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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입문서 '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가는 시'
입력 2025.07.09 12:56수정 2025.07.09 12:56조회수 0댓글0

2주기 앞두고 생전 잡지에 기고한 글 2편 엮어 출간


'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가는 시' 표지 이미지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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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소설(Roman). 작가가 실험적인 자아(등장인물)를 통해 실존의 중요한 주제들을 끝까지 탐구하는 위대한 산문 형식."('89개의 말'에서)

걸작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1929∼2023)는 소설을 이렇게 규정했다. 그가 1985년 프랑스 인문·정치 잡지 '데바'에 기고한 글 '89개의 말'에서다.

이달 11일 쿤데라의 2주기를 앞두고 그의 문학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에세이집 '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가는 시'(민음사)가 출간됐다.

이 책은 따로 발표된 두 글을 엮었다. '89개의 말'은 작가가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생각을 담은 사전 형식의 글이고, '프라하, 사라져가는 시'는 1980년 모국 체코슬로바키아를 생각하며 쓴 글이다.

'데바'의 창간인인 피에르 노라(1932∼2025)는 서문에서 "이 책은 어떤 이들에게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세계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이요,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의 매력적인 아이러니와 판단의 섬세함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밀란 쿤데라 소설가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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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상 먼저 실린 '89개의 말'은 '데바'에 처음 공개된 이후 수정을 거쳐 작가의 에세이 '소설의 기술'에 실렸다. 이 과정에서 총 12개 단어를 추가해 제목과 달리 실제로는 101개의 단어가 등장한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쿤데라는 젊은 시절 '농담'(1967년)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았으나 1968년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탄압받은 끝에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다.

이후 쿤데라의 소설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금서로 지정돼 출판되지 못한다. 체코어 번역자가 거의 없는 탓에 그의 작품 대부분이 프랑스어 번역본을 중역해 여러 나라에 소개됐고, 이 과정에서 오역이 넘쳐나 쿤데라가 직접 프랑스어 번역본을 전면 수정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을 지켜본 노라가 "그 모든 번역본을 검토할 때,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깊이 숙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자네의 개인 사전을 써 보면 어떻겠나?"라고 권했고, 이 제안에 쿤데라가 솔깃해 글을 쓰게 됐다.

이 글은 소설 미학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쿤데라가 중요시했던 말, 좋아했던 말, 또는 싫어했던 말을 담은 개인 사전에 가깝다.

예를 들어 쿤데라는 '아이러니'(Ironie)에 관해 "소설은 본질적으로 아이러니의 예술이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소설의 '진실'은 숨겨져 있으며, 말해지지도 않았고 말해질 수도 없다는 것"이라고 썼다.

'프라하, 사라져가는 시'는 쿤데라가 프랑스 망명 초기 대학교에서 '카프카와 중앙 유럽의 문학'을 강의하던 시기에 노라의 제안으로 '데바'에 실은 글이다.

쿤데라는 이 글에서 "사람들은 소국이 당연히 대국을 모방하리라 가정한다"며 "그것은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소국들의 유럽은 다른 유럽이며, 다른 시선을 가지며, 그 사상은 종종 대국들의 유럽과 완전한 대위(對位)를 이루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쿤데라는 1968년 소련의 개입으로 '프라하의 봄' 시위가 무력 진압된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는 "1968년의 러시아 침공은 60년대 세대 전체를 쓸어내 버렸다"며 "하나의 위대한 문화 전체가 불타고 있다"고 토로했다.

132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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