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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다카이치 일본 총리'에 대한 불안과 기대
입력 2025.10.19 03:31수정 2025.10.19 03:31조회수 0댓글0

2024년 10월 야스쿠니신사 참배한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

[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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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작년과 올해 일본 패전일인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에 취재하러 갔다가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을 봤다. 그는 작년에는 경제안보담당상, 올해는 중의원(하원) 의원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찾았다.

집권 자민당의 강경 보수 성향 잠룡으로 평가받던 그는 참배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취재진 질문을 듣고 소신을 밝혔다.

존숭하는 마음으로 감사 혹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는 것이 답변 골자였다. 야스쿠니신사에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도 합사돼 있다. 애도 대상에는 이들도 포함됐을 것이다.

그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일본인이 마땅히 해야 할 행위라고 느끼는 듯했다.

그런 다카이치 의원이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됐다. 세 번째 도전 끝에 당권을 장악한 그는 무난히 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자민당과 26년간 협력 관계를 유지한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중의원 의석수 분포와 정당 간 협의를 고려했을 때 야권의 총리 후보 단일화 협상이 극적으로 진전되지 않는다면 다카이치 총재가 내주 총리직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총재 선거에서 총리로 취임할 경우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올해는 태도를 바꿔 "적절히 판단하겠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사실 '적절히 판단하겠다'는 일본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이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여부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모범 답안처럼 내놓는 말이다.

2013년 10월 당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계획에 대해 "총리 자신이 적절히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도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관련 질문에 같은 답변을 했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는 2013년 12월 야스쿠니신사를 현직 총리 신분으로 참배했고, 이시바 총리는 취임 이후 한 번도 야스쿠니신사를 가지 않았다. 즉 '적절히 판단한다'는 발언만으로는 향후 참배 여부를 명확히 가늠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다카이치 총재가 오는 19일까지 진행되는 야스쿠니신사 추계 예대제(例大祭·제사) 때는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그는 지난 17일 야스쿠니신사를 찾는 대신 공물 대금을 봉납했다.

현직 각료 시절에도 패전일과 봄·가을 예대제에 정기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했던 그로서는 이례적 행보라고 할 수 있다.

다카이치 총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보류하려는 데에는 외교 등 외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총리로 취임하면 곧바로 외교전에 뛰어들어야 한다. 당장 이달 26일 말레이시아에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가 열리고, 27일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오는 31일에는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보류에는 외교 무대 데뷔를 앞두고 굳이 갈등 요소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한국, 중국은 물론 미국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매우 강한 애착을 보여온 만큼 총리 재임 기간 중 갑작스레 참배에 나설 것이라는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보수로의 회귀'를 바라는 의원과 당원의 마음이 확인됐다. 다카이치 총재는 보수층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주저하지 않고 야스쿠니신사를 찾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는다 해도 내년 2월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에 차관급인 정무관 대신 장관인 각료를 보낼 수도 있다.

일본 정부는 이 행사에 13년 연속 정무관을 참석시켰으나,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달 27일 "대신(장관)이 당당히 나가면 좋지 않은가"라고 주장했다. 각료 파견 시 한일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려에도 다카이치 총재가 역사·영토 현안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역시 근거는 외적 요인에 있다.

이와 관련해 자민당이 소수 여당이어서 야당과 협력이 필요하고 운신의 폭도 권력 기반이 공고했던 아베 전 총리 집권 시기처럼 넓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아울러 북한, 중국, 러시아가 밀착하는 상황에서 양호한 한일관계, 한미일 협력이 일본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언행을 자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온건한 역사 인식을 드러낸 이시바 총리도 취임 이후 '아시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구상, 미일지위협정 개정 등 의원 시절 지론을 꺼내지 않았다.

총리는 제반 사정을 두루 고려해 행동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재도 민감한 안보 현안에서 이시바 총리처럼 소신을 굽힐지 궁금하다. 그가 극우에서 온건 실용주의로 노선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비슷한 길을 가기를 기대한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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