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정상회담서 '대미 최대투자·신뢰' 내세워…'미중 밀착' 차단 시도
유엔 연설서 '적국조항' 삭제 요구…국제사회 영향력 확대 포석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특파원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미중 관계 밀착에 대비해 미일 동맹의 견고함을 강조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취임 뒤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20년 가까이 일본 정부가 국제 무대에서 거론하지 않던 유엔 헌장 내 '적국 조항'의 조속한 삭제를 요구하며 방위력 증강과 함께 '정상 국가'로의 이행을 추진 중인 행보를 국제 무대에서 이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다카이치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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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독일 겨눴던 '적국조항' 삭제 요구…'신군국주의' 비판 의식했나
다카이치 총리는 유엔총회 일반토론 연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에 대한 유엔 창설국의 군사 행동권을 규정, '패전국의 멍에'로 여겨지는 '적국 조항'의 조속한 삭제를 요구해 눈길을 끌었다.
유엔 헌장에는 '적국'에 대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승인 없이도 군사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있다. 대상국이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적국이었던 일본, 독일이 포함되는 것으로 통상적으로 간주된다.
일본은 해당 조항이 2005년 회원국 정상 결의로 사문화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정식으로 삭제되지는 않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2005년 유엔 정상회의에서 '국제사회 전체의 대의'라며 삭제를 요구했고 이어 2007년 고무라 마사히코 당시 외무상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재차 요구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다카이치 총리가 20년 가까이 지나 꺼내 든 것인데, 여기에는 일본의 방위력 확대를 '신군국주의'라며 비판하는 중국이 최근에도 이 조항을 근거로 들며 일본을 압박하고 나선 데 대한 공개 반박으로 풀이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은 유엔 가입 이후 70년 동안 전수방위의 원칙에 따라 평화 국가로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일관되게 기여해 왔다"고 강조했다.
더는 전범국의 이미지가 아닌 '정상 국가'에 가깝다는 호소로 풀이된다.
그는 또 "안보리가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존 유엔 체제의 개선도 촉구했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직접 거론하며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5개국으로 구성된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수를 모두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국제사회 기여를 강조하며 기존 유엔 체제의 개편을 거론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목적으로 보인다.
◇ 미일, 대만 문제 논의했나…美, 日의 中견제 요구 수용은 '안갯속'
일본 언론들은 이날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문제 등에서 중국에 과도하게 양보하지 않도록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일 공조를 사전에 확인하려는 목적이 일본 정부에 있었다고 해설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가올 미중 정상회담도 염두에 두고 중국을 둘러싼 여러 과제에 대해 시의적절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미중 관계가 일본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미일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에 관한 논의가 있었는지에 대해 함구했지만, 동·남중국해 등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에 대한 일본의 우려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관측했다.
미중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일본이 '귀중한 기회'를 얻기는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에 어느 정도 양보할 것이라는 우려는 일본에 여전히 남아 있다.
NHK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를 '나의 친구'라고 언급했지만, 그가 다음에 마주할 시 주석 또한 '친구'로 불러왔던 상대"라며 일본 측이 전달한 입장이나 우려 사항을 미국이 어떻게 반영할지가 향후 관건이라고 짚었다.
방위력 확대와 방위비 증액을 꾀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방위비 증액 목표치를 수치로 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관측됐다.

유엔본부에서 정상회담하는 다카이치 일본 총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 교도=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왼쪽)가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유엔 총회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고 중국의 수출규제에 대한 미일 공동 대응과 동맹 억지력 강화를 재확인했다. 2026.9.23.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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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독한 미일' 강조…아카네 ICC 소장 언급 피해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의 입장을 미국 측에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인간적으로 친밀한 관계나 미일 관계의 돈독함을 강조하는 데 힘쓰는 모습이었다.
그는 회담에서 지난주 내각 각료 18명 중 10명을 교체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안심해 달라. 여러분의 카운터파트(대화 상대방)는 유임됐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 등 미국과 무역·방위 협상을 맡는 핵심 관료들이 자리를 지켰다고 소개하며 관세 문제 등과 관련한 일미 간 합의를 차질 없이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이 7년 연속 최대 대미 투자국이라는 점 등도 거론했다.
그는 트럼프 정권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 등에 대해 '일본은 법의 지배를 중시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을 뿐 일본인인 아카네 도모코 소장에 대한 미국 측의 경제 제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행보로 해석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CNN 등 언론과 각을 세우는 상황을 의식한 듯 회담 시작 전 언론 퇴장을 앞장서 요청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려는 모습도 포착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다카이치 총리는 나의 친구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위대한 총리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한편, 회담에서 엔화 가치 안정화 등 국제 금융 정세에 관한 의견 교환도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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