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힐링 유니버스' 캠프서 불교·개신교·성공회·원불교 수행 체험
명상·마음 치유로 하나된 종교들…"공통 과제로 종교의 위기 넘었으면"

이야기 나누는 4개 종교인
(울진=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지난달 28일 경북 울진에서 열린 '힐링 유니버스' 캠프에서 종교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대성 원불교 교무(왼쪽부터), 망경산사 주지 하원스님, 최재중 맑은물소리교회 목사, 김홍일 성공회 신부. 20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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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첫 시간부터 벽에 부딪혔다.
대한성공회 김홍일 신부는 성경의 마음속으로 짧은 성경 구절이나 짧은 단어를 반복해 떠올리며 하는 기도 수련인 '향심(向心)기도' 방법을 안내했다.
"단어 하나를 택한 후 눈을 감고 하느님을 향해서 나를 열어 놓으세요. 하느님이 아닌 다른 이름이어도 되고, 깊은 곳에 있는 '나'여도 좋습니다.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단어를 떠올리며 부드럽게 마음을 원래 방향으로 향하게 하면 됩니다."
단어 자체에 큰 의미는 없고 구름을 뚫는 화살 같은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일단 '나무'라는 단어를 택했다. 아름드리나무의 이미지와 함께 마음을 활짝 열고 모든 것이든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로 눈을 감았다. 다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속으로 '나무 나무' 외치며 정신줄을 붙들어 봤지만 20분의 시간 동안 점심 메뉴부터 방금 본 이란 뉴스 속보와 관련 증시 영향까지 온 세상 모든 딴생각을 다 한 기분이었다.

김홍일 성공회 신부의 향심 기도 설명
[사단법인 마인드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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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경북 울진 금강송숲 지관서가에선 불교, 개신교, 성공회, 원불교 4개 종교의 명상과 기도법을 접할 수 있는 '힐링 유니버스' 캠프가 열렸다.
종교·인문학을 기반으로 연구·출판 활동 등을 하는 사단법인 마인드랩이 주관한 이 이색적인 1박 2일 캠프는 종교별 수행법을 체험하며 심신을 치유하기 위한 자리였다.
종교가 없고 명상이 낯설지만 둘 모두에 관심이 있던 기자도 체험에 참여했다.
짧은 체험을 통해 에피파니(epiphany·갑작스러운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오길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기독교 관상기도법 향심기도에서 길을 잃을 뻔하자 조바심이 났다. "향심기도는 원래 사제들도 3박 4일 동안 배우는 어려운 기도"라는 김 신부의 말이 다소 위안이 됐다.

박대성 원불교 교무의 명상 지도
[촬영 고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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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원불교 박대성 교무가 안내한 '단전주(丹田住) 명상'은 초보가 따라하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단전주는 마음을 단전에 머물게 한다는 뜻이다.
옆 사람과 마주 앉아 손을 위아래로 마주 향하게 두고 하복부 단전을 지나는 무한대 표시를 마음속으로 그리거나 두 발을 바닥에 단단히 붙이고 서서 부정적인 감정들이 손과 발로 내보내는 모습을 그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것보다 머릿속에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것이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데 도움이 됐다.
맑은물소리교회 최재중 목사는 "성경 속 하나님 말씀 '로고스'(logos)를 되새기며 내 삶에 살아있는 말씀인 '레마'(Rhema)로 다가오게 하는 과정"으로서의 묵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독교의 명상은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힘을 빼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는 과정입니다. 명상을 통해 자아를 비울 수 있다면 새로운 것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최재중 목사의 기도와 묵상 강의
[사단법인 마인드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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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의 미학은 강원도 영월 망경산사 주지 하원스님이 안내한 정토선 염불수행에도 있었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스님의 선창에 따라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를 힘차게 반복하는데, 호흡을 다 뱉어내야 다음 소리를 내뱉을 호흡을 다시 채울 수 있다.
"제가 내는 소리를 잘 듣고, 여러분이 내는 소리에도 집중하시면서 단전에 힘을 줘서 나오는 에너지로 다른 생각들을 차단하세요. 다른 이들을 의식하거나 경쟁하려 하지 마시고 다 내려놓고 내 배의 움직임에 의식을 집중하십시오."
스님의 말대로 처음엔 음의 높낮이와 길이가 다른 '나무아미타불'을 제대로 듣고 따라 하기 위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음정과 리듬이 입에 익은 후엔 여러 사람의 일치된 소리가 만드는 울림에 묘하게 마음이 맑아졌다.

하원스님의 정토선 염불 수행 지도
[촬영 고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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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시간의 '4인 4색' 명상은 기자에게 명상박람회, 종교박람회 같은 기회였다. 어떤 깨달음에 이르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마음은 전보다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졌다. 마음의 탈선을 막을 단어를 설정하거나, 때로는 머릿속 이미지를, 때로는 입밖으로 낸 음성을 가이드 삼으며 나만의 명상법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가까운 울진부터 멀리 서울, 제주에서까지 이곳을 찾은 40명의 참가자들은 4개 종교 명상법 체험이 이어 둘째 날엔 금강송 숲길 걷기 명상과 명상 전문가들이 안내하는 태극권, 싱잉볼, 강점 글쓰기 명상 등도 체험했다.
참가 목적은 다양했다. 마음 치유가 필요해 온 사람도 있었고, 평소 좋아하던 종교인을 만나기 위해 혹은 단순한 호기심에 온 사람도 있었다. 종교 역시 다양했지만 모두 열린 마음으로 여러 종교의 수행법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성공회 신자인 한 참가자는 "오늘 보니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다. 불교가 더 맞는 것 같다"며 농담하기도 했다.

각자 편안한 자세로 싱잉볼 명상 체험하는 참가자들
[촬영 고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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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을 통해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평화를 찾고 치유를 얻었다.
명상이 처음이라는 배영희(60) 씨는 "암을 두 번이나 앓고 매년 검사를 받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지냈는데 오늘 명상을 하면서 그렇게 고민하지 말고 편안하게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생애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종교의 벽을 허문 흔치 않은 자리에 마음을 활짝 열고 참여한 건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원스님은 부처님을 떠올리며 향심기도에 집중했고, 김 신부도, 최 목사도 저마다의 의미를 지닌 '나무아미타불'을 힘줘 외쳤다.
박 교무는 "종교 위기의 시대이자 사회 갈등이 심한 시대에 영성이나 명상의 가치는 더 중요해진 것 같다"며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마음'이라는 키워드를 공통분모로 종교가 함께 나누고 연대하는 데 이번 행사가 마중물이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캠프를 기획한 조성택 마인드랩 대표 겸 고려대 명예교수는 "모든 종교의 공통 과제는 지구와 생명, 모든 사람을 돌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 어느 때보다 종교가 절실한 시기인데도 많은 이들이 종교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교의 공통 과제를 되새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태극권 명상 체험하는 참가자들
[촬영 고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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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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