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과 통제, 자립과 협력 사이 'AI 딜레마'
싱가포르·프랑스·중국의 선택은 모두 생태계 강화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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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조성미 현혜란 기자 권영전 특파원 = 인공지능(AI) 기술이 국가 경쟁력과 안보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AI 주권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 정부도 산업계 AI 전문가들을 대통령실과 내각에 포진시키는 한편 '국가 대표 AI'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대표할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나섰다.
외국의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기술 종속과 데이터 통제권을 잃을 우려가 있고, 반대로 주권과 자립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자칫 기술 고립과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딜레마에 직면한 상황이다.
또 일각에서는 거대 모델 개발에만 매몰될 경우 실제로 AI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 개발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AI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척도로 여겨지면서 관련 핵심 인재의 육성과 유치 전략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는 해외 현지 취재를 통해 미국 이외에 글로벌 AI 강국으로 꼽히는 중국과 프랑스, 싱가포르가 이와 같은 딜레마와 과제를 산업 생태계 구축을 통해 풀어내는지 확인해봤다.
◇ 개방으로 경쟁력 확보…보안으로 통제권 수호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2024 AI 대비지표'(AIPI)에서 세계 1위에 오른 싱가포르는 빅테크 협력과 자립 모델 개발을 병행하며 유연성을 확보했다.
싱가포르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등을 전방위로 유치해서 최신 AI 기술을 먼저 시험하는 '테스트 베드' 역할을 자처했다. 이를 통해 AI 노하우를 확보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포석인 셈이다.
미국 기업뿐 아니라 중국 알리바바·화웨이 등과도 산학 협력 등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싱가포르는 자체 AI 모델 구축을 통해 기술 종속이나 미·중 패권 경쟁의 위험을 회피하는 방안도 병행했다.
공공부문의 AI 도입 역시 저위험 업무 분야는 해외 기업과 협업하고, 민감한 분야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위험-편익 평가 체계를 갖춰 경쟁력 확보와 통제권 수호를 모두 달성하고자 했다.
프랑스는 싱가포르보다 강력한 국가 주도 투자를 통해 AI 주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택했다.
프랑스 정부는 2018년부터 5년간 25억 유로(약 4조1천200억원)를 투자했으며 특히 AI 개발과 구동에 필수적인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H100 1만∼1만5천 장에 해당하는 컴퓨팅 파워를 국가 연구소나 기업에 제공하는 등 국가가 적극적으로 인프라 구축을 도맡았다.
유럽을 대표하는 AI 모델 '르샤'(Le Chat)의 개발사 미스트랄AI는 이런 지원에서 나왔다는 게 알렉시스 바코 프랑스 경제재정부 AI정책실 책임자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AI 모델 개발 전략과 관련해서는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신중한 태도로 AI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자세를 견지했다.
강력한 개인정보와 데이터 규제로 유명한 유럽 국가답게 프랑스도 AI에 활용될 수 있는 민감 정보는 익명화하거나 합성 데이터로 대체하고 클라우드를 이용할 때도 관련 기준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미국으로부터 전방위 견제를 받는 중국은 AI 모델은 물론이고 반도체까지도 가격과 효율이 떨어지는 자국 제품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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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거대 모델에서 에이전트까지
챗GPT, 클로드, 제미나이, 그록 등 세계를 선도하는 LLM의 이름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지만, LLM의 발전이 점차 성숙기에 도달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AI 시장의 흐름이 이제 LLM 경쟁에서 실제 이용자의 실질적인 과제를 해결해주는 AI 에이전트 경쟁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자리를 잡은 AI 에이전트 기술 스타트업 '스윗'의 이주환 대표는 수행하는 과제의 세부 단계별로 대형 모델과 소형 모델, 추론 모델을 유기적으로 엮어 협력하게 만드는 에이전트 시스템 경쟁이 AI 주권의 다음 단계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AI 기업이면서도 자체 AI 모델이 없는 팔란티어가 다양한 기존 외부 모델을 활용해 방대한 데이터를 결합·분석해 특히 국방과 공공 분야에서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도 AI 주권 측면에서 시사점을 주고 있다.
프랑스도 대형 모델과 대규모 데이터보다 모델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즉 에이전트적인 행동을 어떻게 학습시키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
반면 범용 LLM의 성능이 크게 개선되면 개별 과제에 특화된 소형 모델까지 압도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범용 거대 모델의 개발과 업그레이드에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다.
◇ AI 생태계 구축 가장 중요…인재 유치도 도움
AI도 결국 시장에서 평가받는 상품인 만큼 AI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 생태계라는 데 모두가 의견을 같이했다.
싱가포르가 기술 종속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외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한 것도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였고, 프랑스가 기업에 GPU 컴퓨팅 파워를 제공한 것도 생태계를 조성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엔비디아의 칩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던 중국이 자체 칩을 개발하며 'AI 굴기'를 이뤄낼 수 있었던 데는 중국 정부의 지원도 물론 있었겠지만, 드넓은 AI 생태계가 든든한 '뒷배'가 돼준 덕분이다.
실리콘밸리에서도 글로벌 에이전트 생태계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 AI 주권과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제안이 나왔다.
특히 AI 개발 경쟁에서 가장 치열한 인재 경쟁도 우수한 생태계에 달려 있다는 것이 바코 프랑스 AI정책실 책임자의 분석이다.
관련 산업 생태계가 우수하다면 AI 핵심 인재가 미국 등으로 떠나지 않고 잔류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도 'AI 견습 프로그램'(AIAP)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이들이 참여하는 AI 시스템 개발 사업 '100E'를 통해 이들이 기업에서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하는 '인재확보-취업' 생태계 구축 사례를 보여줬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