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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예술원 겨눈 이기호 작가 "문학으로 하는 1인 시위"
입력 2026.10.16 04:33수정 2026.10.16 04:33조회수 0댓글0

8년 만에 새 소설집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펴내
인간·제도 모순 탐구…작가로서의 성찰 담긴 7편 수록
소설 통해 예술원 개혁 촉구…"유의미한 변화 있었으면"


소설가 이기호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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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저는요, 그런 소설은 미학적으로 '후지다'고 생각합니다."

중견 소설가 이기호(50·광주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약 5년 전 발표한 자신의 단편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두고 한 말이다.

지난 15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이기호는 스스로 내키지 않는 글을, 미학적으로 마뜩잖은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예술원의 모순과 부조리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21년 문예지 '악스트' 7·8월호를 통해 발표한 이 소설은 보고서의 형식을 빌려 예술원의 폐쇄적 운영방식을 꼬집어 주목받았다.

예술원은 대한민국예술원법에 근거해 예술계 각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원로 예술가들을 예우하고자 1954년 설립된 정부 산하 특수기관이다. 그러나 운영방식을 두고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당시 이기호가 지적한 예술원의 문제점은 이렇다.

예술원 회원에게는 매달 180만원의 정액수당(현재 200만원으로 인상)이 지급되는데, 회원 대부분은 대학교수 출신들로 이미 다른 공적 연금의 수혜자라는 것. 종신제로 운영되는 데다 뚜렷한 선발 기준 없이 신입회원을 기존 회원이 뽑는 점도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회원의 임기를 정하고, 회원 선출 심사에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회원에게 지급되는 수당을 폐지하자는 게 이기호의 주장이다.

다만 그는 예술원에 대한 개선 요구가 결코 예술원 회원들에 대한 비난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예술계의 존경받는 어르신들을 예우하는 건 좋지만, 예우는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이기호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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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5년간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이기호는 예술원 문제를 다시 공론화하기 위해 운동화 끈을 고쳐 맸다.

그는 5년 전 발표한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최근 출간한 새 소설집의 표제작으로 정했다.

또 후속편 격의 소설로 '우리는 왜 엉망이 되어가는가-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2'를 수록작으로 담았다. 목소리를 내도 바뀌지 않는 현실 속 조금씩 비겁해지는 자기 모습을 반성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소설 속 '나'는 예술원 개혁을 주장하는 글을 발표한 뒤 예술원 회원 누군가 그에게 '배은망덕하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또 예술원 개혁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신중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공무원의 말을 듣는다.

'나'는 낙향해 포도밭을 일구던 후배 소설가 K를 찾아가 술잔을 기울인다.

농막에서 술을 먹다 잠든 '나'를 K가 다급히 깨운다. K는 집에 있는 아내가 위태롭다며 자신을 차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술이 덜 깬 '나'는 음주운전을 할 수 없다며 주저한다. '나'는 K의 가족이 위급한 상황에서 도로교통법 위반을 두려워하는 자신을 보며 자괴감에 빠진다.

수록작 대부분의 화자는 '이기호'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제도 안에 속한 소설가로서 쓰기의 의미를 되묻는다.

다만 무거운 문제를 무겁게 전달하지만은 않는다. 인물의 허세와 자기합리화, 말과 행동 사이의 모순을 포착하는 익살스럽고 능청스러운 문장이 맛깔스럽다.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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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아주 가끔 정의롭고, 대부분은 끔찍하다. 이 책은 그 마음에 대한 기록이다. 끔찍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진실도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기호는 8년 만에 소설집을 묶으면서 고민도 많았다.

그는 "당초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빼고 다른 단편들만으로 소설집을 묶을 생각이었다. 원래 생각한 표제작도 다른 작품이었다"고 설명했다.

책이 되레 상업적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작가는 "새 책을 내면서도 출판사에 부탁해 추천사나 해설도 싣지 않았다. 북토크도 사양했다"며 출판사인 문학동네와 담당 편집자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기호는 1999년 단편소설 '버니'가 '현대문학' 신인추천공모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눈감지 마라',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등이 있다.

당초 주의나 주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가 자꾸 '예술원 개혁'이라는 깃발을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작가로서 혜택을 받은 사람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저는 작가로서 재능이나 역량보다도 운에 의해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그렇다면 조금 손해 보는 지점이 있고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저 같은 사람이 나서야 할 일이죠."

그는 이어 "뭔가 유의미한 변화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크다. 소설이 이럴 때라도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이번 책은 문학으로 하는 1인 시위인 셈"이라고 말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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