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 걱정 덜어준 실업팀…후배들에겐 "금메달 딸 때까지 멈추지 않길"
내년 여름엔 '동동이' 아빠로…은퇴 바라는 아내에게 진심 담은 감사

23일 동메달을 확정한 이후 기뻐하는 홍성욱(왼쪽에서 네 번째)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본프리뷰
(도요하시[일본]=연합뉴스) 김동한 기자 = "동생들이 너무 잘해서 이젠 은퇴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남자 골볼을 지탱해온 홍성욱(37·충청남도장애인체육회)은 23일 동메달을 목에 건 뒤 은퇴 고민을 털어놨다.
한국은 이날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남자부 골볼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란을 6-4로 꺾었다.
직전 항저우 대회에서 이란에 패해 놓쳤던 동메달을 되찾아 2018년 인도네시아 대회 이후 8년 만에 시상대에 섰다.
대표팀 맏형 홍성욱에게도 이번 동메달은 감회가 남달랐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이 나빠져 맹학교로 전학한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체육 교사의 권유로 골볼을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한 운동에 재능을 보인 그는 2006년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2010년 광저우 대회 은메달과 2018년 인도네시아 대회 동메달을 함께했고, 공격과 수비를 두루 맡으며 대표팀의 주축으로 뛰었다.
그렇게 20년이 흐른 지금 그는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
홍성욱은 "지난 대회도 지지난 대회도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뛰었다"며 "이번에 선발되기까지 어린 친구들하고의 경쟁이 너무 어렵더라"라고 고백했다.
과거 홍성욱에게 태극마크는 생계를 잠시 내려놓아야 달 수 있는 것이었다.
실업팀이 없던 시절, 대학생 선수들은 휴학했고 직장인들은 휴직하거나 일을 그만둔 뒤 대표팀에 합류했다. 합숙과 대회가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거나 새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홍성욱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본프리뷰
하지만 2019년 충남에서 국내 첫 골볼 실업팀이 출범한 뒤 여러 선수단이 꾸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선수들은 안정적인 소속팀에서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홍성욱은 "시각장애인 선수들에게 태극마크는 의미가 더 크다"며 "경제적인 걱정을 하지 않고 온전히 나라를 위해서만, 성적을 위해서만 뛸 수 있게 된 대회가 이제 두 번째"라고 말했다.
이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따낸 첫 메달이다 보니까 굉장히 뜻깊다"며 "앞으로 선수들의 미래가 훨씬 더 밝아질 거라고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남자 골볼 대표팀은 아직 아시안패러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금메달 어차피 딸 거니까 그때까지 멈추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마디를 남겼다.
홍성욱은 내년 여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금메달을 따면 배 속 아이에게 '금동이'라는 태명을 지어주려 했다. 동메달을 목에 걸었기에 태명은 '동동이'가 될 예정이다.
아내는 고된 훈련과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남편을 걱정하며 내심 은퇴를 바라는 입장이다. 그래도 남편이 골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기에 자신의 바람을 접어두고 묵묵히 응원해왔다.
홍성욱은 "운동하다 보면 힘들고 몸도 다치다 보니까 아내는 사실 은퇴하기를 바란다"며 "그런데도 제가 좋아서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항상 '열심히 해라, 잘될 거다'라고 응원해준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아내에게 진심이 담긴 한 마디를 전했다.
"항상 묵묵하게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안 다치는 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열심히 해볼게요."

<패럴림픽> 대한민국 골볼 공격
(런던=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2012 런던장애인올림픽 골볼 한국과 중국 예선 경기가 1일 오전(한국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파크 내 골볼경기장에서 열려 홍성욱이 상대편 골대를 향해 공을 굴리고 있다. 2012.9.1 hak@yna.co.kr
원본프리뷰
moved@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