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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컨설턴트에서 시골 우체부로…길 위에서 찾은 인생
입력 2026.03.13 01:47수정 2026.03.13 01:47조회수 0댓글0

위기 속 삶의 풍요를 건져낸 쉰살 남자의 회고록…신간 '메일맨'


신간 '메일맨'(웅진지식하우스) 표지 캡처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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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잘 나가던 마케팅 컨설턴트였던 한 남자가 2020년 팬데믹으로 갑작스럽게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는다. 쉰살의 나이에 암 투병 중이었던 그는 건강보험이 절실했고, 애팔래치아 산맥에 있는 시골 고향 마을에서 우편배달부로 취직한다.

신간 '메일맨'(웅진지식하우스)은 저자 스티븐 스타링 그랜트가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에서 미국 연방우정국의 우편배달부가 돼 길 위에서 보낸 1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이다.

20여년간 뉴욕을 비롯한 도시에서 화이트칼라 직장인으로 일해왔고,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10대 딸의 아버지로 중산층의 삶을 살아오던 그는 험준한 산길을 누비며 이어갔던 이 낯설고 고된 매일의 노동 속에서 지난 시간 회사에 다니면서 놓쳤던 생의 감각을 마주한다.

"인간은 모두 땀을 흘려 자기를 먹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일이 인간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수십년간 회사에 다니며 놓쳤던 것, 내내 시달려온 근본적인 혼동은 일이 곧 현실이라는 착각이었다. 내가 일하던 그 모든 세월 동안에도 세상은 계속 돌아갔다. 아침에 구름 위로 비치는 햇살. 괜찮은 점심 식사가 주는 만족. 자녀들의 사랑, 사랑하는 가족 안에서 아버지로 존재한다는 엄청난 선물. 그동안 나는 삶이 주는 풍요를 낭비하고 살았다. 우편배달부 일은 그 모든 것을 다시 돌려주었다."

그랜트는 그렇게 에어컨이 없어 여름에는 토스트처럼 뜨겁고, 겨울에는 거의 냉동고 수준인 40년된 낡은 우편물 배달 차량을 타고 끝도 없이 쏟아지는 물건들을 싣고 매일 현장으로 향했다.

그는 사탕과 잡지, 인공호흡기부터 토마토 씨앗,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복제검, 수감된 삼촌이 쓴 절박한 편지, 멀어진 연인이 손수 그린 엽서까지 온갖 것들을 실어날랐다. 외진 산골에 사는 할머니에게 닭 사료를 가져다주고, 냉장고를 짊어지고 개울을 건넜다.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팬데믹으로 왕래가 끊긴 그때 그는 자신의 존재가 바깥세상은 아직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희망이기를 바라게 됐다. 또 자신이 사람들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으며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편물보다 더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 있었다. 실직과 질병의 무게, 가장으로서 뼛속 깊이 스며드는 경제적 불안감, 익숙지 않은 일을 하면서 느끼는 당혹감과 무능하다는 자각이 주는 고통, 포기하고 싶은 충동, 그리고 자기 연민.

그러나 그는 깜빡한 소포를 산위로 실어나르다 만난 대자연 앞에서 만물과 일체감을 느끼며 깨닫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잘하기 때문에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매달려왔던 자아를 벗어던진다.

"나를 본질로 데려간 것은 내가 잘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못하는 무언가였다. (중략) 그 남자는 느렸고, 자꾸 실수를 했고, 도움이 필요했다. (중략) 그의 유일한 희망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찌 됐든 계속 살아보겠다는 뻔뻔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저 한 우편함에서 다음 우편함으로 가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거다. 그리고 내일 다시 일어나 또 그렇게 하는 거다. 누가 보든 말든 남의 잔디밭에 주저앉아 울다가 문득 깨달았다. 결국 내가 버텨내리라는 것을."

책은 어느 날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던 한 중년의 남자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의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장은 웃음과 뭉클함을 선사한다.

정혜윤 옮김. 404쪽.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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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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