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의사 1인당 병상수'인데 평가마다 제각각

'빅5' 의사 36% 감소
사진은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이동하는 의료 관계자. 2025.3.2 nowweg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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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A병원의 '의사 1인당 병상수'는 1.5명, B병원은 2.0명. 언뜻 B병원의 인력이 더 우수해 보이지만, 이는 착시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기관 평가 지표는 이름만 같을 뿐, 20개에 달하는 평가 제도마다 계산 방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준이 통일되지 않은 평가는 결국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 재정이 진정으로 의료의 질이 높은 병원에 보상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깜깜이 평가'라는 지적이 나왔다.
18일 보건복지부 의뢰로 울산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건강보험 성과보상 근거 마련을 위한 의료기관 평가체계 개편 기반 연구'보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편화된 현재의 평가 방식을 버리고 '표준화된 원자료(raw data)'를 기반으로 한 통합 평가체계 구축을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내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 지정, 의료 질 평가, 적정성 평가 등 20개의 각기 다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여기에 사용되는 지표만 1천개가 넘는다.
이로 인해 병원들은 유사한 자료를 평가 기관마다 다른 양식으로 반복 제출해야 하는 행정 낭비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평가 결과의 신뢰성이다. 보고서는 평가지표 이름이 동일하거나 유사해도 측정 대상과 시점, 포함·제외 기준, 산출식이 모두 달라 사실상 병원 간 객관적인 비교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에 연구진은 평가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평가마다 가공된 지표를 각각 수집하는 대신, 모든 평가의 기초가 되는 '원자료'를 통합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하는 '다층적 데이터'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는 마치 레고 블록과 같다. 인력·시설·장비 현황, 진료 및 청구 내용, 의료기관 정보교류 표준(KR CDI) 등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를 '티어1(Tier 1·기본 블록)'으로 쌓는다. 이렇게 표준화된 기본 블록들을 조합하면, 누구나 동일한 기준으로 '의사 1인당 환자 수' 같은 '티어2(Tier 2·기본 구조물)' 지표를 만들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여러 데이터를 복합적으로 분석하면 '환자의 중증도를 보정한 실제 사망률'이나 '치료의 비용효과성' 같은 정교하고 깊이 있는 '티어3(Tier 3·고급 모델)' 성과 지표까지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데이터 기반 체계가 마련되면 지금까지 측정하기 어려웠던 의료의 핵심 성과를 평가할 수 있게 된다.
보고서는 이 방식을 통해 수술 후 감염, 낙상 등 '환자안전사고' 발생 여부나 수술 후 통증 감소, 삶의 질 개선 정도와 같은 '환자보고성과(PROs)' 등 국민이 직접 체감하는 의료의 질을 정확히 평가하고 보상과 연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현재의 '중구난방'식 평가를 끝내고, 데이터 중심의 투명하고 일관된 평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공정한 성과 보상체계의 초석이자 대한민국 의료 서비스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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