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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죽음 내몬 '직장 내 괴롭힘'…끝나지 않은 가족들의 고통
입력 2026.05.01 04:09수정 2026.05.01 04:09조회수 0댓글0

가해자 처벌했지만 배상책임 ⅓만 인정…"주먹이 법보다 가까워"
5인 미만 사업장 '괴롭힘 사각지대' 여전…근로기준법 개정 필요


고(故) 전영진씨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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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연합뉴스) 박영서 강태현 기자 = "서로 말을 안 할 뿐이지 힘들죠. 바깥에만 나가면 하늘을 쳐다보게 돼요…직장 내 괴롭힘 참지 마세요. 신고하세요."

달력은 어느새 고(故) 전영진 씨가 세상을 떠난 5월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남은 가족들의 가슴 속에 영진씨는 여전히 '3년 전 그날'에 머문 채 남아 있었다.

영진씨는 2021년 8월 직원이 5명도 채 되지 않는 강원 속초시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만난 약 20년 경력의 상사 A씨로부터 극심한 괴롭힘을 당한 영진씨는 2023년 5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유서 한 장 없이 떠난 동생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형 영호씨가 '혹시 남겨놓은 음성메시지라도 있을까' 열어본 휴대전화에는 영진씨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녹음돼있었다.

A씨는 "○○○○ 같은 ○○ 진짜 확 죽여벌라. 내일 아침부터 함 맞아보자. 이 거지 같은 ○○아", "죄송하면 다야 이 ○○○아", "맨날 맞고 시작할래 아침부터?", "개념이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지", "내일 아침에 오자마자 빠따 열두대야"라는 등 폭언을 일삼았다.

사망 닷새 전 "너 지금 내가 ○○ 열 받는 거 지금 겨우겨우 꾹꾹 참고 있는데 진짜 눈 돌아가면 다, 니네 애미애비고 다 쫓아가 죽일 거야. 내일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이 ○○○아, 알았어?"에 이어 나흘 전 "너 전화 한 번만 더 하면 죽일 거야"라는 욕설을 들은 영진씨는 홀연히 가족들 곁을 떠났다.

사건 기록을 살핀 판사가 "직장 내 괴롭힘 내지 직장 내 갑질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A씨는 협박, 폭행,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고(故) 전영진씨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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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영진씨의 어머니는 림프종 암 초기 진단을 받았고, 아버지는 우울증으로 한동안 약물에 의존해야 했다.

지난달 30일 만난 유가족들은 영진씨를 '딸 같은 아들', '착하고 싹싹한 아들'로 회상하며, 영진씨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착했어요. 내 새끼라서가 아니라 정말 착했어요. 남한테 해코지할 줄도 모르고…"

딸이 없는 집안에서 애교도 많고, 잘 웃고, 밖에 있던 일을 숨김 없이 얘기했다던 영진씨였지만, 직장에서의 일 만큼은 가족들에게 하나도 털어놓지 못했다.

영진씨가 생전에 사용했던 휴대전화 속 무수히 많은 녹음파일만이 어디에도 토로하지 못했던 영진씨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영진씨의 어머니는 "영진이가 무언가 말할 듯한 낌새가 있었는데 그냥 무마했다"며 "뒤돌아보니 '내가 이야기를 너무 안 들어줬나' 하는 후회가 남는다"고 했다.

형 영호씨도 "영진이가 귀가하지 않았을 당시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다 큰 어른이다. 영진이도 생각이 있을 거다'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며 여전히 그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고 힘들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정작 영진씨가 고통을 몰랐을 리 없는 사장은 직장 내 괴롭힘 존재 사실을 인정하지도,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현실은 영진씨 가족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었다.

영진씨 휴대전화에 남은 가해자와의 통화녹음

[촬영 박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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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와 회사 대표를 상대로 손해배상 민사소송에서 일부 승소하긴 했으나 법원은 영진씨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사정과 스트레스에 취약한 기질, 극단적 선택은 본인의 선택이 개입된 결과라는 점을 들어 배상책임 범위를 3분의 1로 제한했다.

영진씨 사건이 일반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과 지속적인 폭력 및 심리적 지배로 말미암은 결과라는 점에서 피해자의 선택 요소를 상대적으로 더 크게 본 판결은 유가족으로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에 유가족들은 항소를 제기, 다시 한번 법원에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배상책임 범위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유가족들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똑같다'고 했다.

"양양군 환경미화원 갑질 사건 등 여러 사건을 지켜보면 레퍼토리가 다 비슷해요.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아무리 법을 강하게 하고, 제재해도 이것만큼은 확실해요. 주먹은 법보다 가까워요."

차라리 태형에 처하는 게 낫다는 하소연이 가볍게 들리지 않을 만큼 영진 씨의 죽음 이후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여전히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다.

영진씨가 생전에 첫 월급으로 어머니에게 선물한 바지

[촬영 박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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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직장갑질119가 낸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근로기준법상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부당해고 제한, 연차유급휴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등 핵심 규정에서 배제된 채 사실상 '법 밖의 특수계급'으로 방치돼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적용되지 않아 신고와 사용자 처벌이 불가능하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조차 할 수 없어 해고의 부당성을 다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실제 5인 미만 사업장의 해고 비율은 5인 이상 사업장의 3∼5배에 달해 고용 불안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은 해고(징계해고·정리해고) 비율이 30.8%로 직장인 평균(14.1%)과 대기업(6.5%)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이에 직장갑질119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해고, 근로 시간, 가산임금, 직장 내 괴롭힘, 연차휴가 등 핵심 보호 사항을 예외 없이 누릴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장 법 개정이 어렵다면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 사각지대를 일부 해소하고,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단속을 위한 적극적인 노동 행정이 개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진씨 가족 역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과 함께 사업주를 엄벌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말 못 하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에게 "참지 말라고, 일자리는 널려 있으니 신고하고 퇴사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조언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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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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