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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생각] '인간시장' 작가 김홍신, 어린시절 엄마한테 엄청 혼난 이유(종합)
입력 2025.06.11 05:07수정 2025.06.11 05:07조회수 0댓글0

"고아, 장애 친구들 배려하는 살의 자세, 엄마로부터 배웠다"


어린 시절 논산에서 김홍신(오른쪽)과 어머니, 여동생

[김홍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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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저는 소풍 안 갈 거예요."(영수)

"소풍이 왜 싫을까?"(윤아 엄마)

"그냥 싫어요."(영수)

"내가 맛있게 김밥도 싸줄 건데, 과자랑 사이다도 사놨거든."(윤아엄마)

"영수가 안 가면 우리 윤아가 심심해서 어떡하지?" (윤아엄마)

"나랑 같이 가는 게 싫은 거 아냐?"(윤아)

소설 '인간시장' 작가인 김홍신이 최근 내놓은 성장동화 '수업이 끝나면 미래로 갈 거야'(재남 출판사)에 나오는 장면이다.

초등학생 영수는 고아원에서 살고 있는데, 윤아와 윤아엄마는 영수에게 소풍을 가자고 설득한다.

그가 소풍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것은 대부분의 독자가 짐작하는 대로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정성 들여 싸준 김밥도 먹고, 부모님이 준 용돈으로 군것질도 하지만, 고아원에 사는 영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 동화에서 윤아의 엄마는 영수가 마음에 상처 입지 않도록 최대한 돌려서 설득한다. 결국 영수는 소풍에 참여했다.

김홍신의 동화 '수업이 끝나면 미래로 갈거야' 책 표지

[김홍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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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홍신은 이 동화에서 아이들이 부모 등으로부터 배려를 배우고,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렸다.

이 동화에는 현수라는 아이의 이야기도 있다.

현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소아마비 장애 친구인 윤아를 놀렸는데, 이를 알게 된 엄마로부터 꾸중을 듣는다.

동화에서 현수 엄마는 "널 잘못 가르쳤으니 네가 회초리로 엄마를 때려라"라고 말했다. 현수는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현수 엄마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들을 윤아 집에 데려가서는 직접 사과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현수는 "다른 엄마들은 안 그러는데, 우리 엄마만 왜 이렇게 유난스러운지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은 윤아를 한참 놀렸고, 나는 친구들을 따라 한마디 한 것 뿐'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어린 시절 김홍신에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이 현수가 김홍신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김홍신 이름은 김현수였다.

결과적으로 초등학생 김현수는 엄마로부터 삶의 올바른 자세를 배웠다.

김홍신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나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배운 바가 있어서 장애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고, 대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면서 "내가 국회의원 시절, 장애인 관련 입법에 적극 나선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했다.

김홍신은 1996년부터 8년간 통합민주당,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기초생활 보장법, 장애인복지법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 제정을 주도했는데, 그 바탕에는 어머니의 이런 가르침이 있었다고 한다.

2024년 7월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홍신

[촬영 이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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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윤근영 기자)는 130여페이지의 이 작은 동화책을 읽으면서 초등학교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필자가 다녔던 시골 읍내의 초등학교에도 고아들이 있었다. 우리 반에 2∼3명 정도 있었으니 전교로 치면 꽤 많았다.

필자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소풍날이었다.

아이들이 한껏 들떠 있는 가을 소풍날 아침에 읍내의 신발가게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휘젓고 다니면서 고아들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그리고 김밥 도시락을 줬다. 그 아저씨는 김밥을 몰래 주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떠들썩하게 줬다.

고아들은 자꾸 숨으려 했지만, 결국 운동장 한가운데서 김밥을 건네받았다. 학교의 아이들은 떼 지어 그분의 자전거를 뒤쫓아 다니며 함성을 지르곤 했다.

그분은 매년 소풍날이면 그렇게 했고, 전교생의 우상이 됐다.

어린 시절 필자는 그분이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인이 돼서 돌아보니 그 '선행'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없는 고아의 설움을 헤아렸다면 김홍신의 동화에 나오는 윤아 엄마처럼 조심스럽게 또는 몰래 김밥을 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그분이 자신의 신발가게 사업을 위해 고아들을 이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물론, 그분의 넉넉한 품성으로 미뤄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고아 산업은 중단돼야 합니다"

지난 5월5일 고아권익연대 주최 어린이날 행사에서 김수빈 나는부모다협회 회장(왼쪽),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가운데),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 대표(오른쪽)
[김수빈 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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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도 때만 되면 보육시설에 가서 아이들과 사진 찍는 정치인, 고위 공무원 등이 있다.

그런데 '힘 있는' 이들에게 이런 보여주기식 행사보다 중요한 책무는 고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고아에게 아무리 잘해줘도, 그 마음을 아무리 잘 헤아려줘도 고아라는 것 자체만으로 아이들은 깊은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요즘 보육시설에는 부모가 없는 '진짜 고아'보다는 부모로부터 강제 분리된 '일시 고아'들이 많다고 한다.

지자체가 일시 고아를 만들어내는 것은 부모의 학대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강제 분리가 적법하지 않거나 지나치면 부모-자식의 천륜을 끊어놓는 범죄가 된다.

엄마로부터 강제 분리된 어린 자녀들은 한없이 울지만, 부모님은 빨리 돌아오지 못한다. 어린아이에게는 10분간의 분리마저도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다. 자녀를 빼앗긴 엄마도 마찬가지다. 잠도 못 자고, 음식도 먹지 못한다. 이런 삶은 감옥에 갇혀 있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이런 기간이 1시간도 아니고, 몇 년씩 지속되기도 한다.

상당수 엄마는 강제 분리된 아이가 영원히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눈물을 흘린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연합뉴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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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위험하다면 부모-자녀 강제 분리는 당연히 진행돼야 한다.

그렇지만 신중해야 한다. 불가피한 경우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이 불가피성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해야 한다. 지자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현재 지자체의 사례결정위원회 위원들은 부모 의견도 직접 들어보지 않고, 부모-자녀 강제 분리를 결정한다.

엄마는 사례결정위 회의에 참석해서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싶지만, 언제 열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전 통보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사례결정위가 열린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전후 사정을 설명하겠다고 하면 한마디로 거절당한다.

법정에 판사(사례결정위 위원들)와 검사(지자체)가 있는데, 피고(부모)와 변호인은 들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부모는 당연히 사례결정위 위원들에게 자기가 어떤 행위를 했는지,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했는지, 지자체가 주장하는 내용은 사실인지 등을 설명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사례결정위가 언제 열리는지, 그 결과는 무엇인지, 그 결과의 사유는 무엇인지를 문서로 공식 통보받는 게 상식이다.

김수빈 나는부모다협회(나부협) 회장은 "부모들은 지자체 또는 아보전(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과 통화하다 사례결정위가 열렸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사례결정위 위원들 가운데 몇 명이 회의에 참석했는지 물어봐도 지자체는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제 부모-자녀 강제 분리 제도와 아동복지법 법령 등에 문제가 있는지 전반적으로 검토를 해야 한다.

정치인들과 정부 부처는 말로만 아이들을 걱정한다고 하지 말고, 이런 것부터 세심하게 확인하고 고쳐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억울함과 분노로 숨지는 부모들이 생겨날 수 있다. 강제 분리된 아이들이 시설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일도 있다.

운구차량 잡고 못 보내는 어머니와 아버지

심미영(가명) 선생님의 운구 차량이 2023년 9월9일 오전 대전용산초에 들러 마지막 인사를 하자 고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운구차량에 기대 오열하고 있다. 대전서부아보전(운영주체 세이브더칠드런)은 2019년 심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이유 등으로 아동학대행위 의견을 냈다. 심 선생님은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았고,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심 선생님은 서이초 선생님 순직을 계기로 과거의 고통이 되살아나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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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억울함과 분노로 숨진 선생님이 있다.

아래는 대전용산초 심미영 선생님이 순직 20여일 전인 2023년 8월 13일 전국초등교사노조에 보낸 메일의 한 부분이다,

"그 학생과 약 1년의 시간을 보낸 후 저는 교사로서의 무기력함, 교사에 대한 자긍심 등을 잃고 우울증 약을 먹으며 보내게 되었습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다시금 서이초 선생님 사건을 보고 그 공포가 떠올라 그날은 정말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저는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떠한 노력도 제게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공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서 저는 아동학대 조사 기관(대전서부아보전, 세이브더칠드런이 운영)의 어이없는 결정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교육 현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시 아동학대로 결정을 내린 판단 기준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디에서도 그들의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심미영 선생님의 남편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대전서부아보전 또는 세이브더칠드런이 나한테 사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이런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행 부모-자녀 강제 분리 제도를 보완하지 않으면 이런 비극은 전국 여기저기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의 삶 곳곳에서 공정과 정의, 인권이 살아나야 국가 전체가 조금이라도 전진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 편집자 주= 연합뉴스는 공정하고 객관적 보도를 위해 사례결정위 문제 등과 관련해 주무 당국인 보건복지부에 질문지를 보내고 답변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일시적 고아'라는 개념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학대피해 아동보호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한 바 있다고 밝혔습니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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