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상품→인기상품 등 성별 표현 없애거나 제3의 표현 사용 움직임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최근 서울시의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표준 운영 매뉴얼' 개정 추진을 두고 일각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쟁점 중 하나는 성교육을 할 때 '연애' 대신 '이성교제', '포궁' 대신 '자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라는 매뉴얼의 내용이다.
이런 용어의 변경을 둘러싼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일상에서 익숙하게 사용했던 용어라도 성별 고정관념을 담고 있다고 여겨지면 보다 포용적인 '성중립 용어'로 바꿔 사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연애'와 '이성교제' 용어 논란은 2010년대 초반 있었던 '사랑'의 사전적 정의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2012년 국민신문고에 "이성애 중심적인 언어가 성 소수자 차별을 만든다"며 사랑의 정의를 바꾸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당시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랑'의 4번째 정의를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변경했다. 사랑의 주체를 '남녀' 대신 '어떤 상대'로 규정해 '성중립적'인 쪽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종교계를 중심으로 항의 민원이 잇따르자 국립국어원은 2년 만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랑'의 주체를 다시 '남녀'로 바꿨다.
이번 용어 사용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생활 속 성중립 용어 논의를 살펴봤다.

성평등언어(CG)
[연합뉴스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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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상품', '신사숙녀', '자매결연'도 '성차별적' 언어
성중립 용어는 특정 성별을 지칭하지 않거나 성별 고정관념을 배제해 모든 사람이 불편함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언어표현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성차별적인' 언어표현을 대체한 용어다.
어떤 것들이 성차별적인 언어표현일까.
국립국어원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발간한 '성차별적 언어표현 사례조사 및 대안마련을 위한 연구'(2007)에 따르면 성차별적 언어표현은 ▲ 한 성을 통칭해 남녀를 모두 포괄하거나 호명순서가 성차별적인 경우 ▲ 성별을 불필요하게 강조하는 경우 ▲ 특정 성의 고정관념적 속성을 강조하는 경우 ▲ 특정 성을 비하하는 경우 등이다.
유형별 대표 사례를 보면 '샐러리맨', '소년원', '바지사장', '신사협정', '효자상품' 등은 남성형이 여성까지 대표하는 단어이고, '얼굴마담', '모교', '팔방미인', '자매결연'은 반대로 여성형이 남성까지 포괄하는 표현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부모', '학부모', '신사숙녀', '아들딸' 등은 남성이 여성보다 먼저 호명되면서 결과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앞선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성차별적 표현으로 분류된다.
성별을 불필요하게 강조하는 경우는 '여배우', '여성과학자' 혹은 '청일점', '남자 리듬체조선수' 등과 같이 여성 혹은 남성임을 굳이 표현하는 경우를 말한다.
'여장부', '원더우먼', '꽃미남' 등과 같이 성별 이분법을 전제로 해서 여기에 맞지 않은 예외성을 강조하는 표현도 성별을 불필요하게 강조한 표현에 속한다.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내거나 성차별적 이데올로기가 포함된 표현으로는 '터프가이', '처가', '새댁' 등이 있다.
'된장녀', '양공주', '쩍벌남', '제비족' 등은 특정 성을 비하하는 표현에 해당한다.

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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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진로드'는 '웨딩로드'로…성별 표현 없는 제3의 표현으로 대체 제안
어떻게 하면 성차별적 언어표현을 성중립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김소영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성차별 언어와 대안어의 성격'(2022) 논문은 차별적 속성을 제거하는 방안을 ▲ 성별 표현을 제거하거나 통합해 성별 표현을 중성화하거나 ▲ 나머지 성별을 추가해 성별 표현을 대칭화하거나 ▲ 성별 표현이 없는 제3의 표현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분류했다.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2018∼2020년에 발표한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에서 구체적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성차별 용어와 개선안에 대해 시민들의 제안을 받고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사회적 영향력이 높아 우선해서 공유·확산해야 할 성평등 언어 10여건을 해당 기간 매년 발표했다.
여의사, 여배우 등 직업 앞에 '여'(女)를 붙이는 것, 여자만 다니는 고등학교를 유달리 '여자고등학교'라고 칭하는 것, 여자를 가리키는 3인칭 대명사를 남성 3인칭 대명사 '그'에 '여'를 붙여 '그녀'라고 하는 것 등이 성차별 언어표현으로 꼽혔다.
이런 표현들은 기본형이 남성임을 전제하고 여자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여'를 덧붙여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성평등 용어사전은 '여'를 붙이지 않고 '의사', '배우', '고등학교', '그'라고만 쓰자고 제안했다.
민법 등에서는 자녀를 뜻하는 단어로 아들을 지칭하는 '자(子)', '양자', '친생자'가 쓰이는데, 딸도 함께 지칭할 수 있게 '자녀', '양자녀', '친생자녀'로 바꾸자고도 제안했다.
성별이 불필요하게 강조되거나 성별 고정관념이 반영된 표현을 대체할 제3의 표현을 제시하기도 했다.
성평등 용어사전은 태아가 자라는 기관을 의미하는 자궁(子宮)의 경우 '자'가 아들 '자'임을 지적하며 이 단어 대신 세포를 품은 집이라는 뜻의 '포궁'(胞宮)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포궁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단어다.
아이들의 등·하원 버스 정류소를 지칭하는 '맘스스테이션', 온라인에서 운영되는 '맘카페', 학교 주변을 순찰하는 '마미캅'이라는 표현은 육아와 관련한 일들이 엄마(맘·Mom)의 일인 것인 양 간주한다고 해서 '어린이승하차장', '육아카페', '아이안전지킴이'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스포츠맨십', '효자상품' 등 남자/남성이 강조된 표현은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스포츠정신', '인기상품'으로 바꿔 쓰자고 했다.
또 자매결연은 '자매'라는 표현이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원래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차원에서 '상호결연'으로 바꿀 것을 권유했다.
결혼식장에서 결혼 당사자들이 입장하는 길인 '버진로드'는 신랑·신부 모두 걸어가는 길임을 표현하는 '웨딩로드'로 바꾸자고 조언했다.
버진로드는 사실 일본식 영어로, 영어권에선 '웨딩 아일'(Wedding Aisle)이라는 표현을 쓴다.

2025 서울 유아차 런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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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회사'→'지배회사'로…사법 분야도 성중립 용어 사용 움직임…
사법 분야에서도 성차별적 용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법제연구원은 '법률 속 차별 언어 개정을 위한 과제'(2021) 보고서에서 법률을 전수조사해 차별 언어를 분석·검토한 뒤 이 가운데 성차별적 언어 15개를 선정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부모'를 '양친'으로, '부부'는 '배우자'로, '형제자매'는 '동기'로 각각 순화하자고 제안했다. 성별이 굳이 나타나지 않는 중립적 표현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자회사'와 '모회사'는 특정 성이 두드러지는 표현이라며 '모회사'는 '지배회사', '자회사'는 '종속회사'로 변경하자고 했다.
'청소년' 역시 남성지향성이 강한 용어지만 마땅한 순화용어가 없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검토안으로 '젊고어린사람', '젊은이', '젊린이' 등을 제시했다.
임신·출산으로 경제활동을 중단한 여성을 가리키는 '경력단절여성'은 '근로중단여성'이나 능동적 의미의 '새일찾는 여성'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결혼한 여자와 성숙한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부녀자' 또는 '부녀'는 굳이 별도의 용어로 쓸 이유가 없다며 '여성'으로 변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또 '유모차'의 경우 어린아이를 태워서 밀고 다니는 일이 여성만이 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만큼 '유아차'로 개선하자고 했다.
결혼을 정상으로 전제하고서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띠고 있는 '미혼'이라는 표현 대신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비혼'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단, 비혼도 여전히 혼인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일인' 또는 '일인생활' 등 보다 객관적이면서 중립적인 용어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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