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교수가 쓴 신간…오피오이드 남용 정조준

'오피오이드 사태' 촉발한 미국 제약사 퍼듀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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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오피오이드는 의사의 처방을 얻어야 구할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다. 의약품이지만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다. 고통을 호소하기만 한다면 의사들이 별다른 죄책감 없이 처방전을 써주기 때문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중독의학과 교수이자 책 '도파민네이션' 저자인 애나 렘키는 신간 '중독을 파는 의사들'(오월의봄)에서 이런 의료 문화 탓에 약물 중독환자가 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오피오이드 진통제 과복용으로 사망한 인구는 1999년 약 4천명에서 2013년 1만6천235명으로 4배 증가했다. 오피오이드 진통제 약국 매출도 1999년부터 2010년 사이 4배 늘었다. 2010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비의도적 약물중독'으로 인한 사망자가 교통사고 사망자를 추월하기도 했다.
특히 젊은 층의 오피오이드 사용이 심각하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예컨대 밀레니얼 세대는 아침에 기분을 돋우고자 각성제인 에더럴을 복용하고, 점심에는 운동으로 발생한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바이코딘을 먹으며, 저녁에는 일과 동안 쌓였던 긴장을 풀기 위해 '의료용' 마리화나를 피우고, 잠들기 전에는 숙면을 위해 자낙스를 복용한다. 때로는 집중력 향상을 위해 중추신경자극제를 먹기도 한다. 모두 오피오이드이거나 정신과 약물이다.

마약성 진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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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피오이드에 대한 사용은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극도로 제한됐다. 심각한 부상이나 질병, 혹은 수술 도중에만 처방했다. 통증 완화에 큰 도움이 됐지만 중독을 초래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복잡한 수술을 받고, 치명적 질병을 극복한 생존자들이 늘었다. 이들은 부작용으로 만성 통증에 시달렸고, 의사들은 이런 환자들을 상대로 좀 더 적극적으로 오피오이드를 처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퍼듀 파마 같은 제약회사가 대대적으로 오피오이드 홍보에 나서고, 의학계가 이들 제약회사의 강력한 로비에 포섭되면서 '오피오이드의 대유행'이 시작됐다. 최후의 보루인 미국식품의약국(FDA)은 규제는 고사하고 오피오이드 신제품을 손쉽게 승인함으로써 이 같은 유행을 부채질했다.
저자는 "중독성 처방 약물의 대유행은 단순한 개별 환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의료시스템 전체가 휘청이고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음이자, 처방 약물에 중독된 환자만이 아닌 모든 환자와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를 향해 변화를 촉구하는 외침"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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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같은 현상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장창현은 "미국에서 과잉 처방을 부추기는 요인들 상당수는 한국에서도 놀라울 만큼 비슷한 양상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일단 환자에 대한 상담보다는 약 처방이 치료의 중심이다. 정신 치료 수가가 낮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드는 상담보다는 신속하게 약을 처방하는 걸 의사들은 대체로 선호한다. 한국의 정신과 외래 진료 시간은 10분 미만으로 비교적 짧다.
아울러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의존성이 있는 약물 처방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항불안제, 수면유도제인 졸피뎀, 정신자극제인 메틸페니데이트 등 의존성과 남용 위험이 명확한 약물들의 처방에 대한 장벽이 낮다고 장 전문의는 지적한다. 엄격한 국제적 기준과 달리 반복 처방과 다약제 처방이 여전히 흔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중독성 처방약물에 신중을 촉구하는 의사들 옮김. 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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