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존 길페트릭 목사는 브라운즈빌 하나님의 성회 교 단 교회에 담임목사로 임명이 되었다. 길페트릭 목사는 그의 저 서 불의 제전에서 자신의 인생 가운데 주님의 사역이 되어진 일들과 사건들이 1995 년 아버지의 날에 일어난 교회 부흥의 시작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있다고 했는데 흥미 있는 일은 한국 서울에 있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 담임 목사인 조용기 목사는 70여만 명의 성도를 가진 세계 최대의 교회를 가진 영적 지도 자이면서도 미국의 영적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깊은 관심이 있었다. 한번은 미 국의 지도를 펴고 손을 올려놓으라고 해서 말씀대로 그렇게 하자 손가락이 플로리 다주의 팬사콜라를 가리켰다고 했다. 그때 성령께서 그의 입을 통하여 미국 성령의 불길에 휩싸이기까지 강력한 은혜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 데 성령께서 예언의 말씀을 주신 것이라고 아멘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91년은 브라운즈빌 교회는 성전이 거의 완공되기도 했는데 이때의 전교 인수 는 300여 명을 넘어서고 있을 때였다. 조금씩 부흥이 되는 상태였다. 목사도 성도들 도 만족하고 교회 분위기도 새롭게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왠지 길패트릭 목사 의 마음에는 뭔가 부족함과 공허함을 느끼고 있어서 좀 더 예수 그리스도와 깊고 친 밀한 관계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저녁 예배를 기도회로 바꿔서 하 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바꿔보기로 했다. 말씀 대신 이웃을 위하 여 중보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기도회에 함께 하신다는 영감을 받 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게 되니 그룹으로 나누어서 기도회를 하기까지 했 다. 은혜다웠다. 그러면서 기도 제목을 깃발로 만들어서 교회만 세웠다.
세계선교, 영혼구원, 이웃사랑, 가정회복, 배가 운동 10개의 깃발을 이곳저곳에 세 웠는데 성도들이 어느새 1,000여 명의 기도 용사로 바뀌고 자꾸 늘어나기 시작하는 데 어떤 이는 흐느끼고 울기도 하고 쓰러지고 두 손 들고 경배 찬양하고 표정들이 모두 천사같이 바뀌기 시작했다. 억제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 이다. 날이 갈수록 성도들의 출석률도 좋아지고 예배도 은혜다웠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약 1년 가까이 지나면서 혹시나 하고 계속 기도회를 이어 나가도 될까 하며 염려도 해보았지만, 염려와는 달리 기도하면 할수록 성령의 역사로 은혜를 주시니 감사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계속 기도를 이어가는데 어느 주일 밤 기도 중에 성령께 서 말씀을 주셨다. 이 성전이 기도의 처소로 계속 유지된다면 내 영광이 이곳에 임 할 것이라고 감사 기도를 드리고 이때 부터 주일 저녁 기도회를 마칠 때는 성찬식 으로 은혜롭게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축복의 말씀으로 축복을 선언했다. 2년 6개 월 정도 계속 이어 나갔다. 이때 길패트릭 목사의 어머님이 소천하셨다. 언제나 교 회와 목사 위해 기도해 주시던 어머님이 갑자기 가시고 나니 정말 허전하고 슬펐다.
어머님은 기도의 동역자요 조언자요 성도들과의 사이에서의 연결고리이자 통로 였다. 이렇게 많은 역할을 감당해 오셨기에 나에겐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었다. 낙심과 좌절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성도들을 바라보고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 해 나갔다. 기도를 계속하는 동안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므로 기도하는 동 안에 울며 흐느끼며 방언을 말하며 쓰러지고 넘어지며 흔들리고 어떻게 제어할 수 없는 역사가 자꾸 일어나기 시작했다. 길 패트릭 목사에게도 돌연히 바람이 불어 와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서 쓰러졌다. 그러고는 일어날 수 없어서 4시간 후에 야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강력하게 임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갈등해 오던 영적인 문제들이 하나둘씩 해결이 되어졌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것에도 제한받 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기도를 시작한 지 약 3년 정도 사이에 수만 명 의 방문객들이 다녀갔다. 매주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집회하고 중 보기 도회를 하 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면 복도에도 스크린을 설치하여 날마다 큰 권능으로 역 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하였다.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어떻게 작은 악마는 빵 조각을 보상하였는가?'라 는 단편이 있습니다.
어떤 가난한 농부가 점심으로 빵 한 조각을 싸서 밭갈이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점심때가 되어 빵을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하지만 농부는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누군 가 훔쳐 갔다면 꼭 필요해서 가져갔겠지.'라며 물로 배를 채우고는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작은 악마가 빵 조각을 훔쳐 갔던 것입니다. 농부가 화를 내며 욕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큰 악마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실패한 보고를 받은 큰 악마는 노발대발했습니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농부처럼 반응한다면 우리는 할 일이 없어져서 살아갈 수가 없다. 절대로 그대로 둘 수는 없 어. 다시 기회를 줄 테니 농부에게 그 빵 한 조각을 보상하고 오너라.' 그래서 작은 악마는 궁리 끝에 성실한 사람으로 둔갑해서 농부의 머슴으로 들어가서 그를 부자 가 되게 하고는, 남아 넘치는 곡식으로 술을 담그라고 유혹했습니다. 드디어 농부는 술을 담가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여 술잔치를 벌였습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 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 공치사를 늘어놓으며 입에서 나 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큰 악마는 작은 악마를 칭찬했습니다. '만약 저 술 때문에 저렇게 교활 해져서 서로를 속이게 된다면 저놈들은 이미 우리에게 진 거야.'
작은 악마는 말했습니다.
'아직도 멀었습니다. 저놈들에게 한 잔만 더 먹여 보십시오. 여우처럼 꼬리를 흔 들며 간지러운 공치사를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나운 이리같이 될 것입니다. 분명 히 서로 욕하며 화를 내며 멱살을 잡고 싸우게 될 것입니다.' 술이 더 들어가니 정 말 그랬습니다.
거기다가 석 잔째를 먹었더니 이제는 상황이 급전되어 돼지처럼 되어 버렸습니 다. 그들은 완전히 취해서 횡설수설하며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드디어 웅덩이에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고는 더러운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뒹굴고 있었습니 다.
큰 악마는 '어떻게 이렇게 좋은 음료수를 발견했느냐'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 다. 이제 이 술만 있으면 사람을 언제든지 짐승으로 전락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 악마는 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고 싶어 '혹시 술 속에 여우와 이리와 돼 지의 피를 넣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작은 악마는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짐승의 피는 항상 그자들 속에 있습니다. 그들이 가난할 때는 피가 일 을 못 하지만, 곡식에 여유가 생기면 짐승의 피가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 은 좋은 위안거리를 찾습니다. 그때 제가 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술이 그에게 들 어가면 여우와 이리와 돼지의 피가 차례로 발동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술만 마 시면 언제든지 짐승이 되어 버린답니다.' 그래서 작은 악마는 우두머리로 발탁이 되 었습니다.
술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타락의 능력이 있습니다. 여우, 이 리, 돼지가 되게 하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술 때문에 실수 도 하고 죄도 짓게 되고, 자신을 짐승 수준으로 스스로 낮추어 버리기도 합니다. 미 련한 사람은 술을 멀리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기보다는, 많 이 주어 술을 만들어 스스로 타락하게 만듭니다. 빼앗길 때보다 풍성할 때 더 조심 해야 합니다. 짐승이 되어 마귀의 기쁨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5:18)
하나님은 우리에게, 술로 짐승같이 되지 말고, 성령으로 하나님같이 되라고 명령 하십니다.
10월의 문턱에서 교회 뒤쪽 화단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십 년 목회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 보는 것이다. 사월에 꽃을 피우는 라일락이 교회 뒷문에서 연보랏빛 작은 꽃봉오리를 활짝 터뜨렸다. 가까이 주차하던 사람들도 일단 내리면 그곳에서 풍기는 라일락 향에 이끌려 만지며 신기해한다. 이틀 전 국립암센터 리모델링 공사를 하던 인부들도 꽃이 예뻐 보였는지 점심을 마치고 담배 한 모금을 물고 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그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며, 조금이라도 오래 그 향을 맡고 싶어서 절제를 부탁하기도 하였다. 일 년에 두 번 꽃을 피우는 라일락을 보며 무슨 좋은 일어난 듯 괜히 웃음이 나오고 교회를 들어설 때마다 향기를 맡고자 일부러 들리는 장소가 되었다.
작년 여름 지방회의 일정으로 후지산 기도회를 다녀와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다시 태동이 되었다. 다섯 장소나 되는 아름다운 호수 주변과 자살률이 높은 아오키가하라 수해 장소들을 찾아 일본의 부흥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일본에 올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특별히 일본어로 제작된 전도지를 준비해 가지고 가서 호수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하며 휴게실 등에 일일이 뿌렸다. 기도회를 시작하신 임진형 목사님은 한 눈에도 꽤 나이가 들어 보이셨다. 안식을 취하실 나이심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표적 신사가 있는 후지산에서 홀로 대적 기도를 하시고 후지산 기도회를 육 년째 인도하고 계신다고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갈렙이 생각이 날 정도로 정신력과 건강을, 주님을 위해서 늘 단련하신다고 들었다. 육십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제는 쉬엄쉬엄 목회해야겠다고 뒷전에 슬그머니 물러서고자 하는 나의 태도가 목사님을 대하고선 번쩍 정신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생명을 마칠 때까지 주님께 귀히 쓰임을 받고 싶다는 열정이 일어났다.
후지산의 마지막 호수인 모토스 호수는 작고 고요하고 호젓한 장소였다. 하늘도 파랗고 높은데 구름이 신비롭게 천사의 날개깃처럼 빗살 모양으로 세로로 서 있다. 홀로 걷고 있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예전 2001년 일본선교 지원센터를 할 때 처음 주일 성경학교 훈련을 위해 방문했던 교회가 기억나니? 임 목사님이 바로 그 교회 목사님이란다.” 믿기지 않았다.
그때 난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을 다니며 일본선교 지원센터란 사무실을 종로에 두고 일본을 섬기고 있던 터였다. 나중에 확인할 바론 그 교회에서 홀로 계신 이모님이 신앙생활을 하셨고 목사님께서 교회장으로 장례식을 치르셨다고 들었으나 고마움과 감사함을 표현할 길이 없어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 그 음성이 믿기지 않아 곁에 있는 전도사님께 물었더니 바로 동경할렐루야 교회 목사님이 맞다고 하시는 것이다. 사실을 확인하고서 이유를 알지 못해 당황해하는 목사님을 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처음 일본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제일 먼저 방문한 교회, 더구나 이모님과 연관이 있었던 목사님을 어떻게 이십 삼 년 만에 우연히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그리고 목사님과의 만남은 보고 싶었던 이모님에 대한 추억과 더불어 특별한 만남이 되었다.
그것은 다음 해 후지산 제칠회 기도회에 참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호수 주변을 돌며 기도하는 일정에, 동경에 있던 목사님의 이전 성도님들도 동참하셨는데, 나를 보자마자 이모님이 생각나신다며 너무 닮았다고 감탄하신다. 그렇게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마치 오랫동안 알았던 분들처럼 한 가족 같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후지시 로제시어터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함께 춤추고 찬양하고 어우러지며 일본에 대한 깊은 사랑이 다시 피어났다. 1996년 한국은 IMF로 인해 도미노식으로 사업들이 줄도산할 때 남편이 하던 건축업도 예외 없이 부도를 맞게 되었다. 그때 셋째 딸아이가 태어났다. 밤에 잠이 달아날 정도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집사로 교회를 다녔지만 제대로 기도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집 곁에 있는 개척교회에서 밤새 막내를 업고서 철야기도를 해 나갔다. 놀랍게도 주님은 박사학위도 없는 남편을 정교수가 될 수 있게끔 기적적으로 역사하셨다. 너무도 감사해서 “하나님의 소원 하나를 말씀해 주시면 제가 할게요”라며 철없는, 또한 교만하기까지 한 기도를 드렸다. 그때 주님은 “일본을 위해서 기도해다오”라고 하셔서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일본이 망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일본 국제 몬테소리 교사자격증을 따서 일본 유치원을 통해 복음을 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시부모님을 모시고선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이십칠 개월 된 막내를 업고 일본선교 훈련센터인 JEM에서 일 년 동안 훈련받고서 결국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다. 물론 일본을 위해선 늘 달려갔다. 2016년 때 안식년에 들어가 일본 나가사키와 시마바라를 샅샅이 찾아 삼십 만 명의 순교자들이 가장 많이 순교했던 시마바라 운젠 순교의 길, 삼백 년 전에 그들이 걸어갔던 길을 찾게 되었다. 순교 장소를 답사하고 마지막 세 시간 동안 순교하기 위해 걸어갔던 길, 시마바라 순교 순례란 관광상품을 만들어 십회에 걸쳐 청년들을 인도하는 가이드를 하기도 했었다. 놀랍게도 그해 미션 영화를 만들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침묵’이란 영화가 만들어져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코로나 기간을 지나고 나서 다시 후지산 기도회로 인도함을 받으면서 일본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 그때 통역을 맡았던 이윤근 목사님과 임진형 목사님께서 함께 우리 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한쪽 구석으로 밀쳐놓았던 ‘일본선교 지원센터’란 현판을 우연히 발견하신 이윤근 목사님께서도 동일한 마음을 가지게 되셨다고 한다. 청년 때부터 십 년 동안 일본을 섬겼던 목사님은 지금은 한국에서 목회하신 지 이십 년이 넘으셨다. 일본을 생각하면 언제나 사랑의 빚을 진 것 같은 마음이 든다고 하셨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지금이라고 늦지 않으니 ‘일본선교 훈련센터’를 이 장소에서 하면 좋겠다고 건의하신 것이다. 일본에 대한 불티가 이십 년 넘게 서로의 가슴에 간직되어 온 것이다. 다시 일본에 대한 첫사랑이 회복된 것이다. 함께 마음을 합하여 시월 구 일 시작하기로 했다. 열 명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는데 정확하게 첫날 열 명이 왔다. 일본어 예배, 일본어 공부, 기도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국화가 사꾸라꽃, 벚꽃인 만큼 활짝 일본의 부흥을 열어 달라고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이때쯤 교회 뒤 화단의 라일락도 꽃을 피웠는데 꽃말이 ‘첫사랑’이다. 비록 육십을 넘어 시작했지만, 이 목사님도 나도 그 첫사랑의 마음이 지속되는 것이 원한다. 첫날 이어진 훈련은 아침 열한 시에 시작하여 저녁 여덟 시에 끝이 났다. 목청껏 최선을 다하여 가르쳐 주시는 이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일본선교 훈련센터를 거쳐 선교의 동력인 귀한 일군이 태동하는 요람이 되길 원한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 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 리라 - 렘5:1”
예레미야 5장 1절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거리를 빠르게 다니며 정의와 진리를 구 하는 한 사람이라도 찾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과거의 이스라엘 유다 백성 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현대 사회는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가 끊임없이 등장하며,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발전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결핍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결핍의 본 질은 무엇일까요? 바로 지도자의 부족, 즉 하나님 뜻에 따라 세상을 이끌어갈 의로운 인물의 부재입니다.
하나님은 의와 공의를 갈망하시며, 정의를 행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애통하는 자 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 의 것임이라.”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의로운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 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의인을 찾기 위해 기도했을 때, 단 한 사람조차 찾지 못 했던 상황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의인이 없었기에 그 도시는 멸망했습니다. BC6 세기 예루살렘의 멸망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의인 한 사람 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의인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한나라와 민족이 멸망했음을 보았 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하나님 앞에 의인이기보다 세상의 유명인이 되고 싶어 할 까요? 많은 이들이 돈과 명성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 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우상으로 삼고, 진정한 가치와 목적을 잃 어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잊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와 세상의 우상들 을 쫓는 삶은 우리를 죄에 빠뜨립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슬픔을 드리 는지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예레미야서 4장 48절 의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이 슬프고 답답할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보내시 는 경고의 소리입니다.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이 말씀은 하나 님께서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는 회개하고 돌아갈 때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은혜 를 기억하며 슬프고 아픈 마음으로 통회하길 소망합니다.
예레미야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의인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는 10월 27일, 한국에서는 200만 성도가 함께하는 연합예배 및 기도회가 광화문 에서 열립니다. 이 뜻깊은 모임의 시작은 한 목사의 간절한 기도로부터 비롯되었습니 다. 그는 차별금지법이라는 악법이 이 나라에 승인되기 전에 하나님께 목 놓아 울부짖 으며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단순한 개인의 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많은 성도들이 느끼 는 고통과 염원을 담고 있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우리는 이 땅의 정의 와 공의를 간구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고백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차별금지법과 같은 도전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이 땅에 정 의와 평화를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기도가 이 나라를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국,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는 그 한 사람, 바로 여러분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일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며, 그들을 고아와 같이 내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며, 우 리는 그 계획의 일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의 뜻을 이루 어가는 삶을 살 때, 그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로운 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를 바랍니다.
축복의 동산 후쿠오카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지금 일본은 엔화 약세로 3월에만 300백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을 찾았 는데 그중에 한국인이 66만 명으로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교토와 도쿄 등 일본의 유명 관광지에서는 오버투어리즘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늘어난 관광객들로 인해 안전 문제, 교통혼잡, 생활권 침해 등으로 주민들이 많은 불만의 소리를 내고 있 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지자체에서는 숙박료 등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입장료를 받고,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다른 음식 가격을 부과하는 등 여러 가지로 관광객 과부하를 막 을 방법 등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후쿠오카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시내 어디서나 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데 방문자 수는 늘었어도 방문객들의 씀씀이는 준 것으로 조사돼 일 본 경제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인 듯합니다.
한편,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에 일본으로의 단기선교나 선교 여행도 많이 활성화되 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에만 4번에 걸쳐 총 8분이 저희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도 주님 나라 확장을 위해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이 이루 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