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다문화 3.0] 파리서 온 마포 로르 "판소리 잘하는 외국인보다 소리꾼이 목표"
입력 2026.03.04 12:09수정 2026.03.04 12:09조회수 1댓글0

착하게 살면 고생 끝에 낙이오는 '흥부가' 제일 좋아 완창에 도전
국립국악원서 5월 10일 첫 공연…"판소리는 치유의 음악 테라피"


흥부가 완창 도전하는 마포 로르

[연합뉴스 자료 사진]

원본프리뷰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외국인이 판소리한다고 하면 다들 신기하게 생각하지만 내국인처럼 잘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하죠. 실제로 전문가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도 없고요. 그렇기에 제가 먼저 길을 내는 개척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오는 5월 10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만리길 넘어, 소리길 위에'라는 제목으로 판소리 흥보가 완창에 도전하는 마포 로르(42) 씨는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판소리 잘하는 외국인보다는 소리꾼으로 불리는 게 목표"라며 이같이 말했다.

카메룬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모 집으로 11살 때 건너와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는 대학 졸업 후 삼성전자 파리지사에서 근무하다 판소리를 만났다.

2015년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인 민혜성 명창의 공연을 관람하면서 판소리에 매료됐다.

본격적으로 배우려고 2017년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민 명창 밑에서 수학하면서 2021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들어갔고 현재는 석사과정을 다니고 있다.

외국인이 판소리를 배우는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전문적으로 배워서 흥부가 완창 무대를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르 씨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인 흥부가는 전래 동화인 '흥부와 놀부'를 판소리로 엮은 것인데 65쪽 대본에 글자 수만 3만2천764자나 돼 공연에 4시간이 걸릴 정도"라며 "중요 대목 한 소절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부르면서 관객에게 몰입감을 선사해야 하는 일이라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첫 완창 무대를 흥부가로 택한 이유가 분명했다. 흥부가 중에서 박 타는 대목을 가장 좋아해서다.

그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처럼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아온 흥부가 박 속의 보물을 얻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힘들어도 어질고 좋은 마음을 갖고 살면 복을 누리게 된다고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르 씨는 한국에 와서 판소리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 선뜻 제자로 받아주고 지금도 응원해주는 민 명창을 비롯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집세나 학비에 도움을 준 이들 등 수많은 응원 덕분에 소리꾼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며 행복해했다.

그는 "카메룬, 프랑스, 한국으로 삶의 무대를 옮기다 보니 디아스포라로 살면서 한(恨)의 정서도 이해하게 됐다"며 "도움을 받아 이 자리까지 온 내가 흥부가의 주인공과 다를 바 없다 싶어 진심을 담아 무대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흥부가 연습하는 마포 로르와 민혜성 명창

흥부가 완창 무대에 서기 위해 연습 중인 마포 로르(좌측)와 이를 지도하는 민혜성 명창. [연합뉴스 자료 사진]

원본프리뷰

로르 씨는 "서른이 넘어 판소리에 도전한 내가 무대에 서는 것은 '늦게 시작해도, 다른 길을 선택해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라며 "판소리가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있는 예술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희망했다.

그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지닌 판소리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며 '음악 테라피'라고 치켜세웠다. 다양한 목소리와 노래로 억눌렸던 감정들을 표출하기도 하고 쌓은 한을 풀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해학으로 웃음을 선사하는 매력이 있어서다.

한국으로 건너온 뒤 처음 나간 전주 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그는 흥부가의 한 대목인 화초장타령을 불렀는데 실력이 부족해 탈락했다.

당시 박자도 틀리고 발음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서 실망스러웠는데 무대에서 내려오니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다가와서 '우리 판소리를 공부하고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시면 좋겠다'고 말해서 크게 감동했다.

로르 씨는 "수상은 못했지만 더 큰 격려를 받았다"며 "언젠가 그 학생을 다시 만나게 되면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하고 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9년째 한국살이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2018년 파리 엘리제궁의 한-프랑스 정상회담 만찬장에서의 공연과 스승 민 명창과 2019년 카메룬에서 부모를 초청해 펼친 공연을 꼽았다.

그는 "프랑스에서는 양국의 문화를 잇는 역할을 펼쳤다는 자부심이 컸고, 카메룬에서는 어머니에게 인정받아서 행복했다"며 "언젠가는 전문 소리꾼으로 우뚝 서 스승인 민 명창처럼 또 다른 외국인을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포부도 전했다.

외국인 소리꾼 마포 로르, 판소리 완창 도전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으로 공연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는 마포 로르. [마포 로르 제공]

원본프리뷰

판소리를 외국어로 번역하기도 하고 때로는 외국어로 판소리 공연을 펼쳐 보이기도 하는 그는 "더 많은 이들이 판소리를 즐기고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창작 판소리에도 도전해보려고 한국 역사와 문화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류의 다양한 물결에 한몫하는 판소리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는 그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판소리는 한국 문화 중에서도 보물인데 사람들이 그만큼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더 많은 마케팅과 광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번 공연에 필요한 경비를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으고 있다는 그는 "공연 준비에만 몰두해도 부족한 시간에 여러 일을 진행해야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이 첫걸음을 통해 판소리를 배우거나 좋아하는 이들이 더 늘어난다면 바랄 게 없다. 많이 와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wakaru@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좋아요
0
댓글0
이 댓글에 대한 법적 책임은 작성자에게 귀속됩니다.
0/300
한일생활정보 한터
한터애드
딤채냉장고
작은별여행사
국제익스프레스
디지텔
냥스튜디오
미라이덴탈클리닉
오규성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