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K-people] 강병인 서예가 "광화문 현판, 한글로 바꿔야"
입력 2026.01.23 05:47수정 2026.01.23 05:47조회수 2댓글0

"한자 현판은 中 속국 이미지 남겨"…한글 단체와 15년간 외쳐
IMF 후 서예가로 전업…"'참이슬' 글씨, 천 번도 넘게 썼어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강병인 서예가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지난 16일 강병인 서예가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작업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1.16. seva@yna.co.kr

원본프리뷰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한글은 단순한 표음문자가 아니라 하늘·땅·사람의 이치를 담은 입체적인 생명체입니다. 광화문 현판만큼은 훈민정음체 한글로 바꿔 우리 문화의 뿌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강병인 서예가는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작업실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광화문 현판 한글화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2010년 한자 현판이 복원된 이후 15년째 한글 단체들과 함께 문제를 제기해 온 인물이다.

강 서예가는 현재의 현판에 대해 "흑백 사진을 디지털로 복원한 결과물이라 살아있는 기운이 없다"며 "광화문의 역사성과 미래 가치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가 상징인 광화문에 한자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은 여전히 중국의 속국 같은 이미지를 줄 수 있다"며 "모든 현판을 바꾸자는 게 아니라, 상징성이 큰 광화문 하나만이라도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체로 교체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유홍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제안한 '상단 한자·하단 한글' 병기안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이제는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그는 "문화재 보존과 한글의 미래 가치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합리적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고(故) 이어령 전 장관도 생전에 제 훈민정음체 현판 시안을 보고 '지금 당장 달면 되겠다'고 지지하셨던 육성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강병인 서예가가 제작한 훈민정음체 광화문 현판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강병인 서예가가 제작한 훈민정음체 광화문 현판. 2026.1.16. seva@yna.co.kr

원본프리뷰

한글을 조형예술로 재해석해 세계에 알려온 그의 이런 신념은 평생 붓과 함께해온 삶에서 비롯됐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담임교사의 권유로 서예를 시작한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시련 앞에 큰 전환점을 맞았다. 운영하던 디자인 회사를 정리하고 '가장 좋아하는 일'인 서예를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붓을 잡고 글씨를 쓰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며 "붓을 잡는 법부터 엄하게 가르치고 정신과 조형을 중시하는 동양 서예와 도구를 바로 잡아 쓰는 서양 캘리그라피는 결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캘리그라피'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지만, 자신의 작업은 전통 서예를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글자가 가진 뜻과 소리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강 서예가는 전통 서예를 현대적 디자인에 접목했다. "꽃은 꽃처럼, 봄은 봄처럼 표현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한글의 조형성을 극대화했다. 예컨대 '솔'이라는 글자에서 종성 'ㄹ'은 뿌리가 되고, 중성 'ㅗ'는 가지, 초성 'ㅅ'은 솔잎이 되는 식이다.

서예 작업하는 강병인 서예가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지난 16일 강병인 서예가가 작업실에서 서예 작업을 하고 있다. 2026.1.16. seva@yna.co.kr

원본프리뷰

모음의 길이를 늘이거나 방향을 바꾸면 소리의 높낮이·길이·리듬까지 시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강 서예가는 한글의 구조적 특징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초성은 하늘, 종성은 땅, 중성은 사람의 역할을 하며 공간 개념이 생긴다는 것이다. 천·지·인으로 나눠진 기본 틀 안에서 입체성과 쌓임의 구조가 가능해졌고, 이는 다른 문자 체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디지털 시대 손 글씨의 쇠퇴에 대해서는 "키보드 위주의 생활로 악필이 늘었지만, 반대로 손 글씨의 가치는 더 부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교보문고 손 글씨 공모전 참가자가 10년 전 2천~3천 명에서 올해 7만 명으로 급증한 사례를 들며 "쓰는 행위 자체의 재미와 감정 개입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 서예가의 이러한 신념은 IMF 외환위기라는 위기를 계기로 본격적인 서예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더욱 굳어졌다. 상업 작업의 시작 역시 그 시기부터였다.

디자인 회사가 문을 닫은 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한 끝에 서예를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일본에서 전통 서예를 간판·패키지·로고에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에서도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대표작인 '참이슬'은 2005~2006년경 작업했다. 어린 시절 진로(참이슬 전신 회사)가 후원한 서울 수학여행을 떠올리며 정성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낮은 도수(19.8도)로 여성 소비자층을 넓히려던 전략에 맞춰 '슬'자에 여성의 머리 묶은 형상을 은은하게 넣었다고 밝혔다. "천 번도 넘게 썼다"는 말에서 작업의 치열함이 엿보인다.

강병인 서예가의 대표작인 '참이슬'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2023.10.31. scape@yna.co.kr

원본프리뷰

'화요'는 한자 요(遼) 자가 읽기 어렵다는 이유로 2009년 한글로 바꿨다. 불처럼 타오르다 고요해지는 술의 성질을 '화' 자에 매화 한 송이가 피어나는 이미지로 재해석했다.

그는 상업 작업의 핵심으로 "제품의 정성·시간·원료·콘셉트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꼽았다. 획 하나하나에 기운이 생동해야 하며, 병 라벨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가독성과 장기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동시에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병인 서예가가 작업한 '화요'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강병인 서예가가 제작한 '화요'. 2026.1.16. seva@yna.co.kr

원본프리뷰

최근 비엔나·베니스 전시와 모스크바·스페인·인도네시아·호주 한국문화원 초청 강연·퍼포먼스 경험을 통해 "외국인들이 '꽃이 꽃처럼' 보인다는 점에 가장 큰 감동을 한다"고 했다. 한글의 천·지·인 원리를 설명하면 더욱 공감한다는 반응도 많았다.

강 서예가는 앞으로 2028년 30주년 기념 전시를 준비하면서 ▲ 한글에 대한 오해 해소 ▲ 올바른 한글 쓰기 교육 ▲ 한글 조형성을 넘어서는 순수 작품 활동 ▲광화문 현판 운동 지속 등을 계획하고 있다.

tvN 8주년 특별기획 '미생'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강병인 서예가 작품인 tvN 8주년 특별기획드라마 '미생'. 2026.1.16. seva@yna.co.kr

원본프리뷰

그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붓끝의 무게, 경험, 상상력은 대체할 수 없다"며 "더 뒤로 돌아가 서예 본질에 충실히 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한글의 뿌리 정신을 미래 세대에 제대로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덧붙였다.

phyeonsoo@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좋아요
0
댓글0
이 댓글에 대한 법적 책임은 작성자에게 귀속됩니다.
0/300
한일생활정보 한터
한터애드
딤채냉장고
작은별여행사
디지텔
냥스튜디오
미라이덴탈클리닉
오규성 변호사
하나송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