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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손잡은 박영효 vs 독립운동가 김가진…다른 길 택한 두 사람
입력 2026.08.01 03:52수정 2026.08.01 03:52조회수 0댓글0

국립중앙박물관,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 전시…유홍준 관장 기증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조선3실에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이 전시돼 있다. 유홍준 관장이 올해 박물관에 기증한 유물이다. 2026.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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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박영효(1861∼1939)는 1882년 임오군란을 수습하기 위한 특명 전권 대신 겸 제3차 수신사로 임명돼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본에서 많은 사람과 만나며 개화사상에 본격적으로 눈 떴고, 귀국한 뒤에는 조선의 제도와 문물을 근대적으로 바꾸고자 노력했다.

이후 그는 1884년 김옥균(1851∼1894)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갑오개혁에 참여하는 등 조선의 근대화를 꿈꾸며 여러 시도를 했다.

그러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이런 '개혁' 열망은 적극적인 친일 활동으로 이어졌다. 후작 작위를 받았고 '합방'의 공로를 인정받아 포상받기도 했다.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조선3실에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이 전시돼 있다. 유홍준 관장이 올해 박물관에 기증한 유물이다. 2026.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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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비슷한 시기를 살아간 동농 김가진(1846∼1922)의 삶은 다르게 펼쳐진다.

근대 개항기 농상공부대신, 중추원의장 등을 지낸 그는 1910년 일제가 남작 작위를 수여하자 반납하고 비밀결사인 '조선민족대동단'을 이끌며 독립운동에 나섰다.

두 사람의 삶은 어떻게 기억될까.

격변의 시기, 다른 삶을 살아간 박영효와 김가진의 글씨가 박물관에 함께 전시됐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소장한 병풍을 박물관에 기증하면서다.

유홍준 관장이 기증한 병풍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조선3실에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이 전시돼 있다. 사진은 유물 설명. 2026.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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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박물관은 최근 상설전시관 1층 대한제국실을 개편하면서 조선3실에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을 새로 전시했다.

두 폭의 병풍은 박영효, 김가진 두 사람의 글씨로 만들었다.

박영효의 글씨는 봄날 뜰에 풀이 자란 모습을 묘사했고, 김가진은 73세 나이에 원나라 시인이 썼다고 전하는 '죽창'(竹窓)을 옮겨 쓴 것이라고 한다.

"봄날 빈 뜰에 풀이 저절로 자라나고 / 푸릇푸릇한 것들은 인정을 위한 것이 아닌데 / 어찌하여 서쪽에서 온 뜻을 다시 묻는가…. 현현거사 박영효"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조선3실에 박영효·김가진 유묵 병풍이 전시돼 있다. 유홍준 관장이 올해 박물관에 기증한 유물이다. 2026.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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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비친 창가에 서쪽 해 지려 하니 더욱 밝아오고 / 계수나무 꽃향기 속에 학의 꿈이 맑구나. 시중드는 아이는 한가로이 꼼짝도 하지 않고…. 73세 동농 김가진"

병풍은 유홍준 관장이 올해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박물관 측은 "박영효와 김가진 두 사람은 모두 한학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조선의 제도와 문물을 근대적으로 바꾸고자 하였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며 "개화파 두 사람의 글씨를 나란히 보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새 단장한 조선3실 전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조선3실의 주요 전시품 모습. 2026.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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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이날 새롭게 단장한 대한제국실을 공개했다.

90㎡ 규모였던 공간을 133㎡ 규모로 넓히고, '국새 칙명지보(勅命之寶)'와 '데니 태극기' 등 보물 7점을 포함한 65점의 자료로 꽉 채웠다.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을 철거할 때 남쪽 모서리의 머릿돌(정초석) 아래에서 발견된 은판, 전·현직 총독의 이름이 새겨진 상량문은 처음으로 공개된다.

유홍준 관장은 "1897년부터 1910년까지 약 13년의 역사를 공백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며 "이제는 당당하게 대한제국의 실체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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