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펴내…현대 문명 비판적 성찰
생태적 상상력으로 문명 전환 촉구…"문학은 불가능한 것 추구해야"

이문재 시인, 연합뉴스와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이문재 시인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2.4
mj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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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모든 진정한 시인은 본질적으로 가장 심오한 생태론자다."
생태주의 사상가였던 김종철(1947∼2020) '녹색평론' 발행인이 남긴 말이다.
한국 문단에서 이 명제에 부합하는 시인을 찾자면 이문재(67) 시인을 빼놓을 순 없다.
생태적 상상력을 창작의 질료로 삼아 40여년간 시문을 빚어온 이문재 시인을 지난 3일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 "자본주의 문명에 전반적·전폭적·심층적 반대"
그는 5년 만에 일곱번째 시집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새 시집에는 생태의 가치와 문명의 전환을 화두로 삼은 시 92편이 묶였다.
생태주의란 무엇인가,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그의 답변은 급진적이었다.
"제가 생각하는 생태주의는 지금의 산업·자본주의 문명을 전반적으로, 전폭적으로, 심층적으로 반대하는 거예요."
그런 문제의식과 생태적 상상력이 압축된, 시집의 핵심 시어로는 '밤'(夜)을 꼽을 수 있다.
시인은 잠 못 드는 밤, 밤답지 않은 밤에서 자본주의의 병적 징후를 읽어낸다.
"밤이 오지 않는다/ 문밖은 분명 어두운데/ 손목시계가 자정을 가리키는데/ 밤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밤이 부족하다 2' 중)
이처럼 밤이 오지 않는 것은 시간 관리의 실패나 근면성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를 개인 탓으로 돌리며 문제를 은폐한다.
이에 시인은 "스위치를 내려야 밤이 온다/ 불을 꺼야 어둠이 어두워지고/ 밖으로 떠돌던 것들 제자리를 찾는다"며 "밤이 밤다워야 아침이 온다/ 아침이 아침에 온다"('아침' 중)고 말한다.
그는 또 '밤의 각오'란 시에서는 이렇게 다짐한다.
"잠 오지 않는 밤/ 밤을 도둑맞은 것 같아/ 두 눈 감고 다짐한다/ 일하기 위해 잠들지 않겠다/ (중략)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일해야/ 세상 모든 아침이 맑고 향기로울 것이다"

이문재 시집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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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바꾸는 권력 없지만…불가능 추구하는 게 문학"
시인이 말하는 생태주의의 핵심은 관계와 연결이다.
시인은 꽃 한송이와 모래 한 알 앞에서도 숭고해지고, 양치질을 하다 "칫솔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 존재 모두 형제자매"('이것은 칫솔이 아니다' 중)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아가 초연결이 아닌 재연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와 디지털 세계에서 초연결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재연결하라고/ 나와 너와 인간과 인류와 뭇 생명과 생명 아닌 것과/ 뿐이랴, 도구와 기술과 시간과 공간과 생각과 느낌과도/ 다시 연결되라고 부디 새로 연결하라고"('식물의 말' 중)
하지만 그의 시를 읽노라면 또 하나 물음이 떠오른다. 과연 다른 세상은 가능한가.
시인의 답변은 예상 밖이다.
"불가능해요.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죠."
시인은 "문학에게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나 권력, 에너지가 없다"면서도 정치도 경제도 불가능을 추구하지 않으니,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은 문학의 몫이라고 했다.
이어 오늘의 세계를 "참 절망적"이라고 진단하면서도 "그래서 더 (시를) 써야 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문학평론가 김현의 문학론을 언급했다.
이를테면 문학은 배고픈 이에게 빵 하나 주지 못하지만, 세상에 굶주리는 이들이 숱하게 있다는 추문을 퍼트리며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것.
이문재의 시는 공장을 멈추지도, 꽃을 피우지도 못한다. 다만 성장과 속도 위주의 사회에 드리운 그림자를 비춤으로써 우리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삶이 '어딘가 잘못돼 있구나'라는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문재 시인, 연합뉴스와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이문재 시인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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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타이태닉호의 악사…'시의 마음' 되찾아야"
이문재는 1982년 동인지 '시운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 나온 첫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만으로도 그의 존재감은 우뚝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김도언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이문재)는 시인 지망생들, 그리고 후배 시인들에게 서정의 전범으로 불리는, 필독과 애독의 절대적 대상이 되는 시인"이다.
그는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지금 여기가 맨 앞', '혼자의 넓이' 등을 펴내며 생태 시의 지평을 넓혔고, 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받았다.
이문재에게 시인의 역할을 묻자, 침몰하는 초호화 유람선 타이태닉호를 현대 문명에, 마지막 순간까지 타이태닉호에서 악기를 붙들고 곡을 연주하던 악사들을 시인에 빗댔다.
아수라장이 된 배에서 승객의 탈출을 독려하며 끝까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했던 악사의 운명이 오늘날 예술가와 지식인, 종교인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인의 말'에서 끝내 희망을 놓지 않았다.
"우리가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하지 못할 만큼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어느 경제학자의 말을 얼마 전에 들었다. 우리는 모두 시인으로 태어난다는 과학자의 말은 오래전에 들었고. 나는, 우리가 '시의 마음'을 되찾는다면 이대로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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