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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20년] ③퇴직연금이 노후 보장의 한 축이 되려면…
입력 2024.06.04 12:38수정 2024.06.04 12:38조회수 0댓글0

공공기관을 '대형 기금' 형태로 퇴직연금 관리 운영에 참여하도록 제도 개선해야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쥐꼬리 수익률 변화 기대 (CG)

[연합뉴스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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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퇴직연금이 노후소득 보장 장치로 작동하려면 은퇴 시점까지 납입액을 인출하거나 해지하지 않고 퇴직 이후 받아야 진정한 연금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현실은 어떨까? 퇴직연금 수급자 중 연금 형태를 선택한 사람은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적다.

퇴직연금을 연금 형태로 수령한 비율은 2020년 3.3%, 2021년 4.3%, 2022년 7.1% 등으로 꾸준히 늘어 지난해 10.4%로 처음으로 10%를 웃돌았다.

하지만 아직도 90% 가깝게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 자체가 작아 일시금으로 한꺼번에 받아도 소득세가 얼마 되지 않으니, 천천히 시간을 두고 연금으로 수령할 동기도 약하고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일시금 평균 수령액은 1천645만원으로, 연금 형태 수령 평균액 1억3천976만원보다 훨씬 적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연금학회가 국민연금·퇴직연금 동시 가입자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를 보면, 절반(49.9%)은 '적립금이 적어 유지를 통한 노후소득 보장의 실효성이 없는' 점을 퇴직연금 적립금을 유지하기 어려운 최대 장애요인으로 꼽았다.

겨우 2천만원도 안 되는 적립금을 연금으로 받은들 매달 받는 돈이 얼마 안 되는 탓이다.

그래서 현재 퇴직연금은 그저 50대 후반 목돈이 필요할 때 다소 숨통을 터주는 정도, 혹은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다음 직장을 구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생활자금 구실에 그친다.

2023 퇴직연금포럼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3 퇴직연금포럼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3.11.8 pdj663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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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연금 장기 가입 불편하게 잘못 설계한 탓"

이렇게 절대다수의 퇴직연금 적립 금액이 적은 것은 불안정한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기간 내도록 끊임없이 계속 납입금을 붓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퇴직연금이 시행된 지 20년이 되지만, 일하는 사람 중 퇴직연금 가입 대상자는 절반에 못 미치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퇴직금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현행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사용자에게 퇴직연금과 기존 퇴직금 제도 중 하나 이상의 제도를 설정하도록 했을 뿐 의무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노사 합의 등에 따라 대부분 퇴직연금을 도입했으나, 중소 사업장들의 도입 비율은 미미하다. 우리나라 기업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영세기업들은 이 제도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기준 도입 대상 사업장 중 도입률은 27.1%다. 퇴직금의 퇴직연금 전환은 진행 중이다.

설혹 퇴직연금을 적용받는데도 대다수의 적립 금액이 2천만원에도 못 미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중도 인출이다. 현재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DC형(확정기여형)에만 일부 예외적인 사유가 있으면 중도 인출을 허용한다. 그 예외적인 사유에는 전세자금이나 주택 구입, 부모 요양비 마련 등이 포함된다. 그렇다 보니, 청약받아 아파트 사는 게 재테크의 기본인 나라에서 이런 특정 사정으로 목돈이 필요하면 중간에 적립금을 인출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IRP(개인형 퇴직연금) 해지다. 직장을 옮기거나 그만두면 기존 퇴직연금은 IRP 계좌로 이전된다. 이를 그대로 유지해 DC형으로 운용하다가 나중에 연금 형태로 받을 수 있지만, 대개는 해지해서 전액 일시금으로 받는 쪽을 택한다. 그러면 이직한 직장에서 다시 처음부터 퇴직연금을 부으니 적립금이 적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이직한다고 해서 그동안 낸 보험료 원리금을 찾아가지 않는다. 회사만 옮길 뿐 보험료는 계속 낸다. 게다가 자기가 낸 보험료를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직장 옮길 때마다 그동안 낸 퇴직연금 보험료 원리금을 돌려받고서는 이를 생활비로 쓸지 노후 자금으로 연금공단에 다시 맡길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연금 수급 개시 연령에 도달하면 그간 낸 보험료와 가입 기간에 따라 정해진 급여를 받으면 된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의 모습. 2023.10.27 dwi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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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료 성실 납부자 노후소득 보장 못 하면, 정치권과 정부의 직무 유기"

이와 달리 퇴직연금은 이직·퇴직 후 기존 적립금이 IRP 계좌로 이전될 때 가입한 금융상품이 아니라, 이 상품을 매도한 현금으로 옮겨진다. 그래서 일시금으로 찾지 않더라도 다시 DC형 금융상품에 가입해서 적립금을 운용해야 한다.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이나 둘 다 국민의 노후 보장 대책이고 둘 다 강제로 보험료를 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은 이렇게 다를까. 회사를 옮겨도 국민연금은 계속 유지되는데 왜 퇴직연금은 단절 후 다시 시작해야 할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도 퇴직연금이 국민연금과 더불어 노후 소득 보장의 한 축을 맡아야 한다면서, 이렇게 퇴직연금의 장기 가입을 불편하게 설계한 까닭이 뭔지 모르겠다고 꼬집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퇴직연금 개선책으로 국민연금처럼 공공기관이 기금 형태로 직접 참여하거나, 가입자와 퇴직연금 사업자(민간 금융기관)의 중개기관 형태로 관리 운영에 참여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국민연금 같은 공공기관을 대형 퇴직연금 기금조직의 하나로 참여하도록 해서 가입자는 이런 공공기금에 퇴직연금을 맡기고 직장을 몇 번 옮기든, 애초 가입한 공공기금에서 계속 적립금을 집합적으로 관리 운용할 수 있게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는 투자정보가 부족한 가입자가 본인이 직접 투자 결정을 원치 않을 때 가입자를 대신해서 공공기관 자격으로 대신 투자업무를 맡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퇴직연금을 노후 보장의 기둥으로 세우려면 애초 가입자(회사 또는 근로자 개인)와 금융기관이 직접 계약하는 형태가 아니라, 기금형으로 설계해서 공단이든 민간이든 대형 중개 조직이 집합적으로 관리 운용하도록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수십 년간 성실하게 일하면서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보험료를 꾸준히 납부하고 은퇴한 국민이라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으로도 적정한 노후 소득을 보장받아야 한다"면서 "이는 복지국가의 당연한 책무로, 그렇지 않다면 그건 정치권과 정부의 직무 유기"라고 직격했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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