힘든 부산에 올해 초봄 눈발이 두 차례나 날렸다.
돌무더기와 산성을 따라 쌓인 눈은 고당봉으로 오를수록 두터워졌다. 눈길이 미끄러웠지만 산객이 제법 많았다.

금정산성 북문과 성곽[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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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에 대한 부산 시민의 애착은 서울 시민들의 북한산 사랑에 못지않은 듯했다.
고당봉에 오르니 동해와 남해, 부산항, 낙동강과 그 하구인 다대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계명봉,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산군은 남쪽 땅끝까지 뻗어 내리는 백두대간의 기운을 느끼게 했다.
낙동강이 흘러 바다와 만나는 곳에 동해와 남해의 기개를 받아 우뚝 솟은 금정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고당봉 아래 금샘은 범어사의 절 이름 유래지이기도 하다.
금빛 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고 해서 산 이름이 금정산이고 그곳에 사찰을 지어 범어사를 건립했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그 우물이 금샘이다.
'범어'란 범천, 즉 하늘에서 내려온 물고기를 말한다.
고당봉, 계명봉, 원효봉, 의상봉 등 울창한 고봉에 둘러싸인 범어사 경내에 들어서면 누구나 범어가 될 성싶다.

하늘에서 본 금샘 바위[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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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름이 동래산성인 금정산성은 둘레가 18.8㎞로, 국내 최대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에는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피난 겸 항전의 성이었다.
임진왜란 후 일본의 재침입을 우려해 다시 쌓았다. 동, 서, 남, 북의 4대 성문과 지휘소인 장대가 있다.
금정산에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조성돼 있다. 산성 탐방 트레킹 코스만도 10개 가까이 된다.
금정산성 안에는 해발 450m 정도의 고지에 죽전, 중리, 공해의 산성마을 3곳이 형성돼 있다.
자연부락인 산성마을은 부산에서 손꼽히는 청정지역이다.
신라 때부터 화전민과 승려들이 거주하다 산성 축조 뒤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산성마을은 맑은 공기와 풍광으로 인해 휴일이면 등산객이 붐빈다.
금정산 아래에 부산대학교와 부산외국어대학교가 있어 대학생 탐방객도 적지 않다.
흑염소, 오리 불고기, 산성막걸리는 산성마을이 자랑하는 3대 토속 음식이다.

금정산성 마을[사진/백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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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산성마을에서 띄운 누룩으로 빚은 산성막걸리는 전통이 500년에 이르며 '민속주 1호' 타이틀을 갖고 있다.
산성막걸리 맛의 비결은 산성누룩과 청정 암반수이다. 산성누룩은 조선 시대부터 근처 절에서 빚어온 방식으로 띄운다.
산성마을의 온도, 습도가 술 빚기에 적합하게 유지되는 것도 술맛을 풍부하게 만든다.
산성막걸리, 염소 고기가 함께 했던 나들이의 즐거웠던 기억이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식탁과 술자리에서 얘깃거리로 오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만큼 금정산은 시민에게 가깝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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