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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남북경협 기여…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 별세
입력 2026.02.07 03:51수정 2026.02.07 03:51조회수 1댓글0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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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1992년 한중수교에 앞서 양국 접촉을 돕고 남북경협에도 기여한 장치혁(張致赫) 전 고합그룹 회장이 5일 오후 4시35분께 삼성서울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1세.

1935년(호적상 1932년) 4월 평북 영변에서 독립운동가 장도빈(1888∼1963) 선생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고교 1학년 때 6·25를 맞았다. 15살이었지만 18살이라고 속이고 장교를 육성하는 육군종합학교에 들어가 요원들을 배에 태워 신포 등에 침투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1953년 중위로 예편했다. 용산고, 단국대 법정대를 졸업했다.

1956년 대한공론사 홍콩 주재원, 1958년 중화상사 상무를 거쳐 1966년 고려합섬을 창업했다. 국내 최초로 폴리프로필렌 스테이플 섬유를 생산했고, 1971년 국산 나일론 '해피론'을 개발해 침구류를 만들고 일본산 나일론 제품을 몰아냈다. 1983년 고려합섬에서 석유화학 부문을 떼어내 고려종합화학을 세웠다. 1986년 3저 호황으로 부도 위기를 넘긴 뒤 1988년 폴리에스터의 원료인 TPA 사업에 진출하며 원료부터 제품까지 만드는 일관체제를 구축했다. 1991년부터 사업다각화에 주력했고 한 때 재계 16위까지 키웠지만, 1997년 외환 위기 발생 후 대기업 중 처음으로 워크아웃 대상 기업이 됐다. 2001년 채권단의 결정으로 고인이 경영에서 손을 뗀 뒤 고합그룹은 공중 분해됐다.

이 과정에서 한일·한중외교와 대북경협에 기여했다. 고려합섬과 관계가 밀접했던 일본 이토추상사 세지마 류조(1911∼2007) 당시 부회장과 박정희(1917∼1979) 대통령의 만남을 주선했다. 세지마의 권유로 중국에 관심을 갖고 1988년 중국의 조선족 실력자로 덩샤오핑(1904∼1997)의 측근이었던 진리(金黎·1927∼1990) 국제우호연락회 부회장 등을 한국에 초청했다. 1989년 박철언 당시 대통령 정책보좌관의 부탁으로 노태우(1932∼2021) 대통령의 친서를 덩샤오핑에게 전달하고, 안재형-자오즈민 결혼 문제를 풀도록 돕는 등 한중수교 전 양국 접촉을 도왔다. 이 공로로 1992년 수교훈장 숭례장을 받았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 유적지를 조사하고 시베리아 가스 공동개발을 추진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비공개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드나들며 김일성, 김정일을 만나 금강산 개발, 나진·선봉 개발 사업 등 남북경협을 모색했다. 전경련에서 남북경협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89∼200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89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부회장, 1991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1992년 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1992∼2001년 한·러시아극동협회 회장, 1992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1993년 한국경영자총협회 수석부회장, 1995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명예회장, 1998년 민주평통 이북5도대표 부의장도 역임했다.

유족은 부인 나옥주 씨와 2녀(장호정·장호진), 사위 제레미 장 FTI컨설팅 수석고문, 김형준 기린건축 대표이사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17호실(6일 오전 10시부터 조문 가능)에 마련할 예정이고, 발인은 9일 오전 8시, 장지는 남양주 영락교회 공원묘역. ☎ 02-3410-3151

전국경제인연합회 남북경협 특별위원장 시절의 고인

[촬영 김병만] 199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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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강한구] 199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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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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