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영 고려대 아시아·아프리카개발협력센터 연구위원

최두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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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는 아직도 많은 이에게 멀고 낯선 곳으로 여겨진다. 뉴스에 비치는 분쟁과 기아는 '도움이 필요한 대륙'이라는 이미지를 굳힌다. 그러나 54개 나라가 모인 아프리카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바뀌는 현장이다. 성장 속도가 빠른 경제, 도시로 모여드는 젊은 인구, 정보통신 기반의 새 산업이 우리가 놓친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지난 10년 안팎 국제 사회가 '아프리카의 부상'을 말해 온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3억명에 이른다는 '중산층'이 있다. 편견을 걷어내고 생활의 현장을 들여다보는 일에서 한국의 새로운 길이 열린다. 이제 숫자만 보지 말고, 숫자 뒤에 있는 삶을 함께 읽어야 한다.
◇ 3억 중산층, 정의부터 다시 본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은 1인당 일일 소비 지출 2∼20달러(약 2천856원∼2만8천560원)를 중산층으로 본다. 이 기준으로 보면 인구의 3분의 1이 중산층에 속한다. 다만 그중 적지 않은 이들이 2∼4달러 구간의 '유동 계층'이다.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리지만, 이들은 곧 내일의 주된 소비층이기도 하다.
소득만으로 사회의 허리를 재단할 수는 없다. 직업·자산·교육·생활 방식·사회관계망 등 복합 요소를 함께 봐야 한다. 같은 소득이라도 도시 철도 접근성이나 통신 요금제에 따라 장보기 품목과 씀씀이가 달라진다. '3억'이라는 큰 숫자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어 보기보다 지역·세대·생활 단계에 따라 성향과 바람이 어떻게 갈리는지부터 가늠해야 한다. 요컨대 시장을 만드는 것은 큰 숫자가 아니라 다른 삶이다.
◇ 진짜 아프리카: 젊고, 도시에서 폰으로 산다
아프리카의 힘은 젊음에서 나온다. 중위 연령이 10대 후반인 청년층이 오늘의 소비를 이끈다. 도시의 팽창은 소비 중심지를 바꾼다. 이 세대는 어려서부터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다. 도시 거주자 다수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스마트폰은 통신 수단을 넘어 생활의 허브다. 검색·쇼핑·금융이 모바일로 엮인다. 한국 기업의 아프리카 공략은 '모바일 우선'을 넘어 제품 설계·유통·애프터 서비스(A/S)까지 '모바일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이들은 미래를 낙관하며 소비로 응답한다. 생필품은 가성비를 따지지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스마트폰과 화장품에는 과감히 투자한다. 이른바 '가치 역설'이다. 이런 소비패턴이 다층적 포지셔닝(positioning)이 필요한 이유다.
◇ 뜻밖의 연결고리, '한류'라는 문화적 교두보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에 특별한 기회가 열린다. 한류는 일과성 유행을 넘어 '검색-방송-창작'으로 이어지는 사다리를 만들었다. 스트리밍뿐 아니라 지상파 편성까지 넓어졌다. 현지 창작자들이 한국 드라마의 이야기 방식과 표현을 빌려 새 작품을 내놓는 일도 잦아졌다. 나이지리아에선 최근 검색 상위 TV 시리즈 가운데 한국 드라마가 다수를 차지했다. 현지 민영 방송사 AIT가 '펜트하우스', '열혈사제' 등을 정규 편성하는 등 K-드라마는 스트리밍을 넘어 지상파로 스며들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오징어 게임'의 여파로 K-콘텐츠 관련 음악과 애니메이션까지 주목받는다. 나이지리아에서는 한국어 대사를 활용한 유튜브 학원물 '마이 선샤인'(MY SUNSHINE)이 화제가 됐다. 현지 시청자들은 K-드라마의 가족애와 어른 공경 같은 가치에서 문화적 친근감을 느낀다. 이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에 대한 호감으로 연결된다. 한류는 이미 아프리카 시장의 문을 연 소프트 파워다.
◇ 이제는 '아프리카 모자이크'에 투자할 때
이제 우리나라는 민과 관이 한 팀처럼 움직이는 '팀 코리아'로서 정교한 전략을 짜야 한다. 아프리카를 하나로 보지 말고 라고스, 나이로비, 카이로, 요하네스버그 같은 도시별로 접근해야 한다. 나이지리아의 디지털 잠재력, 케냐의 모바일 금융, 남아공의 가치 소비처럼 조각난 '모자이크'를 이해하고 맞춤형 접근을 택해야 한다. 기업은 유동 계층을 겨냥한 합리적 가격과 내구성, 명확한 A/S와 안정 소득층을 겨냥한 프리미엄·브랜드 스토리를 병행하는 이중 포트폴리오를 갖춰야 한다. 정부는 현지 기업가와 한국 기업을 잇는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어 교육 등 자생적으로 커지는 문화 교류 수요에 투자해 미래의 친한(親韓) 리더를 키워야 한다.
아프리카는 변방이 아니다. 우리의 다음 성장을 떠받칠 전략 파트너다. 숫자를 늘어놓거나 편견을 반박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현장 자료에 근거한 도시별 설계와 문화적 공감을 함께 세워 바로 실행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빠르기보다 꾸준함이다. 작게 들어가 빨리 배우고, 고객 의견으로 고치고, 신뢰를 쌓아 넓히는 길이 가장 가깝다. 역동적인 '아프리카 모자이크'를 똑바로 볼 때 상호 호혜의 새 길이 열린다. 지금이야말로 아프리카의 가능성에 과감히, 그러나 영리하게 투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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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두영 박사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시아·아프리카개발협력센터 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겸임교수, 국제개발협력학회 아프리카위원장,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경제학 박사. 주에티오피아 대사관 전문직 행정원 역임, '아프리카 비즈니스 환경과 시장 진출 전략', '동아프리카 스타트업 시장분석' 등 아프리카 경제 및 디지털 전환에 관한 다수 논문과 보고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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