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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33년만의 직접접촉 이-레바논…그러나 아직 먼 이웃
입력 2026.04.18 02:17수정 2026.04.18 02:17조회수 1댓글0

미국의 중재로 지난 14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열린 이스라엘-레바논 대사급 회담.

[AFP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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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동지중해를 끼고 남북으로 나란히 위치한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에는 늘 두꺼운 불신의 벽이 존재했다.

양국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한 번도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국제법상으로도 양국은 전쟁 중이다.

1983년 5월 17일. 양국은 평화의 입구까지 간 적이 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후 미국의 중재로 체결된 '5월17일 협정'에는 양국 간 전쟁 종식과 관계 정상화라는 장밋빛 미래가 담겼다.

하지만 협정의 효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 전쟁의 한 축이었던 시리아가 이스라엘군의 우선 철군을 요구하며 군대 철수를 거부했고, 레바논 내부에서는 종파 간 갈등이 분출하면서 협정을 체결한 레바논의 아민 제마옐 정부가 코너에 몰렸다. 결국 협정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종잇조각이 됐다.

오히려 당시 협정 무력화와 평화 구현 실패는 레바논에 헤즈볼라라는 거대한 친이란 무장 정파가 탄생하는 자양분이 됐다.

그 후 40여년간 양국은 철저히 서로를 외면하면서 반목했고, 그 사이에는 막강한 군사력과 정치력을 가진 헤즈볼라가 있었다.

2022년 동지중해 가스전 개발을 위한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역사적 해상 경계 합의 때도 양국 대표단은 레바논 남부 나쿠라의 유엔 기지에서 같은 방에 머물지 못했다.

중재자 미국이 양쪽 방을 오가며 서명을 받는 진풍경 속에 겨우 '비즈니스적 타협'을 이뤄냈다.

손을 맞잡지 않고 눈빛조차 교환하지 않는 긴장 속의 공존, 그것이 지금까지 이스라엘-레바논 정부 간 관계의 한계였다.

그런데 중동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와중에 양국 정부 간에 이전과는 확 달라진 공기가 형성됐다.

지난 1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중재로 양국 주미대사가 한자리에 마주 앉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33년 만의 최고위급 직접 접촉이었다. 오슬로 협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사이의 비밀 협상 결과물이었으나, 동시에 이스라엘은 레바논과도 직접 대면 협상을 진행했다. 미 국무부 청사 회의실에서 열린 당시 협상에는 주미 이스라엘 및 주미 대사관이 협상단을 이끌고, 이스라엘군 철군 및 평화 조약 체결 등을 논의했다.

이후 33년만에 열린 양측의 협상은 비록 2시간가량의 짧은 접촉이었고 손에 잡히는 성과도 없었지만, 이 첫 대사급 직접 접촉은 한 번도 손잡지 못했던 양국 간 평화의 첫걸음처럼 보였다.

조셉 아운 레바논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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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엔 대사급 접촉을 넘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조셉 아운 대통령 레바논 대통령이 직접 전화선을 통해 접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도 결국 양국 정상간의 전화 통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현지 언론과 외신은 아운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양국 정상간 통화 예고 이후 아운 대통령은 직접 접촉에 앞서 휴전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동남부에 맹렬한 폭격을 가하면서 분위기를 깼다.

결국 레바논이 이스라엘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주권을 실질적으로 존중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양국 정상간 직접 접촉은 예측할 수 없는 후일을 기약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운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를 거부한 데는 '국가 속의 국가'로 군림해 온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헤즈볼라 깃발 흔드는 지지자들

[EPA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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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내 시아파 성직자들이 설립한 헤즈볼라는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을 키워왔다.

공식 확인된 자료는 없지만 헤즈볼라의 현역 대원수는 4만∼5만명, 예비군을 포함한 전체 병력은 7만명 선으로 추정된다. 이는 레바논 정부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또 '저항의 축'의 일원으로 이스라엘과 무력으로 맞서온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으로 수천기의 미사일과 로켓, 드론 등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헤즈볼라의 정치 부문인 '저항 충성 블록'은 레바논 의회 전체 128석의 의석중 약 15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또 다른 시아파 정당 아말운동의 원내 교섭단체 '저항과 개발 블록'(의석수 15석)과 연대해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지난 2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다시 이스라엘을 향해 포문을 열었던 헤즈볼라에게 레바논 정부와 이스라엘 정부의 직접 접촉은 자신들의 존립 기반을 뒤흔드는 '항복 선언'과 다름없다.

헤즈볼라와 이를 지지하는 시아파 무슬림 공동체도 워싱턴에서 열린 양국 대사급 회동을 '주권 매도'이자 '시온주의자(이스라엘)에 대한 굴복'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아운 대통령이 이런 반발을 무시하고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를 강행했더라면 이들의 반발은 더욱 격렬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 헤즈볼라와 그 지지자들이 베이루트 거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거나, 다시 무기를 들 경우 양국 간의 평화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 레바논은 다시 내전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권에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에 열흘간의 휴전이 발효됐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에 포격을 가해 시작부터 휴전을 위반했다는 레바논군의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휴전 첫날밤은 비교적 무난하게 지나갔다. 수도 베이루트 남부에서는 피란길에 나섰던 주민들이 일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계속 휴전이 지켜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휴전 기간에도 레바논 남부에 계속 지상군 병력을 남겨두겠다고 하자, 헤즈볼라는 '저항권 행사'를 예고했다.

무엇보다 불안한 요인은 이스라엘 내부의 동요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권에 떠밀린 네타냐후 총리가 안보 내각의 투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휴전을 강행하면서 반발이 만만찮다. 일부 정치인들과 북부 국경지대 지자체장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헤즈볼라의 위협을 받아온 주민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휴전을 강요하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예정대로 레바논 남부에 거대한 '완충 지대' 구축을 밀어붙이는 것만이 이런 불만을 잠재우는 방편이다.

열흘간의 휴전으로 찾아온 블루라인(이스라엘-레바논 국경)의 평온이 오래 지속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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