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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호, 2025년 2월호
한터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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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3 01:01조회수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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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것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가고 너는 너의 길을 간다. 그래서 인생은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내가 너의 길을 가도 안 되고 네가 나의 길을 가도 안 된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야 하는 힘겨운 여행이기도 하다.     
  70년 혹은 80년 살다 떠나야 하는 고독한 나그네에 불과하다. 70세에 저세상에서 날이 오라고 부르거든 할 일이 많아서 못 간다고 전해라 100세 인생 노래를 들으면 기가 찬다. 삶에 대한 애착은 누군들 없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살고 싶은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한국은 축 복받은 나라이다. 세계에서도 크고 부흥된 교회가 수도 없이 많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금식 기도원 하면 당연히 조용기 목사, 최자실 목사이다. 80년대 초에는 온 나라가 가난했고 의식주 해결이 되지 않던 시대에 불광동 산비탈에 천막을 치고 시작했던 개척교회. 병들고 가난하고 오갈 곳 없는 사람들로 시작하여 미국 선교사의 지원으로 겨우겨 우 유지했던 교회. 조용기 목사는 폐병 3기로 각혈하면서도 북 치고 장구 치며 서대문, 광화문으로 노방전도에 목숨을 걸었다. 먹지 못해서 영양실조에 목숨만 유지하기도 힘들었으니, 약으로는 병이 치료될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성도들은 몰려왔고 너도 나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수도 없이 많은 성도가 병을 고쳤다. 서대문에서 여의도로 나아갈 때는 엄청난 역사가 있었고 출애굽 이스라엘 민 족과 같이 세상이 감당할 수가 없었다. 힘들고 외롭고 고독한 길이었지만 조용기 목사에게는 그 길이 사명의 길이요 자기가 살 수 있는 길이 었다. 피를 토하면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죽을 몸도 살리시는 걸 믿고 또 믿었다. 꼬챙이처럼 메마른 몸에서 어떻게 그런 강력하고 능력 있는 메시지가 나올 수 있었는지 설교가 아니라 기관총을 쏘는 것 같았다. 언제나 어디서나 생각과 말이 긍정적이고 믿음의 소리 창조의 소리를 내고 그의 입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의 힘을 지닌 에너지가 발산되었다. 나는 인천에서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매주 집사람과 오후 예배는 여의도로 가서 예배드렸다. 메시지 속에서 나오는 믿음과 지혜, 지식, 은사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한 시간 예배 속에 정말 은혜의 도가 니에 헤매다가 나오는 듯 충만한 은혜를 받았기에 매주 기다려지고 먼 길을 피곤한 줄 모르고 다녔다. 조용기 목사 그는 정말 믿음의 사람이 요. 능력의 사람이었다.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가시밭길 고난의 길을 선택하며 70만의 성 도와 세계 최대 성전을 이루었다. 위대한 종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훌륭하시고 능력의 사역자가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요 자랑이 아닐 수 없 었다. 그가 오래전에 설교 중에 얘기한 내용이긴 하지만 다시 시작하라면 절대로 못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예수께는 넓은 길 좁은 길이 있다.     
  넓은 길은 많은 사람들이 가고 평탄하지만, 그 길의 끝은 사망의 길이요.     
  좁은 길은 협소하고 가는 사람이 적지만 마지막에는 생명이 있다고 했다.     
  세상에 수많은 길이 나의 앞에 있지만 나는 나는 예수를 따라가기로 했어. 사랑하는 친구여 헛된 길을 버리고 생명과 축복의 길로 돌아와 돌아와요. 어서.     
  복음성가의 가사이지만 우리는 각자의 운명이 있겠지만 각자의 길이 있고 또 선택도 있다. 며칠 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성경과 목사 앞에 선서하고 합창으로 영광 영광 할렐루야 찬양이 울려 퍼질 때 눈물이 나면서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민족. 정말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윤석열 대통령을 나는 영웅이요 의인이라고 본다. 가만히 있으면 그냥 편히 지나갈 길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추운 겨울에 죄인 취급받으 며 고생하시는데 이분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으랴.     
  성경을 보내 달라는 기사를 보고 눈물이 났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잊지 않고 버리지 않으셨구나. 부디 대통령의 앞길에 영광 있게 하시고 우리나라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나아가는 새로운 시온의 대로가 열렸으면 좋겠다.

 

 


들어가는 글 

  올해(2016년) 들어 벌써 3번째 구루메를 거쳐 시마바라로 들어가는 길이다. 섬으로 들어가는 바다 위로 끝 모를 긴 방조대가 마치 그림자처럼 뒤로 물러간다. 유월의 이 길은 정말 놀라웠다. 비단결을 깔아놓은 듯한 여린 억새가 힘을 가누지 못해 바람의 결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바람결을 따라 앞으로, 뒤로 돌아눕기도 하는 그 모습, 햇살을 받아 연초록에서 갈색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색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그 위로 ‘돈비’라고 불리는 작은 독수리 과의 새가 넓은 날개를 펼치며 자동차 위로 솟아올라 하늘로 사라진다.

 

  그 광경을 기대하고 기웃거리는 나의 시야에 들어 온 진홍빛 색상의 꽃 무리, 마치 군인들이 사열 종대 하듯 끝없이 피어 있었다. 작은 봉을 꽂아 놓은 듯한 줄기의 솟대 위에 잎사귀 하나 달려 있지 않은 진홍빛 한 송이 꽃이 피어서 방조대 하단에 일렬로 피어 있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한 줄기 위로 꽃 한 송이씩 달려있다 그 색이 얼마나 붉은지 여린 꽃대 모가지 위에 놓인 얼굴처럼 작은 여덟 송이 정도의 꽃이 서로 연결되어 한 송이의 꽃 크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작은 꽃송이마다 3줄기의 수술이 밖으로 작은 부채처럼 펼쳐지는 모양이 마치 꽃띠가 피를 뚝뚝 흘리며 서 있는 것만 같아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웠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 꽃 이름이 ‘히간바나’ 또는 ‘피안화’라고 부르며,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의미의 ‘상사화’ 무리를 지어서 피므로 순수한 우리말로 ‘꽃무릇’이라 불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이 원산지인 이 꽃은 무덤가, 돌가에 피는 특징이 있어서 치명적인 죽음을 상징하는 ‘죽음의 꽃’으로 저 건너편 언덕, 깨달음의 세계, 피안의 세계를 동경하는 의미로 불린다고 하니 꽃 하나를 통하여서도 이렇게 장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조의 세계가 경이롭기만 하다.    

  이번의 여정은 순교자들이 걸어갔던 삼백 년 전의 길을 찾아보는 것인데 마치 순교자들의 넋이 대지로부터 꽃으로 피어나 부르짖는 것만 같았다.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성령의 감동에 이끌리어 벌써 세 번째 이 길로 들어서고 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해할 수 없는 여정을 시작한 것이 벌써 9개월, 지나간 시간이 너무나 또렷하게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늘 긴장하고 되새김질하며 돌아봤던 시간이다. 이제야 조금씩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작년 12월 남편의 대학 건축과 학생들과 함께 방문했던 구마모토현의 산속 고분박물관.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견학하기 위해 아침 8시 30분경에 도착한 고분 박물관, 학생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가고 혼자 남은 난 아침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고분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양이 이제 아침 안개 사이로 비추기 시작한 터인지 무덤 위로 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해가 비추자, 고분 위의 작은 풀들 위에 입혀진 서리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빛이 모서리 하나하나를 비출 때마다. 각진 다이아몬드처럼 풀을 감싸고 있는 작은 얼음조각이 일어서는 것이다. 너무나 그 광경이 신비롭기까지 해서 고분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내 안에서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겠니?”    

  시간이 지나서 2016년 1월 4일부터 시작한 21일간 다니엘 특별 새벽기도 시간에 다시 음성이 들렸다.    

  “일 년간 안식년에 들어가도록 하라, 내가 너를 일본의 한 섬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곳엔 페리호가 오가는 곳이다. 미라클 투어를 준비하라”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한 발걸음, 힘든 시간이었지만 벌써 3번째 시마바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곁에는 일본에 갈 때마다.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어 차량으로 봉사해 준 이나에 상, 그리고 ‘글로리아 하우스 교회’의 최은미 전도사님이 동행을 해 주셨다.

  그동안 함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단순한 순종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우리의 가슴엔 주님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신뢰와 진한 감동이 켜켜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제 시마바라를 정말 사랑하게 된 것이다. 주님께서 얼마나 이 섬을 사랑하시는지,    
  그 마음을 순종한 발걸음마다 가득 기름 부어 주셨다.    
  이제 그 9개월간의 인도하심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서 가지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다    
  얼마나 잘 전할 수 있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자 한자 적어본다.


   
 

 

이일화 목사

 

  주님의 십자가의 길 사모합니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의 길 사모합니다. 주님이 가신 길은 고난의 길, 슬픔의 길

  주님이 걸으셨던 길은 골고다의 언덕길

  주님이 가신 길은 십자가의 죽음의 길

  주님! 제가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제가 짊어지고 갈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인생의 전부를 주님께 드려 주님을 위한 제 인생을 살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는 온유와 겸손 제가 주님과 함께 지고 걸어가야 할 십자가는

  제가 주님과 함께 걸어가야 할 저의 인생길이오니 주님! 주님이시여! 저의 가는 길,

  늘 함께하소서,

  제가 주님의 십자가를 사모하오니

  제 영혼이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 주님만을 섬기며,

  주님만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의 십자가를 저도 지게 하옵소서.

  제 인생이, 오직 주님! 한 분뿐임을 깨달아 알게 하소서.

 

2024년 섣달그믐날 아침 -후지시 쿠니쿠보에서          

 

이윤근 목사 / 지구촌선교교회

 

  2025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가 가장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은 “기쁨”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빌립보서 4장 4~7절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통해, 참된 기쁨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의 상황은 절망적이었지만, 놀랍게도 빌립보서에서는 성경 전체에서 “기쁨”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감옥이라는 현실에서도 그는 어떻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세상의 조건적이고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초월적인 기쁨 덕분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 안에서 얻은 변치 않는 기쁨을 경험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의 삶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며, 그분은 우리의 상황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선하게 이끄십니다. 이 믿음이 바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기쁨의 근원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다 보면 마음은 더 지치고, 때로는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지나가고 맙니다. 바울은 이를 간파하며 이렇게 권면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쓰는 대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우리는 평강과 기쁨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라    
  빌립보서 4장 5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여기서 말하는 관용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 상대를 포용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라는 말처럼, 관용은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힘들거나 어려운 관계에 있는 사람, 심지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도 관용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이 관용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낭비하고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아버지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형의 마음에는 관용과 사랑이 없었고, 아버지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아버지는 동생의 잘못을 정죄하지 않고 포용함으로써 사랑과 기쁨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형처럼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회복과 변화를 기뻐하기보다 판단하거나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사람은 타인을 용서하고 품을 힘을 가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우리는 사랑할 만한 사람, 나를 편하게 하는 사람만 사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나와 관계가 어색하거나, 오히려 원수 같은 사람에게까지 미쳐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관용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용은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미워하고 멀리했던 사람들에게조차,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처럼 실수와 죄로 가득한 사람들에게도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기 위해서는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관용은 여유에서 나오며,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넘칠 때 다른 사람을 품을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평강을 누릴 때, 우리의 관용은 자연스럽게 삶으로 드러납니다.    
  기쁨은 마음의 여유를 낳고, 그 여유가 관용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염려를 기도로 내려놓으라    
  빌립보서 4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종종 염려와 근심 때문입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기쁨과 평강을 빼앗아 갑니다.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고 약속하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짐을 스스로 지려고 합니다.    

  예수님과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염려는 주님께 맡기면 끝입니다. 우리가 염려와 불안을 붙들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염려를 하나님께 내려놓는 통로입니다. 기도로 모든 걱정을 하나님께 맡길 때, 염려와 불안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저는 눈 오는 주일 아침에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것을 보고 운전하기 전에 염려가 몰려왔습니다.    
  “도로가 미끄럽지 않을까?”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제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운전대를 지켜주세요. 제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도를 드린 후, 제 마음은 금세 평안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길을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이 염려를 몰아내고 평강을 채워 주셨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염려를 하나님께 아뢰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키신다    
  빌립보서 4장 7절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이 평강은 단순히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안도감이 아닙니다. 문제의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에서 오는 초월적인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줍니다. 우리가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고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슬픈 일이나 속상한 일, 유혹과 욕심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고, 잠깐 화가 나거나 속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계속 묵상하거나 붙들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속 사울 왕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이 평강을 잃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사울은 다윗의 승리를 기뻐하기 보다, 백성들이 다윗을 더 칭송한다는 사실에 시기심을 느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이 말을 듣고 사울의 마음은 흔들렸고, 그는 점점 다윗을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심은 사탄이 사울의 마음에 틈타는 기회가 되었고, 결국 그는 다윗을 죽이려는 어리석은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사울의 비극은 단순한 질투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길 기회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평강을 잃고, 염려와 근심, 시기와 질투에 휩싸이는 순간, 사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염려와 시기심이 우리 마음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우리는 즉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붙들고 계속 묵상하면 문제가 됩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 감정을 즉시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와 감사로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로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평강으로 가득 찹니다.    

  스바냐 3장 17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이 나를 보며 기뻐하신다면, 나는 그 기쁨을 잃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과 구원 안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쁨의 훈련은 우리의 신앙 성숙에 필수적입니다. 누구나 행복한 일이 있을 때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은 슬픔과 고난 속에서도, 다른 사람의 축복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기쁜 소식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하는 일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축복과 성공 앞에서 시기와 질투가 생기는 것은 우리 인간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히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은 다릅니다. 비바람과 태풍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얼굴이 아침 해가 돋는 것처럼 찬란하게 정말 햇빛과 같이 빛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평강으로 유지하십시오. 기쁨을 유지하십시오.    
  여러분의 얼굴이 아침 해처럼 찬란하게 빛나길 축복합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기쁨과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과 표정을 가득 채워, 그 빛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얼굴에 주님의 기쁨이 드러나야 할 때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평강을 누리십시오. 이 기쁨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 안에 거하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찬송이 흘러나오고, 집에서는 기쁨의 춤을 출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은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이 말을 기록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기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께로부터 오는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진 기쁨은 환경에 의존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기쁨을 붙드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한 해를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이 기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이응주 은퇴목사    
 


 미국에서 여권상의 성별을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한 절차가 폐기되어 감사합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강조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기조를 폐기시키고 아동 성범죄를 종식하며, 트랜스젠더를 군에서 제대시키고 초    
중고등학교에서 퇴출하게 하소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가난한 나라들을 궁지로 밀어 넣지 않도록 국가 간에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소서.    
  전 세계적으로 투자가 증가하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가 성경적인 가치관에 반하지 않도록 교회가 검증하고 선도하는 역량을 주소서    

  휴전 협정 후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가자 거리를 장악한 하마스 무장세력이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인질을 안전하게 송환하고 휴전협정을    
준수하도록 인도하소서.    
  가자지구 휴전 후 발생한 서안지구 작전으로 사망한 유가족을 위로해 주시고 속히 안정을 되찾게 하소서.    
  시리아 내전으로 사망한 50여만 명 유가족들이 재건하도록 힘쓰는 교회와 구호단체들의 활동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인도하시고, EU 차원의 원조가 신속하게 집행되게 하소서.    
  튀르키예 스키장 호텔 화재로 사망한 76명 유가족에게 하나님의 평강과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파나마 운하로 인하여 파나마 미국 러시아 중국 간에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지 않고 대화로 해결되게 하소서.    
  동북아의 군사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북한 러시아 중국에 맞서 한국 미국 일본이 협력하여 평화적이면서도 강력한 대처를 하게 하소서.    
  작년 대규모 홍수로 100만 명 이상의 집이 물에 잠기고 반정부 시위로 수백 명이 사망한 방글라데시가 위기를 극복하고 재건하는데 교회와 선교단체의 활동을 방글라데시 정부가 협조하게 하소서.    
  반군 간 유혈사태로 80여 명이 사망하여 비상사태가 선포된 콜롬비아에 하나님 나라의 평강을 내려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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