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연화 목사 / 순복음경향교회
부제: 첫눈이 내린 후지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잠을 설친 탓인지 비행기를 타자마자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깨어나 무심코 아래를 내려보았다. 놀라운 광경이 들어왔다. 후지산의 정경이 가로막힘 없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3,776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후지산은 평소에 항상 구름과 눈을 대동하고 다닌다. 산 위에 만년설 같은 눈을 이고 있는 모습과, 구름을 허리에 띠로 두른 듯한 모습을 주로 많이 보았다. 발가벗은 후지산을 볼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이윤근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원준상 선교사님을 모시고 치유 집회를 후지시에서 준비하는데, 비행기 왕복 값이 너무 싸게 나왔다는 것이다. 12만 원이란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꼭 참석 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일본을 많이 다녀 봤지만, 이런 가격은 좀처럼 오지 않는 기회다. 새벽에 잠이 깬, 이령 전도사가 컴퓨터를 하다 발견했다고 한다. 정은선 반주자와 박선희 전도사에게도 권했다. 명목은 ‘일본 선교 훈련학교’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으니, 언어실습을 가보자고 제의를 한 것이다. 모두 가격대가 너무 싸니 스스럼없이 허락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모사, 즉 신의 한 수였던 것을 후 에야 알 수 있었다.
훈련학교 학생들이 일본을 경험하기 위해 예비된 시간인 온전한 하루를 위해 어디를 방문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후지산의 다섯 호수가 아름다운데 특히 야마나시의 ‘야마나카 호수’는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이색적인 분위기다. 일렁이는 파란 호수 가장자리로 갈대가 나부끼고 그 위를 여유 있게 오가는 백조들이 천상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경험하기에는 가와구치 호수가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케이블카가 있어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도, 또한 기도도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후지노미야시’를 소개했던 영상이 기억났다. 그곳엔 ‘후지산 세계유산센터’가 있어 간접 등산도 경험할 수 있고, 더구나 가까이에 일본 센겐신사 본부가 있는 곳이다.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신 사명의 그물에 철저히 낚여졌다 웃음이 나왔다. 마4:19절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란 말씀이 떠올랐다. 집회를 위해서 동원된 것은 오직 목사님의 믿음이 전부였다. 때마다 돕던 사위조차 갑자기 수술하게 되었다. 이어서 방문한 교회의 신디 피아노에선 소리가 나질 않았다. “이거, 누가 싸게 준다고 해서 샀는데 이거 내가 속았네”라고 목사님은 타이어에서 바람이 빠진 듯한 소리를 내셨다. 바로 오늘이 집회인데 반주자도 찬양 인도자도 없다. 임 선교사님의 순종과 믿음, 추진력에 도전을 받았다.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본과 후지시의 부흥과 영혼 구령을 위해 주님을 의지하며 일을 진행해 나가시는 것이 기이하게 여겨졌다. 후지산 속에서 마귀의 견고한 진과의 외로운 싸움을 거치시고 벌써 7회나 대대적인 기도회를 이끄셨으며, 치유 집회까지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주님께서 베다니에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아직 열매를 맺기도 전인 사월임에도 불구하고 뿌리째 말라버린 것이다. 다음날 그 곁을 지나던 베드로가 주님께 물었을 때 주님의 대답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함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 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니라” 임진형 선교사님께서 아멘이라고 크게 화답하는 무화과나무로 보였다. 조금도 의심 없이 환경을 초월하며 주님을 의지한 채, 모든 것을 진행하고 이끌어가는 모습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이십 년 동안 교회 반주를 맡은 정은선 집사, 그리고 찬양 인도자인 박선희 전도사님이 지금 여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와 사진 촬영을 위해 이령 전도사, 통역을 위한 이윤근 목사님, 모든 것이 완벽했다. 23년 전 반주자, 컴퓨터 기사, 성경학교 프로그램을 위해 ‘일본선교 지원센터’ 일꾼들을 이끌고 다녔던 생각이 저절로 났다. 내가 했던 일은 주로 부엌에서 세 끼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급히 부르셨구나, 우리는 12만 원의 비행깃값, 낚시에 낚인 것이다.
도착한 첫날 센갠다이샤는 마쯔리날이었다. 센켄다이샤는 일본 전역의 1,300개의 센겐신사의 총본궁이다. 법궤를 닮은 이동식 가마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다 나와서 그들이 연주하는 전통악기 소리가 진동하였다. 신사에 들어서기까지 거침없이 흐르는 맑은 물은 후지산의 규모를 말해주는 듯 물소리까지 웅장했다. 가장자리로 즐비한 방갈로를 닮은 천막에는 갖가지 전통음식이 종류별로 입맛을 돋우었다. 비행기에서부터 주님의 손에 사로잡힌 보혈 빗자루, 후지산 전체를 보여주셨으니, 일본 대표 신사가 축제를 통해 불러낸 모든 귀신을 싹쓰리 쓸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신사 안쪽까지 열심히 대적 기도를 했다. 허기진 배를 달래듯 건너편에는 야끼소바와 주먹만 한 만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후지산에서 내려오는 나무로 감싼 우물 샘터에서 마신 물맛이 달고도 달았다. 후지산 세계유산센터는 후지산을 활용한 원추형 디자인의 건물이 수반 위에 비치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입구에서 슬로프를 올라가면서 ‘등배하는 산‘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고 마지막 개방된 테라스에서 후지산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들을 추억으로 남겼다.
발가벗은 후지산을 보여주신 주님은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하얗게 눈이 덮인 후지산을 선물로 보여주셨다. 뉴스에선 이 일이 1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후지산에 처음으로 11월에 눈이 내린 것이다. “목사님, 첫눈입니다”란 카톡이 임 선교사님에게서 왔다, 경이로움이 가득 차올랐다. 이틀 간의 집회에서 치유의 기적이 잇달아 일어났다. 놀라운 것은 15년 동안 휠체어에서 지내던 청년이 벌떡 일어나 기쁨으로 휠체어를 끌고 몇 바퀴나 돌았다. 눈물을 흘리는 그와 더불어, 함께 한 일본인들이 방언으로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보며 함께 감격하고 울었다. 이 집회에 부르신 주님께 깊은 감사를 올리며 그토록 열망하고 기도했던 일본의 부흥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령 전도사 / 지구촌선교교회
우리는 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인식하고 살아야 할까요?
민수기엔 정탐꾼 사건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 하나님은 각 지파별로 선택한 12사람을 정탐을 보내십니다.
이때 12명 중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곤 10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을 이길 수 없다고 보고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처리하실 때 그 가족을 벌하시기도 하고, 전쟁에서 지게 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이 정탐꾼 보고에 대한 반응은 구약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창세기 12장 아브라함과 한 언약을 깨고 모세를 믿음의 조상으로 하여 아브라함 자손을 다 멸절시키고 모세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런 말씀에 모세는 팍 엎으려 중보기도 합니다. 이 기도에 하나님은 위에 생각을 거두시고 불평한 세대는 광야에서 죽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고 40년 광야 생활을 주십니다.
정탐꾼 사건으로 하느님이 이토록 심각한 반응을 하셨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불신, 원망, 불평이라고 답하겠지만, 더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바로 메뚜기 정체감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은 메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에 대해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져야 할 존재의의를 자각하지 못한 것이 원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나라와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십니다. 국민을 만들고, 법을 주시고, 땅을 주시려는 찰나에 그들은 그 땅을 쟁취할 힘이 없었습니다. 싸움에서 이기냐 지냐를 떠나 “사명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자존감이 없었던 탓에 자신들이 누구인지, 존재의의를 상실하고 목표 없이 건성건성 하나님을 따라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사명감 없이 살아온 세대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녀 된 자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보내 고난을 받게 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까지 하게 하셨는데
이를 믿는 우리들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 기준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세상을 거인 삼고 우리를 메뚜기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을 기쁘게 보고 계실까요?
예수님의 보혈을 싸구려로 만드는 “메뚜기 정체성”을 절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가나안은 아무나 가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사명을 자각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정복해서 얻어내는 땅입니다. 적어도 가나안에 들어가서 우상 숭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낼 자들이 가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사명이 없는 자들에게 가나안을 허락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않는 이들에겐 천국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 누가복음 6:46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마태복음 7:21
아버지 뜻대로 살지 않는 삶은 세상에 속한 삶입니다. 세상은 썩고 사라질 것들을 아름답고 강해 보이게 눈속임하여 우리를 죽게 만들고 타락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세상의 자녀였을 때 누군가를 미워하고, 가난하고 힘들고 아픈 자들에게 마음을 쓰지 않으며, 세상 문제에 근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내 입에서 사랑의 말이 나오지 않으며, 전도하지 않고, 겸손하지 못하고 마음이 교만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체성을 입어야 합니다.
노력으로는 되지 않았던 성품의 변화, 생각의 변화, 주변 환경이 변화가 일어나는 응답의 삶, 능력의 삶을 사는 것이 진짜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주를 찬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의 완성으로 타락해 가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입은 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기정 목사 / 대동교회
여수와 순천, 보성, 고흥에 둘러싸여 있는 여자만, 그 중심에는 아름다운 섬 여자도가 있다. 사실 여자만이라는 이름도 여자도에서 비롯되었다. 여 자도의 면적은 0.59㎢ 해안선 길이는 7.5㎞이며 행정구역은 여수시 화정면 여자리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소라면이 더 가깝다.
여자도는 우리말로 ‘넘자섬’이라고 불렀다. ‘넘’은 넘는다는 뜻이며, ‘자’는 산을 뜻한다. 섬의 높이가 전체적으로 낮아 큰 파도가 치면 섬을 넘는다 고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여자도의 개미등 같은 곳에서는 강한 태풍으로 파도가 치면 남쪽에서 북쪽으로 섬을 넣는다. 그런 넘자도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넘’은 남이란 뜻의 ‘너 여(汝)’로 표기하고, 자는 ‘스스로 自(자)’로 표기하여 여자(汝自)도라고 한 것이다.
여자도에는 대여자도와 소여자도가 있다. 2011년 1월에 마파마을에서 소여자도를 연결하는 여자인도교(붕장어다리라고도 부른다)를 설치하여 연 결되어 있다. 마을의 유래에 따르면 여자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로 알려져 있다.
여자도에는 대동마을과 마파마을 그리고 송여자 마을이 있다. 여자도의 배편은 하루 네 번의 도선이 운항한다. 현재, 여자도에는 200여 명이 살 고 있다.


나철수 목사 / 밀양시민교회
중세 교회의 타락이 절정에 이를 무렵 항간에서는 로마 교황청과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을 보며 교황청을 ROMA라고 불렀다. 이는 라틴어 “Radix Omnium Malomum Avarita”의 약어로 그 의미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로 로마의 탐욕을 풍자한 언어였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95개조 반박문(95 Theses)’을 비텐베르크성의 교회에 게시함으로 종교개혁 의 불길이 타올랐다. (사실 루터는 자신이의 입으로 이 반박문을 최초로 비텐베르크성의 교회에 게시하였노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사실이라고 여겨졌던 이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에는 약간은 흔들리고 있다.) 종교개혁은 확실히 교회의 부패에 대한 격분으로 시작되었 다. 이 운동을 전개한 직접적인 원인은 성직자들의 탐욕, 교회관직을 미끼로 한 교회의 장사 행위, 특별히 면죄부의 판매는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종 교개혁은 단순히 ‘교회 내부만의 개혁의 문제’가 아니었다. 종교개혁은 중세 말의 유럽 사회의 전면적인 변화 과정 속에서 요구된 새로운 사회로의 지 향하는 힘의 분출이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의 결과도 단순히 ‘교회와 신앙’의 변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유럽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었다.
1. 종교개혁의 원인과 선구자들
교회는 이미 14세기에 발생했던 ‘교황의 바벨론 유수’, ‘교회의 대분열(2명의 교황이 존재하던 시기)’로 인해 교황을 중심으로 한 통일성이 약화한 상태였다. 한편, 중세 봉건사회의 붕괴와 더불어 봉건사회를 지탱하던 봉건적 지방분권 체제가 무너지고 왕권을 중심으로 한 통일국가로의 발전이 이 루어짐으로 교황의 권위는 더욱더 실추되고 국가교회주의의 추세가 강하게 나타났다.
1) 종교개혁 시대의 사회적 배경
봉건적 사회구조의 변화는 보편적 조직체였던 중세 사회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잠식하게 된다.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국왕이나 몰락의 길을 걷 는 봉건귀족이 다 같이 ‘돈의 궁핍’에 시달리면서 막대한 교회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고, 부가 로마(교회)로 유출되는 것을 가로채려 하였다. (실제로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개혁과 정화를 앞세워 크고 작은 수도원을 몰수하였지만, 이런 교회 재산의 세속화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제외하고 16세기 내내 모든 유럽 국가에서 벌어지게 된다.)한편 장원제도의 붕괴로 농노 신분과 봉건적 부담에서 해방되기 시작한 농민들은 10분의 1세를 비롯한 교 회세에 대하여 회의적이었으며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개성의 각성은 중세 말의 정신적, 지적 풍토를 크게 변화시키고 교회의 획일적인 정신적 문화 적 통제를 크게 약화시켰다.
이 중대한 시기에 교황과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성직자의 타락은 당대인의 눈에 너무나 뚜렷하여 야유와 풍자와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교황 또한 르네상스의 물에 젖어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욕망의 충족에 여념이 없었다. 네포티즘(nepotism, 중세 교황이나 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이 공공연히 자식들을 낳고 조카라고 부르는 행위)은 교황청의 상식이었는데 대표적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악랄한 권모술수의 명인인 체자레 보르지아(Cesare Borgia)는 대표적인 르네상스 교황인 알렉산더 6세의 아들이었다.
흥청거리는 수도원에 모여 사는 탐욕스러운 수도사들, 부재(不在) 주교, 첩을 거느린 사제와 같은 너무나 일상화된 타락상과 함께 대두된 문제는 성직자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진 것이었다. 사제는 너무나 무식해서 교인들의 신앙과 삶을 제대로 인도할 수 없었다. 수도사들은 청빈한 생활로 세상을 구원하기는커녕, 건달처럼 사람들을 등쳐먹고 살았다. 주교들은 자기가 관할하는 교구 안에 있는 교인들의 영혼을 보살피는 감독자가 아니라 정치 모 리배요 장사꾼이었다. 예외적으로 신실한 수도사, 성직자들이 있었지만 현실은 가문의 힘으로 12살의 소년이 교황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베네 딕토 9세는 세 번에 걸쳐 교황이 되었는데 그가 가문의 힘으로 첫 번째 교황이 되었을 때 나이는 12-14세였다.
이제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2) 선구자들
종교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었다. 이런 사회 상황의 변혁과 맞물려 12세기 프랑스의 발도, 14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일어난 위 클리프와 그 계승자인 롤라드파, 그리고 15세기 전반에 보헤미아에서 발생한 후스파의 움직임, ‘공동생활 형제단’등은 명백한 종교개혁의 선구자 역 할을 했다.
* 교권의 분열: 교황의 아비뇽유수(1309-1377,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가 아비뇽의 교황 재위기 시기를 유대인의 바벨론 포로에 비교함으로 유 래), 대분열 시대(1378-1415, 이 기간 두 명의 교황이 존재하였으며, 1409년에는 피사 종교회의에서 제3의 교황을 선출했으나 두 교황이 수용하 지 않음으로 결국 3명의 교황이 존재하게 되었고, 이런 혼란은 1417년 소집된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마르티노 5세를 새 교황으로 선출함으로 종결 되었다)
2-1) 피에르 발도(Pierre Waldo, 1140-1217): 프랑스 남부 리옹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발도(왈도)는 사악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다고 알려졌 지만, 그의 삶이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다. 1160년경 성경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몰래 사비를 들여 복음서와 시편을 로망어로 번역해 읽고 는 그것이 교회의 가르침과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에 놀랐다. 특히 복음서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비유를 읽고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아내와 딸이 생 활할 수 있을 정도의 재산만 물려준 후, 나머지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스스로는 탁발로 복음을 전하며 다녔다. 잘 알려진 프란체스코 (1182-1226)는 바로 발도의 삶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1176/7년 경, 빈민을 위한 무료 급식회를 조직하였고 동료 순회 설교자들과 함께 지속적인 성경 번역을 추구함으로 로마와의 갈등(가톨릭 교회 입 장에서는 예로니모가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 역만을 성경으로 사용하게 했지만, 이를 거역한 것, 불가타(Vulgata)sms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고 있 다는 의미이다. 또한 로마 가톨릭의 성직자들인 자신들만이 설교 권리가 있다고 했지만, 이 역시 침해)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에 1182/83년경 교황 루시우스 3세는 Verona 공의회에서 발도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파문하였으며 리옹에서 쫓아냈지만, 발도는 그런 상황에 굴복하지 않았다. 발도는 성 경의 가르침대로 살며, 부패하고 타락한 성직자들의 성사를 부인했다.

지난 18일 밀양시민교회나 철수 목사 내외분과 여자도 대동교회 이기정 목사 내외분이 후지산사마리아교회 임진형 목사 초청으로 4박 5일간 방문을 마치고 22일 하네다공항으로 귀국했다. 일본선교에 대한 어려움과 무목교회에 대한 대책을 협의하고 기도와 전도에 대한 지원을 하기로 논의하고 돌아갔다.


일산순복음경향교회에서 일본 선교를 위한 준비 기도와 일본어 공부에 열심이다.
8월 후지산국제기도회와 11월 원준상선교사초청치유성회에 참석했던 조연화 목사와 지구촌교회 이윤근 목사가 대화 중 선교를 위하여 봉사하기로 협의하여 진행되어오고 있다. 현지선교사로 사역을 했던 이윤근 목사의 강의로 활발하게 되고 있으며, 11월달엔 현지인전도하고 행사에 일어로 봉사를 하기도 했다.
강의: 매주 월요일 문의: 010 4462 8061 조연화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