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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의 창] 광주 고려인마을, 연해주 독립유공자 '김봉순 선생' 삶 재조명
입력 2026.05.08 02:17수정 2026.05.08 02:17조회수 2댓글0

일제강점기 연해주 일대에서 항일전선에 나선 고려인 독립운동가들

[독립기념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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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사진도 묘소도 남기지 못한 채 스러진 고려인 독립운동가의 삶이 역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으로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을 통해 열아홉 번째 인물인 김봉순(미상∼1921) 선생의 삶과 희생을 재조명한다고 8일 밝혔다.

김봉순 선생은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연해주와 만주 일대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벌인 대한의용군 대원이다. 사진 한 장, 기록 하나 제대로 남아 있지 않지만, 조국 독립을 향한 신념만은 세월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았다.

1921년 3월 자유시참변 이후 독립군 세력은 큰 혼란에 빠졌다. 서간도 군비단은 중국 길림성 장백현을 떠나 연해주 이만에 집결했고, 자유시참변을 피해 온 상하이파 인사들과 힘을 모아 독립군 재건에 나섰다.

이후 이들은 고려의용군사의회를 조직하고 사관학교를 설립해 새로운 독립군 양성에 나섰으며, 훈련받은 생도들을 중심으로 대한의용군을 창설해 항일전선에 섰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1921년 말,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 백군이 하바롭스크를 향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면서 독립군이 주둔한 이만을 첫 공격 목표로 삼았다.

그해 12월 4일, 대한의용군 제2중대는 이만을 지키기 위해 결사 항전에 돌입했다. 병력과 무기 모두 열세였지만 독립군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제2중대는 단 세 명의 생존자만 남긴 채 거의 전멸했고, 선생도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의 묘소 위치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2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광주 고려인마을 이천영 이사장은 "국권 회복을 위해 삶과 청춘, 가족과 이름까지 바쳐야 했던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뿌리"라며 "이름 없이 스러져간 선조들의 삶을 끝까지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역사적 책임"이라고 전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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