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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속 새싹 고맙다…절보다 생계터전 잃은 주민이 더 걱정"
입력 2025.04.25 03:01수정 2025.04.25 03:01조회수 0댓글0

"어려울 때 전국에서 내 일처럼 도와줬다…그런 마음 확장하면 자비"
산불 덮친 천년고찰 고운사 주지 등운스님 인터뷰


산불이 고운사 덮친 지 한 달…주지 등운스님

(의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경북 의성군 단촌면 소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에서 주지 등운스님이 산불로 목조 전각들이 대부분 허물어진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영남 지방을 휩쓴 산불은 지난달 25일 고운사까지 번져 보물로 지정된 목조건축물 연수전과 가운루까지 태웠다. 202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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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화마가 휩쓸고 간 시커먼 등운산 자락에 파릇파릇 새싹이 움트고 있다. 산불은 천년고찰의 전각들을 형체를 알 수 없게 허물었지만, 희망까지 사르지는 못했다.

"새카만 재만 남은 곳에 풀이 올라오면서 초록빛으로 물들고 있으니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고맙습니까."

지난 20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소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에서 만난 주지 등운스님은 "우리는 사소한 것의 가치를 평소에는 잘 모른다. 이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 못 느낀다"며 산불이 남기고 간 깨달음을 얘기했다.

화마 휩쓴 자리에 올라오는 초록빛 희망

(의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20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소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 경내의 그을린 토양에서 초록색 싹이 올라오고 있다. 202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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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불교의 첫 번째 진리는 무상(無常)"이라며 입을 열었다.

무상하다고 하면 흔히 '허망하다' 혹은 '덧없다'는 심정을 떠올리지만, 불교에서 얘기하는 무상은 '항상(恒常)하지 않는 것, 변화하는 것, 생멸하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은 변화하며, 똑같은 상태로 있는 것은 없다는 의미다.

등운스님은 "불교는 그대로 유지되는 게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데도 우리는 재산, 명예,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고통스러워진다"고 지적했다.

고양이도 '망연자실'

(의성=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20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소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 경내에서 고양이가 불길이 지나간 나무 근처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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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것이 그렇잖아요. 늙는 것을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데 늙지 않으려고 하니 보톡스까지 맞으며 괴로움을 겪는 거죠. 권력도 영원하지 않은 것인데 지키려고 하니 더 큰 고통을 맛보는 겁니다."

등운스님은 "나무가 새로 나고, 자라고, 사라지면서 숲이 천천히 변해 갈 때는 못 느끼다가 (산불로) 일시에 확 타버리니까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사실 세상에는 이렇게 변해가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화마가 천년고찰을 덮쳐올 때는 수행에 이골이 난 그 역시 태연할 순 없었다. 1959년 경주에서 태어난 등운스님은 26세 때인 1985년 출가해 40년간 절밥을 먹었다.

화마가 휩쓸고 간 고운사

[촬영 이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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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운스님은 "'불이 이 너머로 오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강풍이 불기 시작하자 저 산 너머에서 융단 폭격하듯이 불이 날아들어 왔다"며 불길이 번져 절을 뒤로하고 피신해야 했던 지난달 25일 무렵의 다급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보물로 지정된 목조건축물 연수전과 가운루는 불길을 피할 길이 없었다. 역시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을 옮기기 위해 도르래 등을 미리 설치해 놓았지만, 불길이 빠르게 번지자 마음은 조급했고 장비 조작도 생각만큼 빨리 되지 않았다고 한다. 돌로 된 좌대는 무거워서 옮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스님은 덧붙였다.

전각이 있던 자리 살펴보는 등운스님

[촬영 이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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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운스님은 "옛 스님들이 잘 지켜서 내려왔던, 당신들이 정성 들여 기도하던 장소, 수행의 에너지가 담긴 공간이 없어져 버렸으니 안타깝고 힘들었다"고 산불 직후의 심정을 고백했다. 하지만 각지에서 이어진 도움의 손길을 접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게 됐다고 한다.

보물 가운루가 있던 자리

[촬영 이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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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나의 일인 것처럼 달려와 줬거든요. 평화로울 때는 그런 마음을 잘 안 내거든요. 산불을 계기로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내 일처럼 함께하는 그런 마음을 일상에서도 살려갈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짜 좋은 세상이 될 수 있겠죠. 산불이 주는 교훈이 될 겁니다."

등운스님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그런 마음을 더 확장하면 그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심"이라며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작은 생명체까지 소중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을 지니면 좋은 세상, 즉 극락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려울 때 내 일처럼 도와주는 마음

[촬영 이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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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 차원에서 고운사 복원에 힘을 모으고 있어 시간은 걸리겠지만 도량을 회복할 수 있다고 스님은 믿고 있다. 역으로 현대적인 새로운 스타일을 도입할 기회도 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염려하는 것은 인근 주민들이다.

"마을 사람들이 더 걱정이에요. 대부분 70∼80대이시고 주로 농사를 짓는데 농기계도 타버렸고 과수원 나무도 타버렸어요. 어떻게 보면 생계의 터전이 없어져 버렸거든요."

화마가 지나간 등운산

[촬영 이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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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산불 피해 주민을 지원하고는 있다. 하지만 행정력만으로 이들이 일상을 되찾기는 부족하다고 등운스님은 보고 있다.

그는 전국 사찰이나 비구니회 등에서 찾아오면 고운사 대신 주민들을 도우라고 권하고 어려움을 겪는 마을 관계자를 소개해주고 있다고 한다. 고운사는 절에 들어오는 지원금 등을 주변 피해 주민에게 나눠주기도 했다고 불교계 관계자는 전했다. 교구 차원에서 주민을 위한 모금도 진행 중이다.

등운스님은 고운사를 지키기 위해 달려왔다가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던 소방관들을 잊지 않았다.

소방관들이 대피했던 목욕탕

[촬영 이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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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남았던 소방관 11명은 불길에 퇴로가 막혀 탈출하지 못하고 대웅전 근처에 있던 목욕탕으로 대피해 한참을 버티다가 출동한 구조팀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목욕탕은 과거에 선방 스님들이 쓰던 곳인데, 콘크리트로 지어졌고 윗부분이 흙으로 덮인 벙커 같은 구조여서 그나마 열기를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고은사 측은 설명했다.

등운스님은 "정말 고생하셨다"고 소방관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서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당부했다.

"소방관들 복지와 처우 향상해 주고 장비도 좀 개선해주세요. 소방 헬기 용량도 더 키우면 좋겠습니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

[촬영 이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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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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