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지상주의'에 경종…사모펀드 운용에도 ESG 잣대 적용
국민 노후자금 수천억 손실 위기…'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비판도

'홈플러스 전단채 피해자'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12일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홈플러스 전단채 사기발행 사건 관련, MBK 엄벌과 피해회복을 위한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홈플러스 물품 구매 전단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등 참석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2025.6.12 m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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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국민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사모펀드와 같은 대체투자에 대해서도 '책임투자'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최근 홈플러스 사태로 국민연금이 수천억 원의 손실 위기에 처하자, 수익률만 좇던 기존의 기금 운용 방식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라는 평가와 함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후약방문식 처방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보건복지부는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통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방식을 개선해 대체투자 분야에도 책임투자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 및 재매각 과정에서 불거진 국민연금의 막대한 손실 우려에 대한 후속 조치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모펀드 운용사 MBK는 홈플러스를 인수하며 국민연금으로부터 6천121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MBK는 홈플러스의 핵심 자산인 알짜 점포들을 매각한 뒤 다시 임차해 쓰는 '세일 앤 리스백' 방식으로 단기간에 거액의 현금을 확보했다. 이 자금은 투자자들에게 고배당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결국 홈플러스는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올해 3월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에 떠넘기는 사모펀드의 '먹튀'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의 노후 주머니에 구멍이 뚫렸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보통주 295억 원은 전액 손실이 유력하며, 5천826억 원에 달하는 상환전환우선주(RCPS) 역시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민연금 측은 현재 MBK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금액이 약 9천억 원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근본 원인으로 국민연금의 '반쪽짜리' 책임투자 제도가 지목된다.
국민연금은 주식이나 채권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요소를 평가해 가점을 부여해왔다.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는 운용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작 MBK와 같은 사모펀드가 포함된 대체투자 분야에는 이 책임투자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보고서를 통해 '대체투자 영역의 책임투자 적용 지침 및 규율 부족'을 명확히 지적했다. 장기적 안정성보다 단기 수익에만 매몰된 운용사가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대체투자에도 책임투자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나섰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 문제는 이미 2022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던 사안이기 때문이다. 2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고 대규모 손실 위험이 현실화한 뒤에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은 셈이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최우선 가치인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이 단기 수익성 논리에 어떻게 잠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교훈이다. 제2의 홈플러스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대체투자 분야에 대한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책임투자 장치를 마련하고,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이 더 이상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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