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40% 폭등·亞 통화 추락…"K-반도체, AI 방화벽 역할"
유로존 경제활동 위축…미 국채 30년물 2007년 이후 최고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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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 중동전쟁 발발 3개월을 맞아 글로벌 자산 시장에서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전 세계 원유·천연가스 약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지속되면서 에너지 공급 위기와 고유가 장기화 우려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 속에서 채권 시장과 에너지 수입국들이 패자로 전락했다.
반면 미국 달러화와 인공지능(AI) 수혜를 입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대외 악재를 방어하는 '승자 진영'에 안착했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개전 이후 국제 유가는 약 40% 급등해 현물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4월 초에는 전쟁 이전 수준의 거의 두 배까지 치솟기도 했다. 주요국이 사상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고 대체 공급원을 확보하면서 충격을 일부 완충했지만, 글로벌 에너지 수급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을 오가는 선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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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증시는 AI 낙관론과 평화협상 기대감에 힘입어 유가 충격을 비교적 잘 버텨내고 있다.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고, 한국과 유럽 증시도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로이터는 "AI 랠리에 힘입어 SK하이닉스가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 이정표를 돌파하며 메모리 반도체 경쟁사인 삼성전자, 마이크론과 함께 '1조 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고 전했다.
하지만 업종별 온도 차는 뚜렷하다. 글로벌 공급망 마비와 인플레이션 재점화라는 직격탄을 맞은 내수·소비재 섹터는 '패자의 영역'으로 밀려났다. 특히 중동 지역의 공역 폐쇄와 운항 차질 여파가 장기화하면서 S&P 500 항공주 지수는 개전 이후 6% 이상 하락했다.
전 세계 중·상류층의 소비심리 척도인 '로이터 글로벌 명품 바스켓 지수' 역시 전쟁 발발 이후 10% 급락했다. 인플레이션이 소비 심리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HSBC 프라이빗뱅크의 윌렘 셀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소비재·서비스 부문에 대해 '비중 축소'(underweight)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며 "분쟁이 격화할 경우를 대비한 헤지"라고 설명했다.

미국 달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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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자산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미 달러화도 승자 진영에 섰다. 달러화는 전쟁 발발 이후 주요 통화 대비 1.5% 절상되며 스위스 프랑과 엔화를 앞지르는 강세를 보였다. 미 국채 금리 상승도 달러 매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일부전문가들은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하며, 향후 전쟁이 종식되면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통화는 중동전쟁 직격탄을 맞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아시아 국가들이 수입하던 원유의 약 80%가 차단된 탓이다. 인도 루피, 인도네시아 루피아, 필리핀 페소는 모두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 스리랑카 중앙은행은 26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100bp(1bp=0.01%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아시아에서 위안화만이 중국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에 힘입어 상대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유가 급등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 큰 타격을 입히기 마련이다. 5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21개국)의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합친 S&P 합성 구매관리자지수(PMI)는 2년 6개월 만에 가장 가파른 속도로 위축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7일 보고서에서 전쟁이 유럽의 금융 취약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기업들도 에너지 비용 급등에 따른 비용 상승과 생산 감소를 보고했다.
미국은 원유·가스 자급국인 데다 AI 투자 붐이 이어지면서 경제적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했지만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56달러로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채권 시장도 약세를 면치 못하며 패자 진영에 서 있다.
에너지발 인플레이션 우려로 중앙은행들이 고금리 장기화 리스크를 반영하기 시작한 데다 재정 및 군사비 지출 확대 전망이 더해지며 채권 가격 하방 압력은 가중됐다.
여기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인하 기조를 조기 종료할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하면서 미 30년물 국채 금리는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인 5%를 넘어섰다.
독일 분트 국채 금리도 15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으며, 시장에서는 ECB가 연내 최소 두 차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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