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오남용 막는다더니…의료기관 절반 '인력없어' 속수무책

항생제 남용 (PG)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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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정부가 항생제 내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야심 차게 '항생제 적정 사용 관리(ASP)'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정작 대상 의료기관의 절반 이상은 전담 인력 부족으로 참여조차 못 하는 등 '반쪽짜리'에 그치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ASP 참여 병원과 미참여 병원 간 관리 수준 격차가 커, 항생제 관리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일 질병관리청의 의뢰로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김봉영 교수)이 수행한 '국내 의료기관 내 항생제 적정 사용관리(ASP)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전국 300병상 이상 의료기관 153곳 중 ASP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은 46.4%인 71곳에 불과했다. 82곳(53.6%)은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복수 응답)는 'ASP 전담 인력 부족'(79.5%)이었다. 이어 '의사 부족' (60.2%), '약사 부족' (57.8%) 순으로, 전문인력 확보의 어려움이 사업 참여의 최대 걸림돌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사업 참여 여부에 따라 항생제 관리 수준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자체적인 항생제 사용 지침을 보유한 비율은 참여 기관이 84.5%에 달했지만, 미참여 기관은 38%에 불과했다.
특정 항생제를 지정해 처방을 관리하는 '제한항생제 프로그램' 수행률은 참여 기관이 100%지만, 미참여 기관은 56.6%에 그쳤다.
특히 처방 후 모니터링과 개선을 유도하는 적극적인 관리 활동에서 격차가 두드러졌다. 미생물 검사 결과에 기반한 항생제 변경 중재 활동은 참여 기관의 59.2%가 수행했지만, 미참여 기관의 수행률은 10% 미만에 머물렀다. 국가 항생제 사용량 분석 시스템(KONAS) 가입률 역시 참여 기관은 100%였으나 미참여 기관은 23.2%에 불과했다.
다만 긍정적인 변화도 감지됐다.
2020년 조사와 비교했을 때, ASP가 의사의 진료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우려는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현장의 인식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향후 ASP 사업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핵심 지표도 함께 제시했다.
전문가 델파이 조사를 통해 '환자 1000명당 항생제 총 사용일수(DOT)', '광범위 항생제 사용 감소율', '수술 전 예방적 항생제 적절 사용률' 등이 단기적으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핵심 지표로 선정됐다.
보고서는 시범사업이 참여 기관의 항생제 관리 역량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보이고 있지만, 사업의 성공적인 안착과 전국적 확산을 위해서는 전문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과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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