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눈물 닦고 4년 만에 지킨 '메달 약속'…"스노보드는 제 인생의 지지대"

동메달 따낸 이제혁
(서울=연합뉴스) 8일(한국시간) 이탈리아 코르티나 파라 스노보드 파크 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크로스에 출전한 이제혁이 동메달을 따고 기뻐하고 있다. 2026.3.8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pho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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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티나담페초=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한국 스노보드에 사상 첫 패럴림픽 메달을 안긴 이제혁(CJ대한통운)은 경기장을 빠져나와 익숙한 얼굴들을 마주하자 그대로 무릎을 꿇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들과 현장을 지키던 기자를 보자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한 듯, 이제혁은 한참 소리 내어 운 뒤에야 어렵게 입을 뗐다.
그는 "그저 너무 좋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며 "현실감이 전혀 없어서 나중에는 인터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 기억이 안 날 것 같다"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이제혁은 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파라 스노보드 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패럴림픽 스노보드 크로스 남자 하지 장애(SB-LL2) 결승에서 에마누엘레 페라토네르(이탈리아), 벤 투드호프(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한민국 장애인 스노보드 역사상 첫 패럴림픽 메달이다.
이제혁은 이번 대회 강력한 메달 후보는 아니었다.

동메달 따낸 이제혁
(서울=연합뉴스) 8일(한국시간) 이탈리아 코르티나 파라 스노보드 파크 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크로스에 출전한 이제혁이 동메달을 따고 기뻐하고 있다. 2026.3.8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pho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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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모았던 2022 베이징 대회에서 준준결승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최근 주요 국제대회에서도 눈에 띄는 입상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혁은 "대회를 앞두고는 저도 그냥 덤덤했던 것 같다. 베이징 때 너무 긴장을 많이 했다 보니, 이번에는 그때의 실패를 교훈 삼아서 그냥 일상 생활하듯이 평소처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도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예선을 6위로 마치면서 '잘하면 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며 "그래도 결과에 너무 연연하며 아쉬워하지 말고 '8등 안에만 들자'는 마음으로 편하게 임했다"고 털어놨다.
비우고 나니 기회가 왔다. 결승전 막판, 코스 안쪽을 파고들던 이제혁은 3위 알렉스 매시(캐나다)와 충돌하는 위기를 맞았으나 강한 집중력으로 중심을 지켜내며 역전에 성공했다.
이제혁은 당시 상황에 대해 "오늘 몸 상태가 괜찮았기에 4위더라도 뒤에서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무조건 들었다"며 "덕분에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침착하게 레이스를 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초등학교 시절 야구 선수로 활약하고 비장애인 스노보드 선수로도 활동했던 이제혁은 보드를 타다가 장애를 입었다.

동메달 따낸 이제혁
(서울=연합뉴스) 8일(한국시간) 이탈리아 코르티나 파라 스노보드 파크 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패럴림픽 스노보드 남자 크로스에 출전한 이제혁이 동메달을 따고 기뻐하고 있다. 2026.3.8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pho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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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 당한 발목 부상을 치료하다 2차 감염으로 인대와 근육이 손상됐다.
한동안 스노보드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그를 다시 설원으로 불러낸 것은 2018 평창 대회였다. 이제혁은 "평창 패럴림픽을 보면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제혁은 스노보드를 '인생의 지지대'라고 표현했다.
그는 "야구를 그만두고 방황했을 때 스노보드를 시작하며 마음을 다잡았고, 다치고 나서 다시 무너질 뻔했을 때도 스노보드를 타며 나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첫 패럴림픽이었던 4년 전 베이징 대회에서 이제혁은 우승을 목표로 야심 찬 세리머니를 준비했으나 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당시 그는 4년 뒤 패럴림픽에서 반드시 메달을 따고, 그때 준비했던 세리머니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마침내 시상대에 오르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이제혁에게 당시 아껴뒀던 세리머니를 보여달라고 청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죄송해요. 저 지금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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