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ET 할아버지를 아십니까? 언뜻 스티븐 스필버그 의 영화를 떠올리시겠지만 실은 그것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ET 할아버지란 이미 타버린 할아버지의 준말입니다. 바로 채규철 선생이 불의 의 사고를 당해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고 얻은 별명이지요. 하지만 죽음의 미몽을 떨 치고 일어선 채규철 선생은 그 엄혹한 절망을 결코 놓을 수 없는 희망으로 바꾸어 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타버린 할아버지란 뜻에서 ET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은 그 몸을 이끌고 전국 곳곳을 누비며 진정한 생명과 삶을 주제로 한 강연을 시 작했습니다. 또,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생명력 있게 자라도록 두밀리 자연학교를 만 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절망을 희망으로. 패배를 승리로, 최악의 운명을 최대의 영 광으로 뒤바뀐 삶의 놀라운 연금술사였습니다.
본래 함경도 함흥에서 농촌운동을 하던 목사 아버지와 신여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채규철 선생은 6·25 때 단신 월남해 길거리나 천막 교회 한 귀퉁이에서 새 우잠을 자가며 어렵게 공부해 서울 시립대학교의 전신인 서울시립농업대 수의학과 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인 1961년부터 채규철 선생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 팔괘리에 있는 풀무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농촌 계몽운동을 펼쳤습니다. 그 렇게 5년 동안 농촌 계몽운동을 하다가 덴마크 외무부 산하에 있는 개발도상국 기 술협력처의 초청을 받아 국비 장학생으로 1년 동안 덴마크 하슬레브 대학에서 공 부하게 되었습니다.
채규철 선생은 덴마크에서 그룬트비와 달가스가 펼친 국민운동과 협동조합 운동 에 관해 공부한 뒤 1968년 우리나라로 돌아와 당시 부산 복음병원장이던 장기려 박 사와 함께 일종의 민간의료보험인 청십자 의료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해 본격적인 복 지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1968년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하늘은 얄 궂게도 채규철 선생의 인생에 덫을 쳤습니다. 채규철 선생은 울고 싶어도 눈물샘마 저 타버려 울 수조차 없었습니다. 채규철 선생은 그 길고 긴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 오자마자 청 십자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1970년에는 간질환자 진료사업모임인 장 미회를 만들었고 또 1975년에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6년에는 경기도 가평에 자기 돈을 몽땅 털어 대안학교 두밀리 자연학교 를 세웠습니다. 농촌계몽 운동에서 시작한 채 씨의 교육사업은 어린이가 바로 세상 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알 려주는 학교를 만들고자 했던 겁니다. 콘크리트와 입시경쟁 속에서 숨 막혀가는 아 이들에게 메뚜기와 함께 뛰어놀고 별똥별을 세며 자라도록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채규철 선생은 지난 2006년 심근경색으로 이 세상과 하직할 때까지 두밀리 자연 학교의 교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채규철 선생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서 생의 마지막 열정을 쏟으며 이끈 조직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 2001년에 결성한 철들 지 않은 사람들 모임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들어야 한 다며 먼저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고 역설했는데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가리 켜 역설적으로 철들지 않은 사람들이라 불렀습니다. 철들었다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럽히고 어지럽게 만드니 오히려 철들지 않은 사람들이 나서서 바로 잡자는 역설 적인 취지였던 셈입니다. 그 덕분에 채규철 선생에게는 ET 할아버지라는 별명 말고 도 왕 철부지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여졌던 겁니다. 그 왕 철부지 채규철 선생은 생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사는데 F가 두 개 필요해.
하나는 Forget(잊어버려라) 이고, 다른 하나는 Forgive(용서해라)야! 사고 난 뒤 그 고통을 잊지 않았으면 난 지금처럼 못 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 채우 지. 또 이미 지나간 일에 누구 잘못 탓할 것이 어디 있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 는 거야. 2006년 12월 13일 왕 철부지, ET 할아버지라는 애칭으로 불린 채규철 선 생은 홀연히 세상을 떴습니다. 거기가 어디야, 아름답구먼. 나 이제 급히 감세. 이렇 게 말하고 말입니다. 또 사랑이 저만치 가네. 하는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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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고발 시대인 것 같습니다. 남이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남편을 고발하고, 형제가 형제를 고발하고,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고발하는 무거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발의 원인은 많은 경우가 돈입니다. 돈이 주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돈이 사람 을 몰아내고 주인의 자리에 앉아 있는 무서운 시대가 왔습니다. 돈 앞에서는 가족 도 형제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부양료 청구를 하는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 니다. 자식들을 키워주고 공부시켜 주고, 재산까지 주었는데 부모가 늙어 아플 때 자 식이 부모를 외면했기 때문에 부모가 너무나 억울해서 자식을 고발하게 된 사건들 입니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다 해 주시던 부모님이, 오죽했 으면 그 자식을 법정에 고발을 해야 하였을까요?
아들을 상대로 소송을 하여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례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에게 물려준 집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 아들을 고소했습니다. 아들에게 ‘부모를 잘 모시겠다’라는 조건으로 집을 물려줬는데, 아들은 같은 주택 1층에 살면서도 2층에 사는 부모를 찾아오는 일이 드물었고, 어머니의 병환이 악화하자 자신이 모실 생각 은 않고, 요양 시설에 입원시켜야 한다고만 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는 아들 에게 집을 돌려달라고 고소한 것입니다.
또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어떤 아버지는 20대 아들에게 그동안 키워준 값으로 1억4000만 원을 청구하는 소 송을 냈습니다. 20년간 아들을 키워주었건만,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약값 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남매는 아버지께 1억을 받았지만, 집을 상속해 주지 않는다고 어버이날 아버 지를 죽이는 끔찍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집이 뭐길래, 돈이 뭐길래....
성경은 말세의 징조를 너무나 잘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딤후 3:1,2)
마지막 때에 끔찍하고 무서운 때가 오는데 그것이 다른 특별한 이유에서 오는 것 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돈사랑 때문에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 인지는 부모와 자식 간의 소송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사람들은 자 기 사랑과 돈 사랑의 포로가 되어 진짜 중요한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 사랑과 부모 사랑, 사람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말세에는 부모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형제보다 돈을 더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 래서 돈 때문에 부모와 형제를 버립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어리석 게 만듭니다. 돈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돈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하는 것입니다. 돈이 형제를 미워하라고 하면 가차 없이 미워하고, 돈이 부모를 죽이라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돈 사랑에 빠지면 인생은 정말 끔찍한 결말을 초래하고 맙니다. 돈사랑은 마지막 때 최 악의 유혹입니다. 이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 으면 죽습니다. 성경이 알려준 사랑의 대상을 사수해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부모를 사랑해야 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진짜 고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탐욕의 거짓을 고발해야 합니다. 돈 사랑을 자신의 양심에 고발해야 합니다. 돈으로 부모 형제를 빼앗아 가는 악한 것을 고발해야 합니다. 유다처럼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먹는 바보짓을 하지 말아야 합 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사랑해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내가 진 정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9)
일본선교의 여명은 참으로 신비롭고 놀라운 사건을 통하여 시작되었다. 일본 땅에 정식으로 선교사가 상륙하기 전에 선교의 문을 열기 위한 여건들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하신다.
1543년 여름에 포르투갈 사람을 태운 중국 상선이 항해하던 도중에 태풍을 만나 배가 표류되어 가다가 일본의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포착되었다. 다네가시마(種子島)의 주민들은 처음으로 대하는 서양인들을 따뜻하게 환영하였고 매우 친절하게 보살펴 주었기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철포(화약총)를 성주이었던 도키다카(時曉)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철포는 종래에 사용하던 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맹렬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선물한 철포(화약총)가 일본의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는데 크게 공헌한 무기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일본 천하통일의 야망을 꿈꾸면서 서로 투쟁하던 시기에 이와 같은 무기는 그들의 전술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철포가 전해진 40년 후에 다네가시마(種子島)에서 만든 이 철포로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는 일본천하통일의 야망을 성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철포를 더욱 정밀하게 개발하여 임진왜란 때에는 조선을 침략하였고 이 무기로 말미암아 나라 전체가 큰 변을 당하기도 했다.
1544년에 포르투갈의 상선이 구슈(九州) 동해안을 따라 붕고(豊後) 해안에 정박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붕고(豊後)의 성주의 아들 오도모소린(大友宗麟)이 위험에 처한 포르투갈 사람들을 도와 구제하였고 그 사건 이후로 그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오도모소린(大友宗麟)은 1546년에 정박하고 있던 포르투갈 상선에 올라가 견학하는 가운데 그 배의 선장이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아 기도의 의미를 묻게 되었다. 그 때에 경건한 크리스천이었던 선장은 오도모소린(大友宗麟)에게 유일신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전하므로 일본기독교 역사에 최초의 전도로 전해지고 있다.
1546년에 사쯔마의 야마구치(山口)항에 몇 척의 포르투갈 상선이 입항하게 되었다. 그 당시 가고시마(鹿児島)에 부자 집 가문의 무사(사무라이)이었던 야지로(弥治郎)란 청년이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망명을 요청하게 되었다.
포르투갈 사람가운데 매우 경건하고 신앙심이 깊은 조지 알바레쯔(George A lvarez)는 야지로(弥治郎)를 인도, 고아(Goa)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던 영적인 아버지와 같은 프란시스코 쟈비엘(Francisco, de, Xavier1506-1552)에게 소개하기로 작정하고 함께 출항하게 되었다. 프란시스코 쟈비엘은 그 당시에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정화하기 위하여 “예수회”라는 선교단체를 창립하여 선교에 전념하여 무역도시로 번창한 인도의 고아(Goa)에서 선교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을 때였다.
말레시아 반도의 말라카(Malacca)에 도착한 야지로(弥治郎)는 쟈비엘을 만나지 못한 채 포르투갈 사람과 여행을 다니면서 새로운 문명 세계에 대한 견문을 넓히게 되었다. 1547년 12월 초에 야지로(弥治郎)는 말라카(Malacca)에서 극적으로 프란시스코 쟈비엘를 만나게 되었고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함과 동시에 가톨릭교회의 신자가 될 것을 고백하였다.
프란시스코 쟈비엘은 야지로(弥治郎)의 총명함과 호기심이 강한 성격을 알고 미지의 나라 일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새로운 선교지로서 포교할 가치가 있는 나라로 확신하게 되었다. 프란시스코 쟈비엘은 야지로(弥治郎)를 인도의 고아(Goa)로 데리고 가서 그곳에 성 바울 학원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우도록 하였다.
야지로(弥治郎)는 1548년 5월 20일 성령강림절에 고아(Goa)의 사제를 통하여 세례를 받고 ‘파울로 데 산다후에’라는 세례명을 받게 되었다. 프란시스코 쟈비엘과 야지로(弥治郎)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하여 일본선교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게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하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들려온다.
혹 나우루공화국이란 나라는 들어 보셨나요?
호주 부근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울릉도보다 작은 나라, 인구는 고작 1만 명이 조금 넘고요.
일반 국민들이 자가용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가 쇼핑을 하는 나라.
도로 위에는 람보르기니와 포르쉐 등 최고급 승용차가 즐비한 나라.
전 국민에게 매년 1억 원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나라.
주거, 교육, 의료비가 모두 공짜인 나라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나라.
이 작은 섬나라는 지구상 가장 귀하다는 희귀자원 인광석이 지천으로 깔린 섬이라서그 자원만으로도 벌써 1980년대에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선 부자나라였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섬에 지천으로 널린 새똥 때문이었답니다.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였던 이 섬에 수만 년 동안 쌓인 새똥은 산호충과 섞이면서 인광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우루공화국은 이 희귀광석 인광석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을 국민에게 공평 분배 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해 왔습니다. 덕분에 국민들은 아무 일도 안 하고 그저 소비생활만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인광석을 채굴하는 일까지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들여와 일하게 하고, 모든 가정에는 가정부와 집사를 고용해 편하게 생활했다지요. 심지어 공무원까지도 전부 외국인들로 고용했다니 말 다 했지요. 정부나 국민 할 것 없이 있는 거라 돈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30년이 지나자 나우루공화국 사람들은 집 안 청소하는 방법은 물론, 요리법까지 잊어버렸지요.
섬나라임에도 어선이 사라졌고, 전통문화가 없어졌으며, 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종돼 버린 겁니다. 그들은 그저 먹고 놀고 여행하는 습관만 남게 되었지요. 그러자 국민들 80%가 비만에 시달렸고 비만율, 당뇨병 사망률 1위 국가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부터 인광석 채굴량까지 갈수록 줄어들면서 나우루공화국의 국고 또한 고갈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가난해진 국민들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청소하는 법, 요리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고, 고기잡이를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놀고먹던 국민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일하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그들에게는 나태함과 무기력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나우루공화국은 존재 자체를 위협받기 시작하는데, 무리하게 땅을 파헤쳐 인광석을 채굴해 수출하다 보니 섬의 고도가 낮아진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만약 수면이 높아질 경우 섬이 통째로 가라앉을 위기를 맞게 된 것이지요.
어떤가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요! 이는 바다 건너 먼 나라만의 일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풍족함은 언젠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나우루 사람들처럼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고생은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고 체험적으로 터득하는 것이지요. 현재의
내가 누리는 것들의 상당 부분은 부모님 덕이고 내 자식의 풍요는 내가 베푼 것이고 손자가 누릴 것은 자식의 능력과 노력의 덕이라는 것을 가르쳐야지요.
명심보감 계선편에 이런 말이 있지요.
자식을 위한다고 많은 책을 물려주어도 자식이 그 책들을 다 읽지 못하고, 많은 돈을 물려주어도 지켜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물려줄 것은 책을 읽는 습관이고 검소한 습관이고 노력하는 습관이다.
퍼주는 사람이나 그걸 받으며 뒤가 어떻게 될지를 모르는 사람이나
우리를 돌아봐야겠네요.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 한다(2)”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볼 때 감사할 수 있는 교회, 칭찬받을 수 있는 교회 가 된다면 그 교회는 바로 ‘교회다운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비유해 보면 주의 종에게 칭찬받는 성도는 아름다운 성도요, 성도다운 성도입니다.
▶ 그렇다면 교회다운 교회는 어떠한 교회입니까?
1. 신(믿음)·망(소망)·애(사랑)의 교회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교회의 본질적인 구성요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 한 믿음이 있는 곳에 언제나 사랑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①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란 ‘비상한 능력’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은 한결같이 역사 와 기적을 나타냈습니다. 믿음은 승리이며, 능력이며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래서 믿음 이 있는 곳에 역사가 있고 기적이 있습니다.
막 9: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②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사랑의 수고’란 말은 ‘자른다’, ‘몸을 채찍으로 때린다’, ‘애쓴다’라는 의미가 있습 니다.
이처럼 사랑의 특성은 수고와 희생입니다. 수고와 희생 없이 사랑한다면 참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물론 감정도 있어야 하겠지만 참사랑은 액션, 즉 행동이 있어야 합 니다. 수고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 같은 사랑의 수고 근거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생 명까지 준 사랑입니다.
③ 소망의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소망을 갖는 것이 교회다운 교회의 본질입니다. 이 소망은 현실에 ‘합력하여 선을 이 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 신앙 안에 복은 참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바로 인내하는 것인데 인내와 희망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희망이 있을 때 어려움을 참아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가 어렸을 때 하나님께서 주 신 비전을 끌어안고, 자기가 반드시 성공한다고 하는 희망을 가지고 노예의 고통스러 운 생활도, 감옥의 아픈 생활도 참았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승리하게 됩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 그 자체 속에 소망이 있습니다.
2.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7).
▶ 어떤 면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까?
① 예배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② 경건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③ 기도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④ 전도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⑤ 가정생활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본이 되는 삶,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①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야 합니다.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는 그 사람이 모범적인 삶을 살며 신앙이 성숙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인격이 성장하고 발전하며 본이 되는 교회와 교인이 되려면 말씀을 듣 는 시간이 즐거워야 합니다. 기쁨과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본이 되게 되는 것 입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신앙의 확신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3. 전도가 체질화된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인근 지역뿐 아니라 마게도냐, 아가야 등 다른 많은 지역에 복 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체질화될 때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복음 증거에 거부감이 생기고 힘들고 부담이 된다면 아직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복음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가장 기쁘게 여기시는 것이 전도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직 영혼 구원에 있 습니다. 마25장의 비유는 영혼 구원의 비유입니다.
▶ 결론적으로 아름다운 교회의 모형인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하여 이르기를 “너희 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행위가 바르다고 각처에 좋 은 소문이 났습니다. 소문난 교회! 교회는 이런 소문이 나면 부흥은 틀림없이 될 줄 믿 습니다.
지난 6월 6일 후지시 히로미의 영광교회에서 선교사 기도 모임이 있었다. 일본 교회 와 한국 교회가 함께 모이면 15개 교회가 된다.
그런데 이날은 한국 교회만 모였다. 일본 목사님들은 통성기도나 방언 기도에 대해 서 부정적인 입장이다. 매월 3번째 금요일 오전 10시에 교회마다 돌아가면서 모여 뜨 겁게 자유로운 기도회를 갖는다. 예수 사랑교회 최대호 목사가 회장이 되어서 주관하 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일본의 선교를 위해서는 정말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다. 최 목사의 헌신과 수고로 한 번씩 모이기는 하지만 성령 충만 받고 서로 교회 소식과 안 부를 나누면서 따뜻한 교제가 많은 위로가 되고 힘을 얻는다. 어느 곳보다 후지산을 마 주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영적으로 큰 부담을 안고 기도를 하고 있다. 영광교회 박성옥 목사는 78세의 고령에도 잠시도 쉬지 않고 기도와 금식 전도로 주님께 충성한다. 부럽 기도 하고 도전이 되기도 한다. 좋은 동역자들과 함께 사역하게 된 것을 큰 은혜로 생 각한다. 후지산이 일본의 시내산으로 변화되고 성령의 기름이 부어지도록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