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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 "문학은 인간적인 삶을 고민하게 된 선물"
입력 2026.05.20 01:58수정 2026.05.20 01:58조회수 0댓글0

자이니치가 겪은 차별과 고통 다룬 장편 '우리 세희' 펴내
"구석진 사회를 '인간의 얼굴'로 보여주는 게 소설의 힘"
"타자의 삶 기록·증언…자기 삶에 갇히지 않고 그 너머를 봐야"


신작 발표한 소설가 조해진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신작 장편 소설 '우리 세희'를 펴낸 소설가 조해진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열린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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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소설가 조해진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 '디아스포라'(Diaspora).

'흩뿌리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 살던 곳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나 이주 그 자체를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 실존의 근거를 잃고 방황하는 삶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동안 탈북민, 이주민, 입양인 등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의 삶을 조용하면서도 집요하게 응시하며, 그 상처를 보듬어온 조해진이 이번엔 '자이니치'(재일조선인)를 다룬 소설을 펴냈다.

신작 장편 '우리 세희'(현대문학 펴냄)로 돌아온 조해진을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만났다.

작품은 일본계 영국인 예술가 제이비 류를 취재하기 위해 런던에 머무는 연주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오며 시작된다. 일본에 있는 '선생님'이 위독하다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은 연주의 어머니인 오세희의 대학 후배로, 학창 시절 두 사람은 자이니치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의지해왔다.

선생님의 임종을 앞두고 연주는 자신의 기억을 반추하며 세상을 떠난 이들과 남겨진 이들을 떠올린다. 작품은 두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자이니치들이 어떤 차별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정착한 뒤 참상을 목도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희의 오빠, 남한으로 유학을 갔다가 간첩단으로 몰려 혹독한 고문과 옥살이를 겪은 선생님의 두 형은, 남과 북 그 어느 곳으로도 돌아갈 수 없었던 자이니치의 뿌리 뽑힌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또 제이비 류의 할아버지이자 제주 출신의 자이니치인 류성철을 통해 4·3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으로도 무대를 넓힌다.

우리 세희

[현대문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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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송사업·간첩단 사건 등 다뤄…서경식 등 실존 인물 바탕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고 있단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 선생님으로 불리는 서정우는 2023년 세상을 떠난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명예교수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서정우의 형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서승·서준식 형제를, 오세희는 다큐멘터리 감독 양영희를, 류성철은 시인 김시종을 모델로 했다.

사실 조해진이 작품에서 자이니치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소설집 '빛의 호위'(2017)에 수록된 단편 '사물과의 작별' 역시 서승·서준식 형제를 모티프로 한 소설이다.

이번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를 묻자 조 작가는 "'사물과의 작별'보다는 더 긴 호흡으로 자이니치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자이니치가 겪은 고통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는 대변인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이니치란 '타자'에게 가해진 적대와 혐오를, 힘없는 개인에게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집단의 폭력을, 소설로서 기록하고 증언하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특히 조해진은 '작가의 말'에서 "고(故) 서경식 선생님의 책을 접한 이후부터 '자이니치'는 내게 알고 싶고 알아가야 하는 하나의 영토가 되었다"며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신작 발표한 소설가 조해진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신작 장편 소설 '우리 세희'를 펴낸 소설가 조해진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열린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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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집단의 광기 속 폭력에 무너지는 경계인의 삶 다뤄

이처럼 '우리 세희'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다.

조 작가는 "실제 모델이 되어준 인물의 사연을 일부 가져와 쓰기도 했지만, 소설 안에서 최대한 서사에 맞게 녹여내려 했다"며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진 힘을 설명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피상적으로 그리지 않고 서사 안에서 피와 살을 가진 살아있는 '인간의 얼굴'로 각인시키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자 소설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다만 역사적 팩트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한일 협정이라든지 4·3이라든지 역사적 서술에 대해서는 하나라도 잘못된 사실이 들어가지 않도록 역사적 사실을 더블 체크하면서 써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또 이념과 집단의 광기가 만든 '미친 역사'를 다루면서도 특정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이념과 반(反)-이념,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려 했다.

조 작가는 "어떤 이념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얘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서 인간이 인간다워지고 싶을 때 그것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봉쇄되고 무너지는지를 쓰려고 했다"며 "그런 역사를 떠올리고 기억하는 것이 제게는 문학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신작 발표한 소설가 조해진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신작 장편 소설 '우리 세희'를 펴낸 소설가 조해진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열린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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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년간 타자·소수자 목소리에 귀 기울인 '타자의 작가'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소설 '여자에게 길을 묻다'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조해진은 꾸준히 타자 내지는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

'단순한 진심'은 입양아로 자란 주인공이 혈육과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그렸고, '로기완을 만났다'는 탈북 유랑자의 삶을 담았다. 이 밖에 여러 작품에서 노숙자, 동성애자, 여성의 삶을 다루며 '타자의 작가'로 불렸다.

그에게 이처럼 집요하리만치 소외된 이들의 삶을 파고드는 이유를 물었다.

조 작가는 "문학이라는 것이 다른 어떤 장르보다 소외된 사람들을, 자기 몫이 없는 사람들을 다루는 장르여서 좋았다"고 답했다.

이어 "나에게 있는 어떤 결핍을 직시하고, 그 결핍의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세상을 알아가고 이런 것들이 작가로 살아온 22년 동안 문학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문학이란 좀 더 인간적인 삶을 고민하게 된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문학론도 되새겼다.

"문학은 결국 '미친 역사'나 우리가 제대로 눈을 크게 떠도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사회를 나와 다를 것 없는 '인간의 얼굴'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삶에만 갇히지 않고 그 너머를 보게 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자,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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