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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도 유동성 위기…연준의장처럼 통화 공급한 황제
입력 2025.09.17 12:27수정 2025.09.17 12:27조회수 0댓글0

신간 '머니: 인류의 역사'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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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로마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는 권력을 내놓고 로마를 떠나 섬에 은거했다. 그가 정사에 별로 간여하지 않자, 야심많은 세야누스와 원로원 귀족들이 권력을 찬탈하고자 쿠데타를 공모했다. 정치적 술수는 그의 양부이자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에 필적했으나 결코 속을 드러내지 않았던 티베리우스가 은거하며 기다린 건 숨어있는 정적들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티베리우스는 쿠데타 세력을 일망타진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원로원 의원들을 경제적으로 옥죄기 시작했다.

티베리우스는 원로원 의원들 총수입의 일정 비율을 이탈리아 본토에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원로원 의원들 대다수는 식민지인 '속주'에 있는 투기성 땅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기간 무더기로 매물이 쏟아지자 속주는 물론, 로마 집값까지 크게 하락하면서 유동성 위기가 불거졌다. 원로원 의원과 로마 귀족 대다수가 땅과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다시 땅을 사는 행위를 반복하며 부를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파산이 도미노처럼 발생했다. 마치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같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카프리섬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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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그랬던 것처럼, 티베리우스도 막대한 돈을 뿌리며 신용경색 해결에 나섰다. 그는 1억 세스티르티우스(고대로마의 화폐단위)를 신용시장에 투입해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은행(대출자)들을 긴급 구제했다. 마치 현대의 중앙은행장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그 대가로 대출금의 두 배에 해당하는 토지를 담보로 받았다.

작가이자 더블린 트리니티칼리지 겸임교수인 데이비드 맥윌리엄스는 신간 '머니: 인류의 역사'(포텐업)에서 이 같은 티베리우스의 결정을 두고 "티베리우스가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버냉키에게 각본을 써준 격이었다"고 설명한다.

금융위기로 파산한 리먼브라더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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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기원전 3천년경 무렵 수메르 시대부터 현재의 암호화폐까지, 돈의 역사를 추적해 들려준다. 수메르 시대 농민 쿠심이 33.33%의 금리로 돈을 빌려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린 일, 최초로 금화와 은화를 만들어 화폐를 유통한 고대 리디아인의 명민함, 지중해의 금융질서를 장악하며 한때 패권을 차지한 아테네의 일화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의 발전은 금융 기술의 발전과 함께했다. '0'을 발견한 인도인들로부터 수학을 들여와 발전시킨 아랍인들은 8~12세기 서구와 아랍 문명을 장악했다. 유럽인들은 0을 활용한 아랍인들의 연산 능력을 '사라센의 마법'이라 부르며 신기해했다. 곧, 아라비아 숫자를 도입한 유럽도 그들의 뒤를 따르면서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그 과정에서 금융업이 발달한 피렌체는 유럽 제일의 부유한 도시로 성장했고, 그 중심에는 유럽 기축통화로 성장한 피렌체 화폐 '플로린'이 있었다.

[포텐업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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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서구 문명의 발전과 돈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막대한 금·은을 가져와 한때 유럽 강국으로 도약한 스페인과 포르투갈, 금융업을 토대로 세계 패권에 도전한 강소국 네덜란드, 조세 등 돈 문제에 영향을 받아 촉발된 프랑스 혁명,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벌인 착취를 통해 부를 쌓았던 유럽 식민주의 국가들, 위조지폐를 대량 공급해 영국을 무너뜨리려 했던 히틀러의 계략, "금융 로비 단체"들의 덕을 보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디지털 위조지폐"에 가깝다고 저자가 평가한 암호화폐 등 금융의 역사를 흥미로운 사건과 함께 들려준다.

돈을 둘러싸고 명멸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큰돈을 벌다가 망하기를 반복했던 "재능 많은 기회주의자" 구텐베르크의 부적절한 처신, 네덜란드의 성공을 배우기 위해 현지 조선소에 위장 취업한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야망, 나폴레옹으로부터 '비단 양말을 신은 똥 덩어리'라고 조롱받았지만 변신을 거듭하며 오랜 세월 권력을 누린 책략가 탈레랑의 권모술수, '율리시스'를 쓴 탁월한 소설가로만 알려졌지만 생각보다 능수능란한 사업가였던 제임스 조이스 등 독특한 인물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책은 2024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고 2024 아일랜드 도서상을 받는 등 호평을 받았다.

황금진 옮김. 448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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