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이후 9년 만에 신작…이민가족 통해 한국인 교육 열망 분석
"학원, 문화 속 깊이 자리 잡아…단순한 비판은 근시안적·제한적"
"자기희생은 중요한 가치…정서적 유대 강한 가족이 위기 잘 견뎌"

소설가 이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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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전 세계 수천 명의 한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인을 하나로 묶는 가치가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육과 한국인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산)의 역사를 세계 문학의 무대로 끌어올린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이민진(58)이 새 소설 '아메리칸 학원'(원제 American Hagwon)으로 돌아왔다.
재일조선인 가족의 역사를 다룬 '파친코' 이후 9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새 책의 한국어판은 이달 14일 현대문학에서 나올 예정으로, 출간에 앞서 이민진 작가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이민진은 세계 곳곳의 한국인들을 만나 고국을 떠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이런 말을 후렴구처럼 들었다고 한다. "내 자식들에게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한국인을 규정하는 강렬한 정체성의 하나가 교육이라는 게 작가의 분석이다. 신작은 '한국인은 왜 교육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길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책이다.
작품은 서울에서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아가던 '고 씨' 가족(존·헬렌 부부와 세 남매 보·DH·미도)이 삶의 기반을 잃고 이민 길에 오르게 된 여정을 장대한 서사로 펼쳐낸다.
소설의 무대는 1990년대 초반 서울 대치동에서 시작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호주 시드니,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의 오렌지카운티로 이어진다.
낯선 땅에서 존과 헬렌 부부의 학위와 경력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오직 자식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의 성공과 안정을 이루고자 모든 것을 희생한다.
이들의 신산한 삶은 이국땅에서 맨주먹으로 일어서야 하는 현대판 유목민의 초상이기도 하다.
"삶의 규칙은 이미 바뀌었다"는 책의 첫 문장은 고 씨 가족이 겪어내야 할 낯선 땅의 긴장과 시대의 불확실성을 압축한다.
원제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Hagwon'. 한국의 '학원'이라는 개념에 정확히 대응하는 영어단어가 없기에 이를 발음 그대로 옮긴 것이다.
학원이라는 공간은 한국의 대학입시에서 번번이 낙방하는 보가 재기를 꿈꾸는 공간이자, 대학 졸업을 포기한 미도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헌신하는 일터이기도 하다.
또 단순히 입시를 위한 공간을 넘어 누군가에게 계층 이동의 사다리이자, 자아실현의 꿈이 담긴 공간이며, 젊은 강사들이 자신들만의 철학을 실험하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작가는 학원에 대해 "배움을 중시하고 교육에 대해 자율성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은유"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아메리칸 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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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한국에선 과도한 사교육 열풍의 주범이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민진은 학원을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작가는 "부모가 자녀를 학원에 보내기로 결정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며 "이 소설은 학원이 문화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며, 학원을 비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학원을 단순히 비판하는 태도는 근시안적이고 제한적"이라며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10년에 걸친 취재와 집필을 통해 완성된 '아메리칸 학원'은 단순한 교육 이야기를 넘어선 대작이다. 한국어판은 두 권으로 구성됐으며, 각 권 분량은 600쪽에 육박한다.
작가는 특히 "가족들이 치열한 교육 경쟁을 감내하게 만드는 경제적 불안,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압박이라는 문제들도 기록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소설의 5부 첫머리는 '압축적 근대성'에 대한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석좌교수의 글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한국 사회가 겪은 '압축적 근대성'이 교육 열망을 추동하고 있다는 게 작가의 분석이다.
이민진은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한국인들은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냉혹한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적응력이 가장 혹독하게 시험받는 곳이 바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세계의 독자들이 한국인들이 왜 그토록 강렬하게 교육을 중시하는지 그 맥락을 더 잘 이해하기를 바랐다"며 "한국인의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조롱하거나 무시하고, 교육에 대한 깊은 열망을 맥락에서 떼어내는 것은 무례하고 무지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신작은 교육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가족과 자기희생에 관한 서사로도 읽힌다.
이민진은 "자기희생은 한국 문화에서 중요한 가치"라며 그 가치를 '정서적 유대감'으로 설명했다.
작가는 친구 및 인간관계가 두텁고, 가까운 가족 구성원이 많은 가족이 경제적 위기가 닥쳤을 때 잘 버텨낸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강력한 정서적 유대감을 가졌던 사람들만이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변화에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메리칸 학원'은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7) '파친코'(2017)에 이은 디아스포라 4부작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이민진은 차기작에 대해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로 일하러 간 한국인들, 그리고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유럽으로 간 한국인들에 대해 쓸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이 책에서는 군인 가족, 특히 군인의 아내들에게도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해외에서 고국으로 송금한 돈과 재건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다. 시대적 배경은 1961년부터 1989년까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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