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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⑺ 다시 피로 물든 다르푸르
입력 2026.01.08 12:29수정 2026.01.08 12:29조회수 0댓글0

김영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완 서강대 교수

[김영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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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 수단 지도

[제작 양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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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수단의 다르푸르에서는 제노사이드(대량학살)가 발생했다. 아랍계 정부군은 준군사조직인 잔자위드(Janjaweed)를 동원해 비아랍계 주민을 학살했다. 그 결과 20여만명이 사망하고 200여만명의 강제이주민이 발생했다. 당시 국제사회는 다르푸르 제노사이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제노사이드 이후에도 다르푸르는 쉽게 안정을 되찾지 못한 채 불안정과 폭력이 이어졌다.

<그래픽> 수단 반군 공세 강화

(서울=연합뉴스) 김토일 기자 = 수단 다르푸르의 반군이 공세를 강화해 수도 하르툼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중동 현지 일간지 걸프뉴스가 2013년 4월 28일 보도했다. kmtoil@yna.co.kr

필자는 2022년 여전히 위태로웠던 다르푸르를 방문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첫 번째 가장 흔한 반응은 "다르푸르가 어디야"라고 묻는 것이다. 20여 년 전의 제노사이드에도 불구하고 다르푸르는 많은 이들에게 잊힌 이름이 되어 있었다.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던 참극의 현장조차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것이다.

두 번째 반응은 "그 위험한 곳을 왜 가느냐, 어떻게 가느냐, 가는 것이 가능하냐"였다. 다르푸르를 아는 사람은 그곳이 아직도 불안정하고 언제든 갈등이 다시 폭발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제노사이드 이후 20여 년이 지나도 다르푸르는 완전히 복구되지 못했다. 위기는 늘 표면 아래 숨어 있었다.

다르푸르 지역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세계식량계획(WFP)이 운영하는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유엔 직원들은 이 비행기를 다르푸르의 완행버스라고 불렀다. 민간 항공 노선이 활발히 다니지 않다 보니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 직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동 수단이었다. 자주 뜨고 내리는 노선이 아니었기에 이동에 시간이 다소 걸릴 뿐, 실제 비행 자체는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았다. 기내에서는 서로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직원들도 있었고, 지역 상황에 대해 담담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도 보였다.

WFP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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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푸르에 도착한 뒤 인터뷰가 예정된 마을로 이동할 때는 무장 경찰이 동행했다. 경찰의 에스코트는 최근 지역 내 소규모 충돌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 기본적인 예방 조치였다. 경찰이라고 하지만 기관총으로 무장한 그들은 마치 군대처럼 느껴졌다. 분위기가 지나치게 긴박하거나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조치 자체가 다르푸르의 불안정이 여전히 진행형임을 보여줬다. 먼지 날리는 흙길을 따라 무장한 경찰차가 앞서 움직이고, 우리 차량이 그 뒤를 따르며 마을로 향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갈등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지역에서는 이런 조치가 일상의 일부였다.

무장 경찰과 필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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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자 많은 주민이 하나둘씩 나와 우리를 반겨줬다. 외부 방문객이 흔치 않은 지역이라 우리 일행이 신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에는 경계보다 따스함이 스며있었다. 아이들은 우리 주위를 따라다니며 장난치고, 어른들은 손짓으로 의자를 내주거나 그늘에서 쉬어가라며 다가왔다.

마을주민과 함께 기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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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우리가 방문한 마을의 이장은 마을 곳곳을 직접 안내하며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문득 필자에게 "마을의 부이장으로 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어 만약 그렇게 결정한다면 "살 수 있는 집도 마련해 주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의 표정에는 진심 어린 호의와 신뢰가 배어 있었다. 그는 우리를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라 호의를 베풀 손님으로, 나아가 함께할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을 시장의 모습

[김영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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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마을 곳곳을 가득 채운 평온함과 주민들의 따뜻함이 왜 이 지역을 지탱하는 힘인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떠들썩한 시장에서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만들거나 팔았다.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고, 염소는 느긋하게 길을 건넜다. 갈등의 상흔이 남은 땅에서도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와 신뢰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장이 건넨 그 제안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다르푸르 주민들이 가진 넉넉한 환대와 공동체적 감수성의 표현이었다. 오랜 시간 폭력과 불안정을 견디면서도 마을의 주민들은 여전히 외부인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 살아갈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안타깝게도 2023년 4월 수단은 돌연 다시금 내전에 휩싸였다. 내전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여 년 전 다르푸르 제노사이드를 주도했던 잔자위드는 신속지원군(RSF)이라는 이름으로 재편됐다. 한때 우호 진영이던 수단 정부군을 공격하면서 내전은 전국적으로 번졌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건만 수단 내전은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언론의 관심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외교적 개입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국내실향민과 난민을 포함한 강제이주민은 1천2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단 전체 인구 4분의 1이 삶의 터전을 잃은 셈이다.

RSF의 드론 공습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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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한 것은 다르푸르가 다시 제노사이드로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다르푸르의 사상자가 50만명에서 60만명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추정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나마도 현장 접근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어, 실제 규모는 더 클 가능성이 높다.

필자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며 부이장으로 오라고 농담 반 진심 반의 제안을 했던 그 이장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살아 있는지,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는지, 혹은 마을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 어떤 정보도 듣지 못했다. 그는 정치적 행위자도, 무장 세력도 아니었다. 그저 마을을 지키며 주민들과 일상을 이어가던 평범한 마을의 지도자였다. 그런 이들마저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져간다는 사실은 필자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다르푸르의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들은 내전이 시작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전쟁을 원한 것도 아니고, 갈등을 조장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과 권력의 욕망은, 결국 인간 자체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다르푸르는 지금 그 잔혹한 현실을 다시 겪고 있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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