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중국 등 우방국가 지원 표명…한계 봉착한 시민들 '기대'
"쿠바 시간 벌었지만 유조선 한 척이 문제해결 요술지팡이 아냐"
미국 한발 물러났지만…대(對) 쿠바 봉쇄정책 변함없다 표명

쿠바의 거리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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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러시아산 원유가 쿠바에 도달하고, 세계 시민사회와 인도단체를 중심으로 구호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쿠바가 최악의 에너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미국이 이란 전의 수렁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중국, 멕시코, 브라질 등 좌파 연합의 지원으로 고사 직전에 내몰렸던 쿠바는 다소 활력을 얻는 모양새다.
그러나 노후화한 발전 시설과 고질적인 에너지 부족 탓에 한 두차례에 걸친 외부의 에너지 지원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쿠바 원유지원 러시아 선박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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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 달 만에 도착한 '석유의 맛'
30일(현지시간) AP통신·AFP통신·타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유조선 '아나톨리 콜로드킨'호는 약 73만 배럴(약 10만t)의 석유를 싣고 쿠바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위치는 불분명한 가운데 현재 쿠바의 마탄산스 항을 향해 이동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월9일 8만6천 배럴 분량의 멕시코산 원유가 도착한 이후 약 석 달 만에 온 외부 원조다.
마탄사스항 근처를 산책하던 로사 페레스(74)씨는 이날 "우리는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우리가 그 석유를 얼마나 절실히 필요로 하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그는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며 "이제는 정말 한계에 봉착했다"고 덧붙였다.
그간 쿠바는 에너지의 60%를 해외에 의존했다. 특히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에 기댔다. 그러나 올해 1월 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국에 압송되면서 지원이 뚝 끊겼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와 쿠바의 석유 거래를 금지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쿠바에 석유를 제공하는 국가들에 대해선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까지 서명했다. 세계 최강국의 위협 속에 우방들까지 몸을 사리면서 쿠바는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겪었다.
3월 들어서만 세 차례의 전국적 '블랙아웃'이 발생했다. 냉장고 가동이 중단되고, 차량 이동이 제한되는 등 일상생활은 고사하고, 암 환자들의 수술까지 미뤄지는 등 국민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분노한 시민들이 공산 당사를 공격하는 등 공산정권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반정부 소요 사태까지 빚어졌다.

쿠바의 태양광 패널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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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전 수렁에 빠진 미국, 목소리 내는 우방들
미국의 봉쇄 탓에 정권 좌초 위기까지 내몰리자 우방국들이 지원에 나섰다. 특히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사이, 쿠바는 냉전 시대부터 전통적인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에 잇달아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 국가도 중동 전황을 살피며 이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미국이 쿠바에 경제적,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고, 중국도 지속해 쿠바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은 이날도 외교부 성명을 통해 "중국은 쿠바가 국가 주권과 안보를 수호하는 것을 굳건히 지지하며, 외부의 간섭에 반대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는 이날 첫 원유 지원을 시작으로 지속해서 쿠바에 원유를 공급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쿠바 국민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중국 외에도 멕시코, 브라질 등 맹방들도 지원사격에 나설 방침이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쿠바에 제공될 수 있는 인도적 지원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이는 멕시코의 주권적인 결정"이라며 원유 지원을 시사했다. 브라질도 2만t 넘는 식량과 함께 구호물자를 쿠바에 보냈다. 세계 시민 사회도 여기에 동참했다. '누에스트라 아메리카 콘보이'(우리들의 아메리카 호송단)는 쿠바에 식량과 의약품 등을 지원하고 있다.

'누에스트라 아메리카 콘보이' 활동가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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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지원은 "그저 시간 벌기 일뿐"
그러나 러시아 원유를 비롯한 우방국의 도움은 쿠바가 봉착한 어려움에 견줘봤을 때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스페인 EFE 통신에 따르면 쿠바는 하루 약 10만배럴의 석유가 필요하다. 이 가운데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석유는 4만배럴에 불과하고, 6만배럴은 해외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러시아산 원유가 들어왔다고 해도 열흘 남짓만 버틸 수 있는 분량이라는 뜻이다.
미국 텍사스대 석유 전문가인 호르헤 피뇬은 뉴욕타임스에 "이번 조처로 쿠바는 시간을 벌게 됐다"며 그러나 "이 유조선 한척이 도착했다고 해서 쿠바의 모든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는 '요술지팡이'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입항한 원유를 다른 석유 제품으로 정제하는 데 약 3주일이 소요되고, 이를 전국으로 배분하는 데는 다시 일주일이 걸린다.
아바나에서 이날 택시를 기다리던 정원사 라울 포마레스(56)도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는 AFP에 "이 나라에 필요한 양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뿐이다.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일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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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쿠바의 에너지난은 계속되고 있다. 쿠바전력청은 이날 오후 야간 피크시간대에는 1천850MW의 전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봉쇄의 주체인 미국 입장이 본질적으로 변화한 점이 없다는 것도 쿠바로선 해결해야 할 과제다.
미국의 묵인하에 러시아 석유가 쿠바에 들어왔지만, 백악관은 미국의 대(對)쿠바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런 결정은 향후에도 '사안별'로 처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미국이 러시아 유조선의 쿠바행을 용인한 데 대해 인도적 차원이라면서 "이것은 정책 변화가 아니며, 제재 정책의 공식적인 변화는 없다"고 강조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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