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조선시대 왕실 현판·묘지 찾아 기증한 김강원·김창원 씨
"왕실 역사, 상품 아니야"…문화유산 '제자리 찾기' 4번째 동참
고미술협회장 지낸 부친 보며 관심…"할 수 있는 일 함께 고민할 것"

국외 문화유산 기증한 김창원-김강원 형제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순종예제예필현판' 등 국외 문화유산을 구입해 기증한 김창원(오른쪽), 김강원 형제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취재진과 라운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5.8 scape@yna.co.kr
원본프리뷰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2024년 찬 바람이 불던 일본 도쿄(東京)의 어느 경매장. 실내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일반인은 사실상 접근할 수 없는 '비공개' 경매가 한창이었다.
고미술 업계에서 오랜 기간 일한 베테랑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 참석한 김강원 청고당 대표는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나무 현판 한 점을 지켜봤다.
용과 봉황 머리 조각이 눈에 띄는 현판은 조선 왕실의 물품이 틀림없어 보였다.

'순종 예제예필 현판' 부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본프리뷰
유물이 언제, 어떻게 일본으로 왔는지 또 누가 소장했는지 등 자세한 정보는 듣지 못했지만, 김 대표는 30여년간 고미술 업계에서 일해온 자신의 '감'을 믿었다.
치열한 경합 끝에 그의 품에 들어온 건 '순종 예제예필 현판'.
1892년 고종(재위 1863∼1907)의 즉위 30주년과 41세(망오·望五), 그리고 명성황후의 생일을 축하한 궁중 잔치에서 순종이 직접 짓고 쓴 글을 담은 현판이었다.
김 대표는 어렵게 낙찰받은 유물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넘겼다. 조선 왕실의 유물이라면 당연히 한국, 그리고 경복궁에 돌아가야 한다는 뜻에서다.

국외 문화유산 기증한 김창원-김강원 형제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순종예제예필현판' 등 국외 문화유산을 구입해 기증한 김창원(오른쪽), 김강원 형제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취재진과 라운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5.8 scape@yna.co.kr
원본프리뷰
김 대표는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조선 왕실의 역사가 깃든 현판은 거래의 대상도, 상품도 아니다"라고 기증 배경을 밝혔다.
김 대표는 고미술 거래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다. 1993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여러 고미술품을 거래하며 인맥을 쌓았고, 2000년 청고당을 세웠다.
그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한국 문화유산을 기증한 건 이번이 4번째다.
2021년 '백자청화 김경온 묘지(墓誌)'를 시작으로 이듬해 '백자철화 이성립 묘지', 2024년 '조현묘각운'(鳥峴墓閣韻) 시판 등 귀한 문화유산이 그의 손을 거쳐 돌아왔다.

백자청화 이진검 묘지 중 일부
오른쪽 사진은 망자의 생전의 이름을 기록한 부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본프리뷰
묘지는 무덤 주인의 생애와 행적 등을 적어 무덤에 함께 묻은 돌이나 도자기 판으로, 고인의 삶을 기록한 흔적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현묘각운 시판의 경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한 고하(古下) 송진우 선생(1890∼1945)의 부친이 시문을 적은 것으로 확인돼 주목받았다.
김 대표는 문화유산 기증에 나서는 의미에 대해 "고미술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한국 문화유산을 접할 기회가 많을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다만, 그는 문화유산 환수와 기증은 '정체성'을 찾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백자청화 이진검 묘지 3∼8편 모습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본프리뷰
"우리 국민, 우리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문화유산은 원위치인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할 뿐이죠."
이번 기증은 그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형인 김창원 씨가 일본에서 발견한 '백자청화 이진검 묘지'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형제가 함께 '문화유산 나눔'에 동참한 셈이다.
이진검(1671∼1727)은 예조판서 등을 지낸 인물로, 그의 아들이자 조선 후기 주요 명필로 꼽히는 이광사(1705∼1777)가 직접 묘지 글씨를 썼다.

2022년 열린 묘지 기증·기탁식 모습
가운데가 김강원 청고당 대표 [국가유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본프리뷰
김창원 씨는 "여러 고미술품을 둘러보다 우연히 한쪽 구석에 있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한 글자씩 읽어가다 보니 마지막에 '광사'라는 부분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묘지는 고인, 그리고 가족에게는 소중한 자료"라며 "동생을 보면서 기회가 있으면 기증에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가 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형제가 문화유산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두 사람의 부친은 1991∼1993년 한국고미술협회장을 지낸 김대하 씨로 경기대 전통예술대학원, 서울산업대 등에서 한국 고미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2024년 열린 시판 기증식 모습
최응천 당시 국가유산청장, 김강원 청고당 대표, 곽창용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사무총장. [국가유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본프리뷰
김창원 씨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고미술을 접했고 부친께서 기증하시는 것도 봤다. 우리 형제에게도 기회가 되면 꼭 기증하라고 당부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에게 뒤지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며 환히 웃었다.
불교 미술사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2007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김창원 씨는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유산에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물관에 가보면 잘못된 정보가 적힌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문화유산이 분명한데 국적이 불분명하거나 다른 나라로 표시된 경우도 있죠. 그런 상황이 안타까워요."

국외 문화유산 기증한 김창원-김강원 형제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국외 문화유산을 구입해 기증한 김강원 씨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강원 씨는 형인 김창원 씨와 함께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순종예제예필현판' 등 문화유산을 기증했다. 2026.5.8 scape@yna.co.kr
원본프리뷰
두 사람은 앞으로도 여력이 닿는 한 문화유산 기증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강원 대표는 "묘지를 기증했을 때 고미술 업계에서 활동하는 일본 지인들이 좋은 취지라고 공감하면서 '기회가 되면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문화유산을 지킨 많은 분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우리 문화유산을 찾고 제자리 돌려놓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묘지를 기증하기 전 사진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혼자 보기 아깝더라고요.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그 가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김창원 씨)

국외 문화유산 기증한 김창원-김강원 형제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백자청화이진검묘지', '순종예제예필현판' 등 국외 문화유산을 구입해 기증한 김창원(오른쪽), 김강원 형제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취재진과 라운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5.8 scape@yna.co.kr
원본프리뷰
yes@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