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장기화로 실종자 문제 화두…ICRC-코이카 심리지원 프로그램 운영

상실의 아픔
(암만=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지난 15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에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주최로 열린 콘퍼런스에 전시된 중동 분쟁 지역 실종자 가족의 그림. 2026.9.16 a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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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남동생의 시신, 소지품, 신분증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요. 한동안 밥을 먹을 때조차 '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이 음식을 먹어도 되는 걸까'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죄책감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15일(현지시간)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열린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주최 컨퍼런스 현장. 마이크를 든 시리아 출신 난민 아말 이사씨는 비교적 담담한 목소리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2016년 튀르키예로 향하던 길에 남동생을 잃었다. 각지의 구금시설을 샅샅히 훑었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남동생의 행방을 알려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브로커들에게 혹시나 하는 희망을 걸어봤지만, 돌아온 것은 역시나 상처 뿐이었다.
기약 없는 시간이 길어지던 중 2024년 말 ICRC와 인연이 닿았다. 10년 전 그날에 멈춰섰던 그녀의 삶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된 순간이었다.

(암만=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15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에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주최로 열린 콘퍼런스에 전시된 중동 분쟁 지역 실종자 가족의 예술 작품. 2026.09.16. a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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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RC는 실종자 가족들이 상실로 겪는 '정서적 아픔'에 주목해 실종자 가족을 위한 'MHPSS(Mental Health and Psychosocial Support,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사씨는 이곳에서 같은 실종자 가족들과 경험을 나누고, 예술 작품 창작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시간을 보냈다.
이사 씨는 "진작 알았더라면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거나 안고 있던 이 죄책감을 덜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ICRC는 요르단에서 이사 씨와 같은 실종자 가족, 인도주의 단체 관계자, 학계 등을 한데 모아 '실종자 가족을 위한 MHPSS'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를 개최해 실종자 가족들의 경험과 증언을 공유하면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재건 갈망하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4일(현지시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외곽에 있는 하라스타 지역. 13여년간의 내전 동안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가장 치열했던 곳 중 하나다. 2025.12.7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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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번해지고 장기화하는 분쟁…실종자 문제, 인도주의 과제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분쟁은 일상이 되었고 국제사회의 '뉴노멀'이 되고 있다.
ICRC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는 130건이 넘는 무력 충돌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15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심지어 이들 분쟁은 장기화하는 추세다. ICRC는 현재 진행 중인 분쟁 20건 이상이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분쟁이 오래가면서 이에 따라 실종과 이산가족 문제도 국제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ICRC에 등록된 전 세계 실종자는 2024년 기준 28만 4천명으로 2019년부터 2024년까지 5년 사이 약 70%나 증가했다.
이는 등록된 사례만 반영한 수치로, 최근 이란 전쟁 등으로 분쟁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더 많은 실종자 가족이 '상실의 아픔' 속에 살아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암만=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요르단 암만에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주최로 15일(현지시간) 열린 콘퍼런스에서 얀 프리데즈 ICRC 암만 대표부 단장이 연설하고 있다. 2026.09.16. a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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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적 고립 주목한 ICRC…한국 정부도 '회복'에 힘 보탰다
ICRC는 난민 가정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실종자를 찾는 것 못지않게 남겨진 가족들이 겪는 '정서적 고립'이 심각한 문제임을 확인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어 온전히 슬퍼하지도, 일상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모호한 상실(Ambiguous loss)' 상태의 가족들을 심리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탄생한 배경이다.
한국 정부도 2024년부터 이 프로젝트에 힘을 보태고 있다. 코이카(KOICA)는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에서 ICRC와 함께 분쟁으로 인한 실종자 가족 지원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1950년 6·25전쟁을 겪으면서 수 많은 이산가족들이 가족과 헤어짐이라는 아픔을 직접 먼저 겪은 나라다.
ICRC 암만 대표부를 이끄는 얀 프리데즈 단장은 이날 회의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일상은 "대답도 없이, 작별 인사도 없이. 슬퍼할 장소조차 없이. 손실과 희망, 애도와 수색 사이에 멈춰 서 있는 삶"이라며 "이러한 비극은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ICRC는 실종의 아픔을 겪는 가족들을 위해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지속 가능한 대응책을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7일까지 진행되는 이 회의에는 김현 미네소타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 장유량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교수 등 한국 학자들도 참여해 분쟁 지역 내 심리·사회적 지원 체계 구축 및 실종자 가족 트라우마 치유에 관한 학술적 논의를 펼친다.
a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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